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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스

세계 최대 메신저 서비스 창업자가 된 남자가 공개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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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ricepan

오늘은 페이스북만큼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알려진 왓츠업의 창립자 이야기를 나눠볼까 한다. 공동창립자 얀 쿰(Jan Koum)은 유년시절, 우크라이나에 살던 가난한 아이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전 세계 인구 중 12억 명이 쓰는 메시지 앱, ‘왓츠앱’의 창립자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의 현재 추정 자산은 한화로 약 11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동유럽 빈민가 출신의 그가 지금의 어마어마한 부를 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 그의 나이 고작 41살이다. 어떻게 오늘날의 억만장자, 쿰이 있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출처Wccftech

2014년, 페이스북이 놀라울 정도로 큰 금액인 190억 달러, 한화로 약 21조에 왓츠앱을 사들이면서 오늘의 주인공, 쿰은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자산은 거의 페이스북 주식으로부터 얻은 것이라도 해도 괴언이 아닌데 지난 몇 년 간 그 주식을 열심히 팔아 약 11조 원의 자산을 얻었다. 

출처Recode

하지만 쿰이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76년, 우크라이나의 수돗물조차 나오지 않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 학교는 너무 가난해서 실내 화장실조차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겨울 날씨를 상상해 보세요. 영하 20 도는 거뜬히 넘는 날씨에 어린아이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주차장을 가로질러 실외 화장실까지 가야만 했죠. 힘들었던 기억이나 제게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출처Brandsynario

 이처럼 동유럽 빈민가 출신이었던 쿰은 16살이 되던 해 공산주의였던 그의 고향 우크라이나를 떠나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주 후에도 캘리포니아 마운틴 뷰의 작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고 식료품 바우처를 받는 저소득층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출처Flickr / Lauri Rantala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고등학생 쿰은 동네 가게에서 컴퓨터 관련 책을 사서 다 읽으면 책을 반품하는 방법까지 써가며 컴퓨터 독학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그의 삶은 산 호세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에서 보안 테스터로 일하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1997년, 언스트앤영에서 일하던 중 그는 야후의 브라이언 액튼과 인연이 닿아 야후에서 보안 관련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쿰은 야후에서 9년 동안 일하면서 사회기반시설 엔지니어링 매니저가 되었다. 하지만 2007년, 그와 액튼이 함께 야후를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그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쿰과 액튼은 거듭된 생각 끝에, 사람들이 휴대폰에 그들의 상태 메시지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들은 2009년 2월 24일, 왓츠앱 법인을 설립했고 그해 여름, 왓츠앱을 메시지 앱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왓츠앱의 첫 사무실은 창고에 허름하게 마련되었으며 그 곳은 너무 추워서 직원들이 담요를 뒤집어쓰고 생활해야 할만큼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출처BGR.com

하지만 이 창고에서 왓츠앱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왓츠앱은 어떤 마케팅이나 홍보 없이도 빠르게 성장했고, 특히나 SMS 문자에 크게 의존하는 덜 개발된 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무려 21조에 인수했던 2014년 당시에는 월 실사용 고객이 4억 5천만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려 12억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거대 메세지앱이 되었다. 

출처Business Insider

쿰과 액튼은 야후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광고를 지양할 것.’이라는 왓츠앱의 경영방침을 정립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고객들의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도 무척 신중히 고려했다. 쿰은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우리 고객에 대해 조금만 알고 싶어요. 우리는 광고 기반으로 운영되는 앱이 아니기에 고객들의 개인 정보는 필요가 없죠.” 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출처Pixr8

2012년, 드디어 왓츠앱은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들은 마크 저커버그와 인연을 맺게 된다. 그 후 2년 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면서 세계를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그들이다. 2014년 2월 저커버그는 쿰과 액튼에게 계약을 제안했고 그렇게 쿰을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후, 갑자기 왓츠앱의 주식은 7조 7000억원으로 치솟았고 페이스북의 주식 가치와 함께 쿰의 자산도 계속 가치를 올려갔다. 쿰은 페이스북의 이사회에 멤버가 되었으며 몇 십억에 이르는 주식 수당도 배당받았다. 이처럼 부자가 된 쿰은 왓츠앱이 인수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실리콘밸리 커뮤니티 재단에 6300억원가량을 조용히 기부했다.

그리고 그는 오픈소스로 운영되는 시스템 FreeBSD관련 재단에도 11억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FreeBSD가 저를 가난에서부터 구해주었다고 볼 수 있죠. 저는 당시 FreeBSD를 쓰고 있었는데 제가 야후에서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야후가 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라고 당시 쿰은 설명했다.

그가 누리게 된 엄청난 부에도 불구하고 쿰은 아직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겸손하게 답하고 있다. 그는 왓츠앱을 페이스북에 판 것이 그의 삶의 오직 10%만 바꿨다고 하며 여전히 이전과 같은 소박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페이스북 본사와 그리 멀지 않은 마운틴뷰의 소박한 왓츠앱 사무실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현재 저는 왓츠앱이 어떻게하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써 쿰은 왓츠앱을 세계적으로 키우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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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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