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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내가 떴어요.

배순탁에게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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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타인을 위한 문이 될 수도 있다. 일종의 ‘기회’ 개념으로써의 문.  누군가에게 기꺼이 문이 되어준 뮤지션/밴드를 소개한다.

1.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 &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

출처페이스북

2000년대 이후 이보다 거대한 문이 되어준 경우는 없었다.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가 "이 곡 좋아요."라고 트위터에 올린 순간, 성공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마찬가지.


그렇게 칼리 래 젭슨(Carly Rae Jepsen)은 자신의 곡 'Call Me Maybe'를 통해 라이징 스타가 될 수 있었다. 또, 이 곡은 빌보드가 꼽은 '최고의 후렴구'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곡 자체가 워낙 좋았으니 가능한 성취였다는 뜻이다.  

음악듣기는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2. 오아시스(Oasis) - 카사비안(Kasabian)

출처공식홈페이지

칭찬에 인색한 갤러거 형제에게도 가끔 예외는 있는 법. 카사비안이 데뷔했을 때 이 두 형제가 한 목소리로 상찬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건 내가 직접 들은 경험담이기도 했다. 아주 오래 전, 리엄 갤러거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 가장 즐겨듣는 밴드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카사비안이라고 답했다. 물론 오아시스의 지원 사격이 없었어도 카사비안은 성공했을 게 분명하지만, 그 성공의 규모는 확실히 덜했을 것이다. 

음악듣기는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3. 닥터 드레(Dr. Dre) – 에미넴(Eminem) – 50 센트(50 Cent)

출처공식홈페이지, 페이스북

닥터 드레는 힙합계의 영원한 사부다. 그는 1992년 음반 <The Chronic>에서 지-펑크(G-Funk) 스타일을 창조하며 1990년대 힙합의 초석을 마련했고, 지금껏 수많은 힙합 음반들의 프로듀서도 담당하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수많은 닥터 드레의 음악 제자들 중 최고는 역시 에미넴이다. 그는 닥터 드레의 지휘 아래 힙합계의 넘버원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또, 닥터 드레의 뛰어난 안목까지 물려받은 에미넴은 동료들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는데도 열과 성을 다했다. 저 유명한 50 센트가 대표적이다. 간단하게, 닥터 드레 없었으면 에미넴도 없었고, 에미넴이 없었으면 50 센트도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참고로,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적어둔다. 에미넴의 본명은 마샬 매더스 3세(Marshall Mathers III). M이 두 개라 M&M. 빨리 발음하면 '에미넴'이 된다.  

음악듣기는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4. 본 조비(Bon Jovi) – 스키드 로(Skid Row) & 신데렐라(Cinderella)

출처페이스북, 벅스뮤직

비록 L.A. 아닌 뉴 저지 출신이었지만 본 조비는 1980년대 L.A.에서 융성했던 팝 메탈의 맹주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후배 뮤지션 양성에 유독 공을 들였던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중 팝 역사에 아직도 기억되는 그룹으로는 스키드 로와 신데렐라가 손에 꼽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키드 로는 ‘I Remember You’, ’18 & Life’, ‘Wasted Time’ 등의 히트 레퍼토리를 배출하며 한 때 정점을 찍었고, 신데렐라는 ‘Shake Me’, ‘Nobody’s Fool’, 'Coming Home' 등의 인기 싱글을 발표하며 잠깐이나마 인기맛 좀 봤던 밴드. 그러나 두 밴드 공히 본 조비만큼 긴 생명력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5. 이문세 - 고(故) 이종환

출처페이스북, 뉴시스

라디오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DJ 이종환은 가장 영향력 있는 음악계의 대부였다. 속된 말로, 그가 '미는' 가수들은 모조리 스타가 되었다고 보면 된다. 그 중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이문세였다. 당시 철저하게 무명이었던 이문세를 이종환이 끊임없이 소개하지 않았다면? 장담컨대, 스토리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문세 성공의 출발점이었던 3집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문세 3집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 고(故) 이영훈과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이기도 한데, 음반의 수록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이종환이 진행하고 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불렀던 덕분이었다.


3집이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뒤 이문세는 디스코그라피 중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4집을 발표하고,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우뚝 서게 된다. '가을이 오면'이 바로 이 4집 수록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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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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