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윤덕영이 옥새 내주고 지은 '벽수산장' 자리에 들어선 것은?

조회수 2019. 12. 24.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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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과거부터 명당으로 꼽혔던 지역이다. 그만큼 역사를 기릴 수 있는 건물도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특히 서촌은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대에 이러한 서촌의 아름다움을 막는 거대한 별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크기가 너무도 커 ‘한양의 아방궁’이라고 불렸던 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친일파 윤덕영의 초호화 별장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날 경술국치. 이 사건의 배후에는 친일파 윤덕영이 존재한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당시 자신의 조카딸 순정효황후가 치마에 옥새를 숨기자, 그는 이를 빼앗아 불법 조약에 날인하게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제국으로부터 훈 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친일파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출처: 벽수산장의 연못이 커 당시 지도에도 그 모습이 그려질 정도였다.

1910년대 말 윤덕영은 친일행위로 번 돈으로 지금의 종로구 옥인동 47번지 일대를 전부 매입한다. 이후 14~15년에 걸쳐 대저택 ‘벽수산장’을 지었다. 벽수산장은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띌 정도로 규모가 엄청났다. 심지어 뱃놀이를 하기 위해 외부에 200평 넓이의 연못까지 조성해 놓은 상태였다.


내외부 자재는 말할 것도 없다. 고급 프랑스 자재와 대리석, 황금, 옥 등으로 꾸며져 마치 궁궐을 연상케 하였다. 공사에 얼마의 금액이 사용되었는지 모를 정도다. 심지어 인왕산 중턱에 꼿꼿이 서 있어 4대문에서 그 자태가 뻔히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의 그의 호화 저택을 두고 ’한양의 아방궁’이라 조롱한 것이 이해되는 이유다.

출처: 윤덕영이 벽수산장 뒤쪽에 따로 지은 집의 모습.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5번이나 주인 바뀐 벽수산장

윤덕영은 대저택을 짓고도 그곳에서 살지 못했다. 관리가 어려웠을뿐더러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벽수산장 뒤쪽에 따로 마련한 가옥에 살면서 홍만자회 조선지부에게 벽수산장을 임대하였다. 윤덕영이 죽고 난 후, 벽수산장은 아들의 양자 윤강로에게 상속되었다.

윤강로는 상속 1년 만에 벽수산장을 미쓰이 광산 주식회사에 매각했다. 그러나 4년 뒤 바로 해방을 맞이하면서 벽수산장은 덕수 병원에 넘어가고 만다. 한국 전쟁 때에는 미 8군 장교 숙소로 사용되었다. 1954년 6월부터는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의 본부로 쓰였으나 1966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본부는 이전된다. 그리고 마침내 1973년 도로정비 사업으로 벽수산장은 철거된다.

재개발 사업으로 주민 간 갈등 고조

벽수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직 옥인동 47번지에는 그 흔적이 남아있다. 안채는 복원되어 여러 세대가 입주해 있고, 골목길에는 출입구를 알려주는 문설주가 벽수산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옥인동 일대에는 벽수산장을 비롯한 오랜 역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점 때문에 2000년대 후반 재개발 사업을 두고 주민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주거 환경 개선과 역사 보존이라는 상이한 의견을 두고, 결국 관리처분계획 인가는 보류되었다. 2017년 다시 한번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재정 지원을 약속하면서 옥인동은 ‘역사문화형 도시재생사업’으로 주민 간의 갈등을 해결하게 되었다. 현재 서울시는 주민 간담회를 통해 원만한 사업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한때 ‘한양의 아방궁’이라 불리며 호화스러움을 뽐냈던 벽수산장. 그 호화스러움을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 끝은 ‘화재’로 마무리되면서 우리에게 잘못된 권력의 허황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아직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글 최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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