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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처럼 ‘국민 여동생’이란 태그가 붙은 가수가 거침없이 '나'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CHAT-SHIRE>는 용감한 앨범이었다. 사방의 기대를 역이용해 반전 매력을 선보였고 그것이 제대로 통했다. 음악적으로도 최신 사운드와 댄스 편곡이 늘었고 가사는 가히 파격적일 정도로 달라졌다.
파격은 이번에도 이어진다. 1년 반 만의 컴백작 <Palette>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나’를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예를 들어, 타이틀곡 ‘팔레트’는 올해 스물 다섯인 이지은이 요즘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쭉 나열한다. 핵심 주제가 ‘요즘 내 취향’, 달리 말해 ‘지금의 나’다. 지난 ‘스물셋’도 솔직함이 놀라웠지만 이번 ‘팔레트’는 수위가 한층 높다. 가사에 일상 어투가 강해져 마치 SNS를 들여다보거나 커피숍에서 근황을 듣는 느낌이다. 가공의 밀도가 옅고 투명도가 높아졌다.
음악적으로도 ‘어?’ 하는 놀람을 선사한다. 알앤비를 했다. 아이유 하면 고전적 취향의 포크 발라드를 부르거나 간헐적으로 최신 사운드의 댄스 음악을 선보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런데 알앤비로 그걸 뒤엎었다. 음악 스펙트럼을 한 뼘 더 넓혔다. 예상을 빗나갔기에 신선함의 강도가 한층 강하게 다가온다. 아이유가 알앤비를 부르고 지드래곤이 랩을 한다니, ‘스물셋’ 때도 여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파격만 있는 건 아니다. <Palette>가 펼쳐놓은 팔레트엔 튀는 색 뿐만 아니라 무난한 색들도 있다. 표현 범위가 넓어졌을 뿐이지 성향이 뒤바뀐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유의 진짜 강점은 자신을 뒤엎을 줄 알면서도 전통적인 아이템 역시 굉장히 잘한다는 것이다. 더블 타이틀곡으로 선정된 ‘이름에게’가 그렇다. 전형적인 한국형 발라드라 형식만 놓고 보면 평범하다. 하지만 한동안 발라드와 멀어졌던 사람들도 돌아오게 만들 정도로 특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멜로디, 가사, 가창력, 스트링, 모두 감동이다. 그중에서도 멜로디와 가창력은 단연 돋보인다. 앨범 내내 폭발적 고음을 절제하거나 흐릿한 화성을 자주 써 대중성 면에선 아쉬웠는데, 마지막 트랙인 이 곡에 와서 그 갈증이 일거에 해소된다. 세련된 것도 잘하지만 대중적인 것도 잘한다.
협업 뮤지션들과의 케미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언더그라운드 성향 강한 선우정아, 윤석철과 작업한 ‘잼잼’은 젊고 개성 강한 뮤지션들과 만나 그런지 재기발랄한 일렉트로닉 댄스다. 반면 대선배 이병우와 작업한 ‘그렇게 사랑은’은 스물 다섯 아닌 마흔에 불러도 좋을 정도로 깊은 비애의 감정을 표현했다. 오랜 음악 동료 이종훈은 곳곳에 작-편곡으로 참여하며 전반적 완성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역시 지난 앨범에도 참여한 김제휘 역시 ‘이 지금’에서 깨물고 싶을 정도로 발랄하고 경쾌한 재즈를 선사했다. ‘이 지금’이 없었다면 앨범이 전체적으로 어둡고 슬펐을 것이다. 이 곡이 첫 트랙에 위치한 덕분에 희노애락의 균형이 맞았다. 오혁이 참여한 ‘사랑이 잘’은 장르가 알앤비여서 아이유 뿐만 아니라 오혁이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아이유는 지금 타이밍에 뭘 해야 가장 매력적일지 아는 뮤지션이다. 한창 동경의 대상일 땐 기대를 약간 벗어나야 더 멋있는 법이다. 공주병에 빠져 있는 아이돌을 누가 좋아할까. ‘좋은 날’을 통해 여동생 이미지로 누릴 인기는 다 누렸으니 이젠 솔직해야 할 때다. 아이유는 대중들이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아는 영민한 뮤지션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확실한 자기 통제권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이미지 변신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위의 두 가지 중 하나 혹은 모두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둘 다 가졌다. 뭘 내놓아도 팔릴 정도의 인지도를 가졌으니 해보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있고, 꾸준히 다듬어온 음악성 덕분에 어려운 어감도 훌륭하게 표현한다.
달리 말해 <Palette>는 단순히 반전 매력을 꾀한 수준을 넘어 그걸 잘 해낸 앨범이다. 자작곡을 넘어 앨범 전반을 총괄한 아이유는 기획과 실무능력 모두에 능한 훌륭한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줄세우기가 당연한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