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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딜레마다. 명색이 10년째 팝 음악 작가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글을 쓸 때만큼은 팝이 아닌 우리 대중음악을 논하고 싶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허탈할 정도다. 팝이 아닌 우리 대중음악에 대한 피드백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매주 화요일 내가 출연하는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우리 대중음악들 중 ‘라디오에서 자주 만날 수 없으면서도 빼어난 음악’을 소개하고 싶은 욕망을 눌러담을 수가 없었다. 27년된 장수 팝 전문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따라서 접점을 찾아야 했다. 일단 위에 언급한 코너에서 그 접점을 소개했다. 반응이 괜찮았다. 이 글은 당시 방송의 추억을 글로 옮겨본 것이다. 솔직히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다. 우리 가수(혹은 밴드)가 부른(혹은 연주한) 팝송을 여기에 소개한다. 참고로 우리는 보통 리메이크라는 단어에 익숙한 반면, 외국에서는 '커버(cover)'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기타리스트 박주원은 원래 세션맨으로 명성을 쌓았다. 조규찬, 이소라, 임재범, 신승훈, 윤상, 이승환, 성시경 등, 유명 뮤지션들의 앨범에 숱하게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이후 데뷔작 [집시의 시간](2009)으로 일관된 찬사를 받았던 그는 2011년에 발표한 2집 [슬픔의 피에스타]로 소포모어 징크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그 중에서도 게리 무어의 원곡을 다시 연주한 ‘One Day’는 보컬 없는 인스트루멘탈 곡임에도 오리지널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대여. 혹시 이 따스한 봄날에 여전히 애인 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 곡이 딱이다. 이어폰을 통해 이 곡이 흐르는 바로 그 순간, 작은 위로 하나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못(MOT)이라는 밴드를 통해 2000년대 가장 주목받는 뮤지션 중 한명으로 떠오른 이이언은 솔로로서도 인상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현재까지 EP [Realize](2012)와 데뷔작 [Guilt-Free](2012), 이렇게 두 장을 공개했는데 둘 모두 음악적으로 빛나는 성취를 일궈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프랑스 출신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의 것을 커버한 이 곡 역시 마찬가지다. 전자음으로 구성된 원곡을 거리낌없이 해체한 뒤, 그것을 어쿠스틱과 재즈의 문법으로 탈바꿈시켜버린 것만 봐도 그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치열한 뮤지션인지를 알 수 있다. 특유의 완벽주의가 만들어낸 리메이크 걸작. 원작과의 비교 청취는 선택 아닌 필수다.
아직도 이 곡의 원작자를 휘성으로 알고 있는 팬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러나 실은, 영국의 싱어 송라이터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발표한 원곡을 휘성이 커버한 게 맞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곡을 다시 부를 한국 가수를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직접 지목했다는 사실. 즉, 이전부터 크레이그 데이비드가 휘성이라는 가수의 역량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기대에 부합이라도 하듯, 휘성 역시 뛰어난 재해석 능력을 선보이면서 크레이그 데이비드를 만족하게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이 곡을 휘성 원곡으로 착각하는 팬들이 많았던 이유다. 이 리스트에서 오리지널과 커버가 가장 비슷하게 들리는 케이스이기도 하다.
나윤선의 음악 세계에는 경계가 없다. 보통 재즈 가수로 정의되지만, 그는 팝, 소울, 알앤비, 록 등, 무람없이 장르를 오가며 듣는 이들에게 소름 끼칠 정도의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왔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경험을 넘어선 체험에 가깝다. 그의 라이브를 한번이라도 봤던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의할 거라고 확신한다. 심지어 그의 세계 속에서는 헤비메탈도 한 자리를 허락받는다. 메탈리카의 대표곡 ‘Enter Sandman’을 이런 스타일로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나. 나윤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출중한 리메이크다. 갑자기 저 유명한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 나윤선의 라이브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국인은 몇 없었고, 수많은 외국인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의 퍼포먼스를 바라봤다. 거기에, ‘진짜 한류’가 있었다.
사실 이 곡이 실린 2010년의 리메이크 앨범 [My One And Only Love]는 좀 뜬금 없었다. 그의 신작을 목빠지게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이게 뭔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소라가 공연장에서 했다는 언급이 그에 대한 힌트가 되어주었다. 공연 도중 그는 앞으로 예민하고 섬세하게 노래해야 하는 곡들을 점차 줄일 생각이라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보이는 이 음반은 바로 그에 대한 전조였던 셈이다. (물론 이후 록 성향의 8집으로 충격을 주긴 했지만 이소라라는 뮤지션이 종잡을 수 없었던 적이 어디 한 두번이었던가.) [My One And Only Love]는 이 곡 외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5천만의 팝송이 무더기로 들어있는 앨범이다. 수록곡들의 감성적인 결 역시 대부분 원곡과 유사하다. 그러나 거기에 이소라의 목소리가 침입하는 순간, 갑자기 곡의 색채가 확 바뀌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목소리를 마치 현처럼 다루는 이소라 보컬의 진수가 담겨 있는 곡. 그리고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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