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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스

'평당 4억 5천만원' 청담동 집과 하와이까지 부동산 가진 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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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평생직업이 사라졌다. 대기업 취직했다는 말에 40대 은퇴하겠네라는 질투 어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안정성이 제일이라며 적성에도 맞지 않은 공무원 공부에 나서는 이들도 허다하다. 일견에 서는 무능하면 한 직장을 오래 다니고 유능하니까 3년마다 이직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평생 직무도 아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대신 사람들은 평생 직무를 이어갔다. 이직을 해도 맡은 직무는 그대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변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세상이다. 전에는 포토샵만 할 줄 알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상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과거에 자신의 적성을 깨닫고 부자가 된 이가 있다. 그는 코미디언으로 취업했으나 가수로 전향한 뒤 부동산 투자자, 사업가라는 단계를 거쳤다.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청담동과 하와이에 집을 두고 자유롭게 살고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으로 성공한 가수 방미를 조금 더 알아보자. 


1. 가수 방미

출처imbc

방미는 80년대 각종 히트곡을 탄생시킨 가수다. 그는 본래 1978년 MBC 코미디언 공채 2기로 연예계에 진출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였다. 그러나 그는 곧 가수로 전향해 '날 보러 와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유명 가수 반열에 올랐다. 


출처hkbs

방미는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그가 10살 무렵 화투 등의 노름에 빠져 집을 망쳤다. 본래 사업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도박에 빠져들었다. 집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셋방살이를 전전하다 서울대학교 시체실 뒤편에서 살기도 했다.


출처kbs

방미가 돈에 눈을 뜬것은 이처럼 가난한 생활도 한몫했다. 도박에 빠진 아버지는 학교 등록비를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방미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 살림과 동생 학비까지 마련해야 했다. 방미는 덕분에 연예인이 되어서도 근검절약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2.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에 나서다

출처서울역사아카이브

살림과 학비 마련을 위해 방미는 고등학교 3학년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수가 된 이후에는 야간업소, 무명 엠씨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렇게 그는 당시 7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당시 1979년 입주한 은마아파트가 102㎡가 6500만~7500만 원, 112㎡가 7500만~8500만 원 수준으로 언론에서도 서민, 중산층 아파트라 평가할 때였다. 


출처@mbs1213

1982년, 방미는 700만 원을 목돈 삼아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첫 투자처로 대전 유성온천 근처를 잡았지만 실패했다. 이후 방배동 32평 궁전 아파트를 2500만 원에 매입하면서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가 이어졌다.  


출처upi, macro

중앙일보에 따르면 대한민국 부동산은 80년대 7000만 원 아파트가 90년대 1억 6000만 원, 2000년대 4억 원, 2010년 이후 5억 3000만 원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미는 한 방송에서 "내가 (청담동 땅을) 알았을 때 30년 전쯤 평당 2000만 원이었다. 지금은 평당 4억 5000만 원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강남 일대와 용산을 넘어 제주도까지 투자했다. 그렇게 30번 이상 이사하며 투자한 결과 그는 전통 부촌으로 유명한 한남동 유엔빌리지 구역에 입성하게 되었다. 이 여파로 그는 방송에서 '자산 200억 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이때 투기라는 비난을 받고 2007년 미국으로 떠났다. 


3. 사업가로 변신하다

출처mbn

미국에 도착한 방미는 부동산 투자자에서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서 주얼리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직접 만든 주얼리에서 수익이 났기에 방미는 쥐와 벌레가 오가는 매장에서 잠을 청하며 손가락이 휠 정도로 만들어야 했다. 


8년 동안 미국 생활을 하며 그는 맨해튼의 정보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맨해튼에 많은 유명인들이 투자한다는 점도 알았다. 또한 한국 부동산보다 맨해튼의 부동산이 저렴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뉴욕 트럼프 플레이스를 최초 분양가 32만 달러에 매입해 60만 달러에 매각해 시세차익을 얻기도 했다. 


서프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그에게 기회였다. 그는 저렴한 가격에 나온 맨해튼 부동산을 매입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맨해튼 부동산 폭락은 6개월 만에 시세의 90%를 회복했다. 1년 뒤에는 기존 시세를 뛰어넘었다. 그가 해외 부동산으로 수익을 올리는 동안 한국의 부동산 규제는 나날이 강해지고 있었다. 


출처tvchosun

최근 방미는 방송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가수보다 부동산 부자로 유명한 그는 서울 청담동, 한남동과 제주도, 미국 LA, 하와이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자신이 해외부동산 투자로 수익을 낸 만큼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투자를 권장하고 있다. 국내 부동산은 제약이 많지만 해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업계 관계자들은 개인투자자 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해외로 이미 눈을 돌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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