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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어떻게 들어야하지? 최근, 강의를 다니는 일이 조금 늘어났다. 시행착오가 없었을 리 만무하다. 어떤 강의에서는 하도 헛소리를 남발해서, 끝나고 난 뒤에 고개를 들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실수를 겪고 나니 어떤 그림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던 아이디어는 “많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 과연 어떻게 들어야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어떻게 듣긴 어떻게 들어. 잘 들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한다. ‘음악을 잘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로 말이다. 무엇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것 하나. 음악을 듣는다는 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이걸 간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가사가 좋아서 음악을 들어요.”라니, 그럼 차라리 시를 읽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저명한 록 평론가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는 저서 [사운드의 힘(Sound Effect)]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긴 바 있다. “중요한 건 사운드와 멜로디다. 가사는 그 다음 문제다.” 그렇다.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곡을 예시로 들 수 있을까. 추천하고 싶은 넘버원은 윤상의 ‘날 위로하려거든’이다. 이 곡에서 윤상은 소리의 설계자답게 마치 360도로 사운드가 회전하는 것 같은 질감을 구현해냈다. '마지막 거짓말'은 또 어떤가. 이건, 유희열의 말마따나 "드럼 사운드가 나온 순간 그냥 게임 끝"인 곡이다. 이런 소리를 대체 어떻게 뽑아냈는지, 동료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궁금해 미칠 것 같은 그런 곡 말이다.
따라서 이런 곡들은 절대적으로 좋은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감상해야 그 가치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곡뿐만이 아니다. 번들 이어폰 그만 좀 쓰고, 조금만 기기에 투자해서 윤상의 음악들을 쭉 감상해보라. 그가 왜 ‘고전적인 멜로디 메이커’에서 ‘현대적인 레코딩 아티스트’로의 중력 이동을 상징하는 스튜디오 에이스로 손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테니까.
( '금지된'이라고 곡 제목이 되어있지만, 정확하게는 '금지된 분노'가 맞다. CD 뒷면 곡 표기에 '금지된'과 '분노'가 줄이 나뉘어 있어서 다들 잘못 알고 있는. )
그렇다면 가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간단하게 가사는, 어떤 곡을 ‘명곡’으로 만들어주는 최종 심급이다. 물론 연주곡만으로도 명곡이 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사가 있는 곡들이 훨씬 더 많고, 듣는 이들도 감정을 이입하기에 용이한 게 사실이다. 윤상의 음악은 보통 박창학이 노랫말을 썼다. 그런데 박창학의 노랫말이 없었다면, 윤상의 음악은 그토록 오랜 생명력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중음악은 어디까지나 누군가가 ‘따라 불러줄 때’에만 존재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까닭이다.
‘줄에 매인 시간들’이라니, 슬픔에도 스케일이 있다면 이것은 대규모다. 원칙과 이성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화자의 죄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험한 얘기들이 허락되지 않는 고로 나는 병들어간다. ‘금지된’의 뒤에 붙어있는 명사는 아마도 ‘사랑’이리라.
작사는 당연히 이소라가 했다. 작곡은 정재형이다.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부터 이런 유의 곡 만들기에 특별히 능숙했다. 코드 진행부터 편곡까지, 누가 들어도 정재형표 음악이다. 그는 음악으로 한편의 비극을 쓰고자 한다. 여기에 이소라의 탁월한 가사쓰기와 독보적인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명곡 하나를 완성해냈다. ‘줄에 매인 시간들’이라고 노래하는 순간 이소라는 거의 시적 발화에 육박하는 설득력을 폭발시킨다.
( 정우성 아니고 진중권쌤 닮았... '이별택시' 외에 '청소하던 날'의 가사도 꼼꼼하게 들어보세요. )
윤종신도 빼놓을 수 없다. 이소라가 특수한 언어로 시적인 운율을 창조해낸다면, 윤종신은 ‘일상의 언어’로 ‘수채화 같은 풍경’을 그려내는 작가다. 윤종신이 쓴 밑의 노랫말을 쭉 읽어보라. 한 폭의 그림이 연상될 테니까.
결국 가사의 힘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음악을 한 시대의 사운드 텍스처에 한정된 것이 아닌 세대를 초월하는 ‘노래’가 될 수 있게 하는 것. 단지 테크놀로지가 아닌 그것을 감수성의 영역으로 육박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하여 뮤지션이 소리의 공학도를 넘어 음악 작가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가 들어온 명곡들이 대부분 이렇다고 보면 된다. 소리와 가사의 환상적인 만남을 통해 시간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통과해온 작품들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회적인 맥락 등 몇몇 요소들이 더해지지만, 일단 기본은 이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