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겜실록] 똥겜이여 신화가 되어라, 빅 릭스(Big Rigs)

조회수 2018. 3. 9. 15: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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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굵직한 망겜과 똥겜을 살펴보고, 이들이 남긴 유산을 추적합니다!
▶ 그래. 아직 미출시작이라며 모두들 정신승리를 하고 있는 그 게임도 이야기 할 예정이다. 직접 플레이 하는 영상까지 첨부해서!

왜 하필 망한 게임이고 쓰레기 게임인가?

1972년, 아타리 퐁(Pong)의 등장 이후 컴퓨터 게임은 40년 넘는 역사를 쌓아 올렸다. 그 속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게임이 있다.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말 그대로 고전(Classic)의 반열에 오를 법한 걸작 게임들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승자만 있는 세계는 없다. 영원히 이름이 남을 걸작 게임의 이면에는, 망한 게임 내지는 쓰레기 심지어 똥 게임으로 불리는 온갖 수많은 실패와 치욕의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 명작 게임과 망한 게임, 둘은 게임 역사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때때로 이런 망겜, 똥겜들은 단순히 못 만들었다 재미없다를 떠나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기도 한다. 망겜 하나가 오랜 세월을 이어온 게임 브랜드를 끝장내고, 나아가서는 한 회사를 말아먹으며, 심지어 게임 시장 자체를 파괴하는 어마어마한 일까지 낳는다. 


▶ 이젠 쓰레기 게임의 신화가 된 그 게임. 표지만은 멋있다.

쓰레기 게임의 신화가 되다

지난 2004년 1월, 어떤 게임이 게임 커뮤니티를 강타했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이 아니라, 게임의 리뷰였다. 북미 게임 웹진인 게임스팟에서 리뷰어 알렉스 나바로(Alex Navrro)가 게임 리뷰를 하다 말고 뛰쳐나와 거리에 뒹구는 영상이었다. 나바로는 이 게임에 게임스팟 리뷰 역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에 1.0을 주었다.

게임스팟 최종 평가 그대로 역대 최악의(abysmal) 게임으로 등극한 이 게임의 이름은 ‘빅 릭스(Big Rigs: Over the Road Racing)’다. 빅 릭스는 스텔라스톤(stellar stone)이라는 게임 회사가 2003년 11월에 내놓은 레이싱 게임이다.


   

도대체 빅 릭스는 얼마나 쓰레기 게임이었을까? 최소한 박스의 설명대로라도 게임이 나왔으면 게임스팟에서 1.0점을 받고 리뷰어가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거리에 나가 뒹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임스팟 리뷰를 보고 실제로 ‘빅 릭스’를 해 본 게이머는 모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결론은 한결같았다.

어떻게 이런 게임이 버젓이 팔릴 수 있다는 말인가?

빅 릭스는 사실상 게임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박스에 써 있는 선전 문구 중 실제 게임에 구현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실제 빅 릭스 게임을 실행하면 트레일러 본체만 덜렁 주어지고 화물은 그림자도 없었다. 표지에 있는 경찰차와의 화려한 추격 그런 것도 물론 없었다.


   

아, 단 하나 레이싱 게임의 기본 조건인 경쟁자는 있었다. 다만 A.I.가 구현되지 않아 레이싱이 시작하든 말든 하루 종일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그리고 충돌 판정이 없어 길거리의 사물이나 라이벌 트럭을 내 트럭이 뚫고 다니는 건 기본이고, 언덕을 오르든 내려가든 속도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 박스의 설명은 그럴듯 했지만

맵 경계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지도 밖으로 튀어나가 공허한 구역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맵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다. 맵은 총 5개가 있었는데 그 중 1개를 선택하면 버그 때문에 무조건 게임을 강제종료 시켜 4개만 사용할 수 있었다.


   

빅 릭스는 게임에 최소한의 사운드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오로지 침묵뿐이었고, 가장 압권인 부분은 후진 속도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아 심지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후진해 달릴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컴퓨터 성능을 초월하는 속도로 후진해 폴리곤 지도 밖으로 뛰쳐나가는 빅 릭스는 이 시점에서 게임이 아니라 이미 초현실주의 예술작품으로 승화했다.

게임 커뮤니티가 들썩이고 구입자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제작사인 스텔라스톤은 마지 못해 ‘패치’라는 것을 내놓았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버그 때문에 쓸 수 없던 맵을 막아버리고 원래 있던 맵 하나를 복사 붙여넣기 해서 추가했고, “YOU’RE WINNER!”라는 문법이 틀린 문구를 “YOU WIN!”으로 바꾼 정도였다.


    

패치 후에 드디어 A.I.가 추가되어 경쟁자들이 ‘달리기’는 했지만, 경쟁자들이 결승선 앞까지 잘 달리다가 갑자기 멈춰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새로운 버그가 생겼다. 패치의 유일한 성과라고는 침묵뿐이던 빅 릭스의 세계에 약간의 사운드 효과를 더한 정도였다. 더 이상의 패치는 없었다. 

▶ ???
▶ 앗...아아...

이러니 빅 릭스를 해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게임스팟 리뷰어가 게임을 리뷰하다 말고 사무실을 뛰쳐나와 땅바닥을 구를 만한 게임이었다. 알렉스 나바로는 빅 릭스 리뷰를 통해 “빅 릭스는 게임스팟 역사상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게임이다. 더 이상 낮은 점수를 줄 수조차 없다. 게임스팟에는 0점이 없지만 빅릭스를 위해 마련해야 할 것 같다.” 라고 평을 내렸다.

Please don’t play this game. We can’t stress this enough. – 알렉스 나바로(게임스팟 리뷰어), 빅 릭스에 대해

빅 릭스는 어떻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그렇게 2004년 1월, 빅 릭스라는 이름은 쓰레기 게임의 신화가 되었다. 빅 릭스를 본 게이머들은 처음에는 경악했고, 그 다음에는 배를 잡고 뒹굴었다. 그리고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게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나?” 아무리 게임에 무지한 사람이 보더라도 빅 릭스는 제대로 된 게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게임이 버젓이 나와 판매까지 되었다. 왜?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빅 릭스를 만든 스텔라스톤을 살펴봐야 한다. 스텔라스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리잡은 회사로 2000년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빅 릭스를 내놓기 불과 3년전에 설립된 회사다. 스텔라스톤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단 7개의 게임만을 내놓고 2006년 망해버렸다.


    

짧은 기간 동안 스텔라스톤이 내놓은 게임은 전부 다 훌륭한 쓰레기 게임의 반열(?)에 들 만한 것 밖에 없었다. 첫 게임인 택시 레이서(Taxi Racer)부터가 세가의 크레이지 택시를 그대로 베낀 게임이었다. 그나마도 제대로 베끼지도 못해 저열한 그래픽과 버그로 욕을 먹었고, 스텔라스톤의 다른 게임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텔라스톤의 게임을 구입한 사람들은 게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 때문에 고객센터에 연락을 해도 아무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사실 스텔라스톤은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만들기 위해 설립된 회사였다. 회사 사무실은 LA와 네바다, 런던에 있었고 실제 게임 개발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하청을 주는 식으로 운영되었다. 이 회사는 $15000 가량의 저예산으로 PC 패키지 게임을 대충 찍어내 팔아 먹는 것이 사업의 전부였다. 이러니 저열한 퀄리티는 당연했다.


    

스텔라스톤의 회사 구조도 엉망이었다. 스텔라스톤의 많은 게임에 프로듀서나 리드 프로그래머로 이름이 올라 있는 세르게이 티토프(Sergey Titov)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명목상의 스텔라스톤 ‘공동 소유주’로 자신이 만든 게임 엔진 라이선스를 스텔라스톤에 주는 대신 회사 지분을 받은 사람이었다.


    

후에 빅 릭스 팬사이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세르게이 티토프는 자신은 실제로는 (스텔라스톤에 판매한) 게임 엔진 라이선스의 유지보수를 맡고, 동유럽의 ‘저렴한’ 게임 개발팀을 회사에 붙여주는 역할이었다고 주장 했다. 실제로는 스텔라스톤이 쓰레기 게임을 만들 때 마다 어디선가(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서) 인건비가 싼 개발자를 끌어 모아 만드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 스텔라스톤의 게임 개발이라는 건 사실상 이런 방식이었다

이런 식의 탁월한 원가 절감(저렴한 게임 엔진 사용과 인건비가 싼 동유럽에 하청 주기)을 통해 스텔라스톤은 2003년 하반기부터 2004년 1월까지 6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 5개의 게임을 내놓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스텔라스톤식 쓰레기 게임의 정점을 찍은 게임이 바로 2003년 11월에 내놓은 ‘빅 릭스’였다.


    

택시 레이서를 비롯해 스텔라스톤이 찍어낸 쓰레기 게임들을 보고 있으면 ‘이딴 게임을 도대체 누가 사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티토프의 말에 따르면 스텔라스톤의 거지 같은 게임도 북미 시장에서 10만장이나 팔려 나갈 때가 있었다고 한다. ‘빅 릭스’도 2만장 조금 안 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의외로 짭짤한 장사다.

▶ Gettysburg: Civil War Battles와 Ultimate Civil War Battles: Robert E. Lee vs. Ulysses S. Grant. 2003년작이다. 같은 해 '콜 오브 듀티'가 발매되었다.

스텔라스톤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저렴하게 만들어 일단 팔아먹으면 땡 이었고 그 다음은 생각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이러니 스텔라스톤이 찍어낸 게임에는 당연히 버그가 넘쳐났고, 사후지원은 나 몰라라 할 수 밖에 없었다.


   

스텔라스톤 게임의 거지 같은 상태는 유통사의 개입으로 더욱 심각해졌다 스텔라스톤의 게임은 택시 레이서를 제외하고 전부 게임밀(GameMill)이라는 곳에서 유통했다. 이들은 스텔라스톤이 만드는 게임에 저렴한 인력을 공급(?)하기도 했고, 때로는 게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다. 가장 나쁜 방향으로 말이다.

스텔라스톤은 2003년 즈음 원래 ‘미드나잇 레이스 클럽(Midnight Race Club)’이라는 레이싱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이 역시 우크라이나에 하청을 준 게임이었다. 그런데 게임밀의 결정으로 이 레이싱 게임을 반으로 나누어(!) 연말시즌에 맞춰 출시하기로 했고, 다급한 시한에 맞추다 보니 미완성 게임이 그대로 박스에 담겨 시장에 팔려 나갔다.


    

그 결과는 ‘빅 릭스’였다. 버그가 많은 게임을 두고 “게임을 만들다 말았냐?”라는 농담이 있는데, 농담이 아니라 빅 릭스는 진짜로 그랬다. 저렴한 인건비의 우크라이나 개발자들이 틀만 잡아 놓은(!) 상태인 게임이 박스에 담겨 팔려 나갔으니 쓰레기 게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스텔라스톤이 본래 만들던 ‘미드나잇 레이스 클럽’도 빅 릭스 출시 불과 2개월 후 만들다 만 상태로 출시했고, 빅 릭스와 비슷한 수준의 쓰레기 게임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싸구려 게임으로 먹고 사는 회사라고 해도 이 두 게임의 수준은 너무나 심각했고, 스텔라스톤은 미드나잇 레이스 클럽을 끝으로 2006년 문을 닫았다. 빅 릭스라는 쓰레기 게임을 역사에 남긴 채 말이다.

쓰레기 게임의 역사는…계속된다!

빅 릭스는 장대한 게임 역사 속 ‘전설적인 쓰레기 게임’으로 이름이 영원히 남겠지만, 사실 스텔라스톤만 이런 식의 게임 장사를 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대한 저렴하게 인력을 끌어 모아 대충 게임을 만들어 과대광고로 팔아먹고 사후지원은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장사는 이제 게임 산업의 뒷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현존하는 기업이라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북미만 해도 여전히 스텔라스톤 비슷한 식의 장사를 해 ‘쓰레기 게임 전문’으로 악명 높은 게임 회사가 몇 군데 있다. 이런 회사 중 어떤 곳은 일본 유명 만화 라이선스를 가져다 쓰레기 게임을 만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비슷하게 형편 없는 저가형 게임만 전문으로 유통하는 게임 유통 기업도 있다.

▶ 9년만에 게임스팟 리뷰 점수 1.0을 기록하며 빅 릭스의 왕좌를 계승한 Ride to Hell: Retribution

빅 릭스 이후에도 ‘전설적인’ 쓰레기 게임은 간간히 등장하며 맥을 잇고 있다. 빅 릭스가 2004년 1월 게임스팟 리뷰 1.0을 받은 이후 약 9년동안 쓰레기 게임의 왕좌(?)를 지키고 있었지만, 2013년 빅 릭스를 계승하는(?) 리뷰 점수 1.0짜리 쓰레기 게임이 또 나타나고 말았다. 2014년에도 1.0점짜리 쓰레기 게임이 또 나타났다.


    

한편 ‘빅 릭스’의 또 다른 유산은 여전히 게임 산업을 떠돌고 있다. 명목상이든 아니든 빅 릭스의 책임자로 이름을 올린 세르게이 티토프다. 그는 2006년 스텔라스톤의 폐업 이후 두 번의 이직을 했다. 한 번은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작 게임에 참여했고, 한 번은 게임 역사상 손꼽히는 사기극 반열에 드는 쓰레기 게임의 책임자로 참여했다. 빅 릭스의 전설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 빅 릭스에 사용된 게임 엔진을 제공했고, 프로듀서로 이름이 올라 있는 세르게이 티토프(Sergey Titov). 이 사람은 몇 년 뒤 다시 한 번 악명을 떨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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