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재팬 시대, 나는 일본 제품을 판매합니다"

조회수 2020. 11. 25.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영​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다. 가장 흔한 사례는 경쟁자의 등장이다. 시장의 크기는 빤하기 때문에 금새 혼탁해진다. 경쟁이 심해지고 판매관리비가 늘면서 매출과 이익은 줄어든다. 시장참여자는 어떻게든지 기존 경쟁 구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항상 새 경쟁자를 잉태한다. 그것도 '예상치 못했던 경쟁자'다. 디자이너용 매킨토시를 만들던 애플이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하리라곤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설립한지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현존하는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 기업보다 시가 총액이 높으며 국내에서도 전기차 시장 1위를 기록했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경쟁자의 등장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예측이 어려운 요인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정치적 요인이다.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2016년 국내에 배치되면서 중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곧장 다양한 방식의 경제 보복이 이루어졌는데 핵심 타깃은 롯데마트였다. 롯데마트는 2조원 가량 손실을 입고 중국 시장서 철수했다. 2000년에는 중국산 마늘에 대해 세이프가드 차원에서 관세를 인상했다가 국산 휴대폰 수입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본과도 외교 이슈가 불거지면서 대대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이른바 “NO재팬” 캠페인이다. 2019년 7월부터 본격화한 NO재팬 캠페인은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다. 국내 시장에서 매년 승승장구하던 유니클로는 매출이 31% 떨어졌다. 토요타 역시 매출은 33%가 줄었고, 영업이익은 반토막 났다. 일본 맥주는 99% 가량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사실상 국내 시장에서 사라졌다. 닛산자동차와 올림푸스의 카메라 사업부, 유니클로의 자매 브랜드 GU는 국내 철수를 선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매운동의 화력은 약해지는 형국이다. ABC마트는 양판점이라는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매출이 줄지 않았고, 닌텐도 게임은 품절사태마저 벌어지며 분기 판매량이 30% 상승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도 20% 가량 성장했다. 국내에서는 과연 선택적 불매가 옳은 것인지, 기존의 NO재팬 캠페인을 계속해서 진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다.

김상학 현대무역 대표는 일본 헬스케어 기업 '프랑스베드' 제품을 수입해 4년째 판매하는 중소기업인이다. 프랑스 이름을 붙인 일본산 소비재를 팔고 있는 그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Q.

취급하는 브랜드와 제품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A.

1946년 세워진 일본의 대표적인 시니어 헬스케어 기업 '프랑스베드'의 전신 마시지 기기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라젬'과 같은 제품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프랑스베드는 주로 노인들을 위한 복지 용구를 생산하고요. 다양한 형태의 마사지 기기와 침대, 휠체어, 쿠션 등을 공급합니다. 연매출은 약 5000 억 원이고, 매년 많은 연구 개발을 통해 신제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본은 세계적인 고령화 국가이기 때문에 관련 산업도 크게 발전했습니다.

Q.

어떻게 일본산 제품을 취급하게 되었나요?

A.

제가 중고등학생이었을 때 학생들 대부분은 소니 워크맨(Walkman)이나 아이와(Aiwa) 카세트를 이용했어요. 간혹 파나소닉 제품을 쓰는 친구들도 있었구요. 그때도 일본에 대한 반감은 있었지만,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분리해서 생각했습니다. 변변한 국산 제품이 없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디자인과 품질이 확실했거든요. 그때 일본제 전자제품에 대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일본 관련 무역일을 20년 가까이 해오게 되었습니다. 개발된지 20년 이내인 “세라젬”과 같은 국산 제품은 상반신만 마사지 되지만, 개발 및 상용화 된 지 40년이상 된 프랑스베드는 상반신은 물로 하반신까지 전신 지압이 가능하고, 척추견인 및 전신 스트레칭 기능이 뛰어나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베드 전신 지압 제품 ㅣ필자 제공

Q.

작년과 올해 'NO 재팬'의 영향을 체감했나요?

A.

저희 프랑스베드 제품은 초기에 병의원 물리치료실에 척추견인 및 전신지압 스트레칭용으로 주로 납품되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잘 알지는 못합니다. 언론에도 나왔다시피 일본 맥주나 유니클로 등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도 크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다가 어느 순간 가망 고객들께서 “이거 일본꺼에요?”라고 물으시는 것을 들으면서 NO재팬의 영향력을 느꼈습니다. 제품 포장 박스에 크게 “MADE IN JAPAN”이라고 써 있는데 그것을 눈여겨 보는 분도 계셨구요.

Q.

그때 고객들을 보며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A.

저희 제품을 사용하는 분들은 주로 50대 이상입니다. 그 분들은 저처럼 10대 시절에 소니나 아이와 카세트로 음악을 들었던 분들일 수도 있고, 일본 여행을 가서 코끼리밥솥을 사오던 세대일 수도 있습니다. 젊어서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제품을 사용해봤던 분들이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잘 말씀을 드리면 이해하고 안도하십니다. 특히 이 제품은 본인 혹은 부모님들을 위해 구입하는 제품입니다.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데 어느 나라 제품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얼마나 효과가 있느냐, 믿을 수 있는 회사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Q.

NO재팬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A.

제가 NO재팬에 대해 평가할 능력이 있거나, 별다른 의견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국적을 불문하고 좋은 제품이라야만 까다롭기로 소문난 한국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생각 뿐입니다. 중국 브랜드인 샤오미의 경우 일각의 부정적인 정서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 선전했고, 일본 브랜드인 발뮤다의 경우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신제품 출시 행사를 열 정도입니다. 저희 제품 역시 좋은 품질을 가진만큼 코로나와 NO재팬을 탓하지 않고, 부지런한 홍보와 체험 활동을 통해 우리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 상당수는 일본 기업과 기술 제휴를 통해 성장했다. 미쓰비시 자동차는 30년 넘게 현대자동차에게 다양한 기술을 전수했다. 1970년대 삼성전자는 산요의 기술로 가전 제품을 생산했다. 삼성자동차는 닛산자동차를 기술 파트너로 택했다. LG전자 역시 히타치 및 알프스 전기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일본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에게 잘해줬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두 나라의 대표기업은 상호의 이익을 위해 오랜 기간 협력해 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여행지이기도 했다. 한국관광공사의 매월 관광 통계에 따르면 2016년 7월부터 36개월 동안 한국인 해외여행객은 일본을 가장 많이 찾았다. 3년간 일본을 방문한 여행자 수는 2125만 명이었다. 그것도 매월 증가 추세여서 불매 운동 직전에는 한 달에 80만명 이상이 일본을 방문할 정도였다. 연간으로 따지면 거의 100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한 셈이다.

인도와 중국의 국경 분쟁이 심각해지면서 정치적 요인에 의한 기업 실적 변화는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경쟁전략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포터의 5-FORCE 모델(진입자의 위협, 기존 경쟁자의 위협, 주요 공급자의 위협, 주요 구매자의 위협, 대체재의 위협)에서도 거론되지 않았던 외부 환경에 의한 위협은 기업계는 물론 학계에서도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학 현대무역 대표 ㅣ필자 제공

김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많은 면에서 일본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인데 우리나라 역시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이지요. 일본의 앞선 제품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은 국내 고령자들을 위해서도 유의미합니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서 이 위험을 슬기롭게 대처하겠습니다”

인터비즈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