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타워팰리스에 버금갈 정도 유명했다는 아파트, 기억하십니까?

조회수 2020. 4. 2.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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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부터 홍제천과 내부순환로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글씨로 ‘유진맨숀’이라 적힌 건물을 볼 수 있다. 마치 긴 역사를 설명하듯이 벗겨진 외벽과 빛바랜 간판들이 멀리서부터 보인다. 현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성한 곳 하나 없는 상가이다.


하지만 1970년대 유진상가는 현재 타워팰리스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대한민국 주상복합 단지의 첫 세대였다. 현재 같이 지어진 세운상가, 낙원상가는 재건축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유진상가 재건축 소식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과연 유진상가는 어떠한 이유에서 지금까지 홍제동의 터줏대감으로 남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1970년 판 타워팰리스

유진맨숀이 준공된 1970년도는 아파트를 구경하기 힘든 시대였다. 당시 전용면적 109~221㎡(약 33~67평) 중대형 주상복합아파트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는 주택이었다. 주거동에는 ‘유진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였는데 ‘맨션’은 과거 고급 아파트에 주로 붙었던 이름이었다. 또한 서울 중심부와 가까운 탓에 실제로 상당수의 정부와 법조계의 고위직 가정이 초기에 입주하였다.


유진상가 건물은 당시에는 보기 힘든 매우 독특한 형태의 구조였다. 하나의 건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A동과 B동, 이렇게 두 개의 동이 마주 보고 연결된 모양이다. 그리고 두 개의 동 사이에는 큰 규모의 중앙 정원이 있다. 이 중앙정원은 길이 160m, 폭 16m나 된다. 엄청난 크기의 중정은 아이들이 뛰노는 넓은 마당으로 사용되었다. 옥상은 ‘테라스형 아파트’에 가깝다. 지금까지 넓은 옥상 공간은 작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대한민국 수도의 마지막 바리케이드

유진상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안보’다. 유진상가가 지어지던 1970년 무렵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또한 유진상가의 위치는 서울로 통하는 길목에 있다. 홍은동 사거리가 뚫리면 곧장 청와대와 서울 시가지 중심이 위험에 처하는 계산이 뒤따랐다. 이로 인해 유진상가는 애초부터 군사적 목적을 고려해 지어지게 되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진지인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진상가는 북한 전차의 기동을 저지·지연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는 기둥과 상판뿐 아니라 외벽까지 견고한 철근콘크리트로 축조되었으며, 건물 전체가 거대한 진지로 구축된 사실로 뒷받침되었다. 1층 필로티 공간에 대해선 유사시 아군 기갑차량의 엄폐호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이란 말이 있다. 외부로 트인 1층 공간이 적의 곡사화기로부터 내부 차량을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깊고 높기 때문이다.


이외에 유진상가가 전차의 기동을 차단하는 일종의 ‘대전차방호시설’이라는 견해도 있다. 깊고 높은 1층 필로피 공간을 최악의 경우 폭파해 상부의 아파트 건물이 도로를 덮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1층의 필로티는 낙석형 장애물의 지지대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아파트 동 전체가 초대형 낙석 구실을 하도록 설계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단 의견도 있다.


노후된 유진상가, 재개발의 역사

1991년 북부간선도로 2구간이 홍제천을 따라 설계되면서 유진상가 B동 상공을 지나가게 된다. 이 때문에 유진상가 철거에 대한 논의가 정부와 거주민들과 상인들 사이에서 오갔다. 하지만 유진상가는 사유재산이어서 복잡한 행정절차와 규제사항이 있었다. 정부측은 원만한 진행을 위해 재건축 가능성과 행정 지원 요청을 제안했다. 하지만 유진상가 측에서 모종의 사유로 하게 된다. 결국 B동 4,5층만 철거되면서 주민들은 이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비대칭적 형태를 지니게 된 것이다.


현재 도심에 상가와 백화점이 잇따라 들어서며 유진상가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1980년 13.2㎡ 크기의 상가는 평균 2000만~3000만 원의 임대료는 현재, 3.3㎡당 10만 원 수준이다. 비슷한 시기에 건축된 세운상가, 낙원상과와 다르게 재건축에 대한 반대가 없었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다른 상가들에 비해 설계자가 불분명하여 건축물의 문화적, 미래적 가치가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2010년 8월에는 홍제1 도시환경 정비구역 조합이 설립되기도 했다. 당시 용적률 505.44%에 최고 높이 165m의 주거용 건물 3개동과 업무빌딩 1개동을 짓는 계획을 진행했다. 하지만 서울시 측에서 사업시행 인가를 반려했다. 이는 48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유진상가 맞은편에 있는 홍제초등학교 일조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진상가의 재건축은 불발되면서 현재까지 낡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유진상가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크다. 이를 반증하듯 과거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 지역 대부분의 후보들이 ‘유진상가 철거’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다수 당선인들의 무관심 속에 7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논의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여전히 상가주민들은 재건축에 대한 희망을 놓고 있지 않다. 어느새 삭막해진 유진상가에도 사람들의 발걸음과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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