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세계 최초 개발한 밀가루 대체품의 신기한 성분

조회수 2020. 8. 20. 09: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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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커리어 접고 의미있는 일 찾아나선 재미교포 3세

맥주·식혜 부산물 업사이클해 에너지바 제조

크라우드 펀딩 1위, 아시아 최초 푸드 업사이클 협회 가입

출처: 디캠프
리하베스트 셔츠를 입고 있는 민명준 대표

사회 문제를 사업으로 풀어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금 좀비’라며 폄훼하는 인식도 있다. 음식으로 소셜 임팩트 험지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환경오염이나 장애인 노동 소외 같은 어려운 문제를 ‘푸드 업사이클’ 방정식으로 풀어 낸 리하베스트의 민명준 대표를 만나 비즈니스와 사회적 가치의 접점에 관해 들었다.

맛있는 에너지바로 태어난
맥주와 식혜 부산물
출처: 리하베스트
개발 단계의 리너지바(왼쪽)와 그릇에 담긴 리너지바


리하베스트는 음식물을 ‘업사이클링’한 그래놀라 바 ‘리너지바’(RE:nergy bar)를 만든다. 업사이클링은 자칫 버려질 뻔한 재료에 아이디어와 가치를 더해 완전히 새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뜻한다. 단순 재활용인 ‘리사이클링’보다 고차원의 개념이다.


리너지바는 맥주나 식혜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을 재료로 한다. “곡물로 맥주나 식혜를 만들고 나면 여러 부산물이 생기는데요. 충분히 먹을 수 있고 영양도 있는데 쓰임새가 마땅치 않아 버려집니다.”

출처: 리하베스트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의 차이


이 부산물을 가져와 밀가루처럼 가루화해서 ‘리너지 가루’로 만들었다. 밀가루와 비교해 칼로리는 30% 낮고 단백질은 2배, 식이섬유는 21배 많다. 이후 가루를 반죽 등 재가공해서 시중의 영양바 처럼 만든 게 리너지바다.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지만 첨가제가 거의 들어가지 않아 시중 영양바보다 건강에 더 좋고 맛도 뛰어나다.


리너지바는 선한 소비에 관심이 많은 젊은 소비자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 3월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나흘간 푸드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하면서 존재감을 알렸고, 7월에는 맛과 식감을 업그레이드한 제품으로 앵콜 펀딩을 진행했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모금 플랫폼(http://bit.ly/bul.GGot)에서 소셜임팩트 부문으로 참여도 하고 있다. “스타트업 입장에선 초기 구매자들의 반응이 중요한 이정표로 통하는데, 얼리어답터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어요. 대부분의 고객이 맛있다며, 재구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후 다양한 카페 등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곳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엘리트였던 미국 교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방향 전환
출처: 디캠프
민명준 대표는 재미교포 3세다.


민명준 대표는 미국과 한국을 종횡무진 누볐던 엘리트 출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재미교포 3세로 대학졸업 후 바이오텍(Bio-Tech) 회사를 거쳐 다국적 컨설팅 기업에서 일했다.


그러다 서울대학교에서 글로벌 MBA를 하며 한국 땅에 정착했고,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에 들어가 컨설팅 업무를 맡았다. “한국 생활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인종차별을 많이 겪었습니다. 내가 주류가 아닌 곳에서 주류인 척하고 사는게 싫어서 한국에 왔고,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삶에 돌연 제동이 걸렸다. “2017년 말 대장에서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몸무게가 120kg 나갈 정도로 몸이 망가진 상태였어요. 휴직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기고 안심할 새도 없이 소중한 이를 떠나보냈다. “수술하고 얼마 안돼, 어릴 적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친한 친구였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봤어요.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친구가 저보고 너무 바쁘다고, 그동안 일만 했으니 이제 원하는 걸 찾아보라고 조언했어요. 그러고 3일 뒤 갑작스런 사고로 그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났죠. 허망하게 떠난 친구를 보며 그동안 저를 옥죄어 온 것들, 이를테면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일이나 명성이 부질없게 느껴졌어요.”

음식물 쓰레기, 장애인 노동 소외 문제 엮어
'푸드 업사이클' 모델 구상
출처: 디캠프, 더 비비드
민 대표(왼쪽)와 예쁘게 포장된 리너지바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일단은 컨설팅 업계에 있었던 겅험을 살리기로 했다. “회사를 관두고 미국에서 셰프로 활동하는 여동생과 식당 브랜드 인큐베이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관련 업계 보는 눈을 키워 나갔습니다. 그 경험을 자산으로 한국엔 없는 사업, 망해도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다녔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첫손에 꼽았다. “다운증후군이 있는 친척 누나가 있습니다. 누나에게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회 구성원으로 정정당당하게 일해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답하더군요. 가슴이 참 아팠습니다. 소외 계층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번 돈을 기부해서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선한 소비가 가능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선사하는 게 지속가능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단순 기부는 그저 원 오브 뎀(one of them)에 그치죠.”

출처: 리하베스트
리하베스트의 푸드 업사이클 과정

푸드 업사이클링은 잦은 출장 경험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진국에 가면 음식물 쓰레기가 엄청나게 쏟아져요. 반면 빈곤 국가 사람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죠. 다른 분야는 어느 정도 자리잡은 업사이클링이 푸드 분야에선 시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은 폐차 후 발생한 고철로 새 차를 만드는 선순환이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은 모두 버려져요. F&B(식음료) 산업의 끊어진 순환을 연결하면서 장애인을 생산 과정에 포함시키는 일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가루처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리너지 가루
출처: 리하베스트
리너지바 제조 현장

‘부산물 찾기’에 몰두했다. 먹거리의 3분의 1이 버려지는데, 버려지는 것 중 55%가 제조공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음식물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중 20~30%만 퇴비나 사료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환경부담금을 내고 버려지더라고요.”


식료품 공장을 누비며 식혜 공장의 보리 부산물 등 8가지 쓸만한 부산물을 찾았다. “식혜 공장이나 맥주 공장 사장님들이 저희 취지에 동감해 무상 공급 등을 해주기로 하셨어요. OB맥주와는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분들은 애물 단지였던 부산물이 생산적으로 활용된다면서 좋아해 주셨습니다.”

출처: 리하베스트
맥주 공장에 방문한 민 대표

제공받은 맥주 부산물을 리너지 가루로 가공하는 데 성공했다. 밀가루와 비슷해서 에너지바 뿐만 아니라 파스타면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재료가 거의 무상이라 생산 효율성이 좋다.


-물량이 충분히 확보되고 있나요?

“연간 36만톤의 맥주 및 식혜 부산물이 발생합니다. 1년간 우리나라 사람 1인 당 21개의 빵과 57그릇의 국수를 제공할 수 있는 양이죠.”

출처: 리하베스트
민 대표는 장애인을 검수 과정에 투입했다.(왼쪽) 장애인들은 민 대표를 '에너지바 아저씨'라고 부른다.


제조 공정에서 장애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가치 사슬에 장애인을 포함하기 위해 발상의 전환을 했습니다. 다른 회사는 보통 장애인을 단순 제조에 동원하는데, 저희는 검수 과정에 투입했습니다. 장애인이 어느 하나에 몰두하면 비장애인보다 높은 집중력을 보이는데 착안한 거죠. 제품을 검수하고 나면 끝냈다는 표시로 스티커를 붙이도록 합니다. 그날 기분에 맞춰 붙이라고 16종류의 스티커를 준비했습니다. 노동에 재미 요소를 부여했더니 효율성이 더 좋아졌습니다.”


-장애인들이 얼마나 만족해 하나요.

“환경보호 같은 가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해 하십니다. 제가 공장에 가면 ‘에너지바 아저씨 왔다’며 반기죠. 스티커로 소비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고도 뿌듯해 하십니다. 세상에 도움이 돼 행복하다고들 하세요.”

가치소비에 관심 많은 밀레니얼 타깃,
상품 다변화 박차
출처: 리하베스트
리너지바 아이디어로 경기 업사이클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리하베스트(왼쪽)과 리너지바 개발에 열중인 리하베스트 관계자들


곳곳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작년 11월 리너지바 아이디어로 경기업사이클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음식으로 이 상을 받은 건 리하베스트가 최초다. 아시아 최초로 푸드 업사이클 협회에 가입도 했다. “협회에 가입하기 위해 무려 7번의 인터뷰를 거쳐야 했어요.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기업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좋습니다.”


‘의미가 좋아 봤자 음식물 쓰레기 아니냐’는 일부 시선에 굳이 맞설 생각이 없다. 리너지바의 가치에 공감하는 핵심 타깃 계층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위한 모금 플랫폼(http://bit.ly/bul.GGot)에 참여하는 등의 시도도 하고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처럼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을 할 수 없습니다. 저희 주요 타깃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종이 빨대를 쓰죠. 이들을 중심으로 저희 팬덤을 만들고, 팬덤이 대량생산으로 이어지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출처: 리하베스트
리너지바(왼쪽)과 그래놀라(오른쪽)


-앞으로 목표는요.

“단기적으로 매달 신상품을 하나씩 출시할 계획입니다. 크리스피 맛, 운동용 고단백 제품 등 기능성과 맛에 변주를 줘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면서, 시리얼 형태의 제품도 내놓을 계획입니다. 이후 리너지바를 발판으로 가정간편식, 원료형 제품 시장에도 진출하고 싶습니다.”


-동료 사업가나 예비 창업인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요.

“핵심 가치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의 방향성에 공감해주시는 투자자 분들도 많지만 피봇(방향 전환)을 권하는 분도 있습니다. 생산 과정에서 장애인을 제외하는 게 사업적으로 더 좋을 거라는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장애인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게 우리 핵심 가치 중 하나니까요. 이런 핵심가치를 지켜야 오래 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유혹에 흔들릴 수 있겠지만 매 단계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되짚어 보면서 사업을 영위하면 좋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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