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범죄 확률이 높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조회수 2020. 12. 22. 0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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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범죄를 많이 저질러서 경찰에 더 많이 붙잡히는 건 아니다.

미국 형사 제도는 가난한 유색인종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걸까요? 실제로 미국 내 저소득층 유색인종은 상대적으로 경범죄 등으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사 제도를 연구하는 알렉산드라 나타포프(Alexandra Natapoff) 로욜라대학 로스쿨 교수는 경찰의 표적 검문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합니다.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동네에 경찰 단속이 집중됩니다. 그래서 경범죄로 붙잡힐 확률이 높아지죠. 가난하기 때문에 처벌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옵니다. 이들에게 적지 않은 벌금과 과태료는 재정적인 부담감뿐 아니라 이를 내지 못할 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두려움도 함께 합니다. 실제로 저소득층 가운데 경범죄를 짓고 벌금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되는 이들도 많습니다.


데이터도 이를 입증합니다. 범죄에 대한 미국 전체 통계는 경찰이 흑인이나 히스패닉 운전자를 검문할 확률이 백인 운전자의 확률보다 더 높다고 말합니다. 똑같이 마리화나를 소지하고 있는 경우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될 확률은 흑인이 백인보다 네 배 높습니다. 시카고, 뉴욕 등 대도시에서 경찰이 불시에 검문검색(stop and frisk)을 하는 대상은 주로 흑인입니다.


출처: 뉴욕 남부지방법원 판례. 2013년 뉴욕 지방법원은 불시 검문검색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문제는 정작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이 범죄를 더 자주 저질러서 경찰에 더 많이 붙잡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뉴욕의 불시 검문검색 기록을 보면 경찰이 수색한 사람의 소수만이 무기나 밀수품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확률로 보면 흑인 1%, 백인 1.4%입니다. 즉, 흑인의 범죄 확률이 높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셈입니다.


데이터는 특정 인종이 교통법규를 더 무시하고 난폭하게 운전한다는 통념도 사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마약을 하는 비율도, 마약을 (불법으로) 판매하는 비율도 어느 인종이나 비슷합니다. 하지만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는 비율을 보면 흑인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나타포프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가끔 잘못한 게 없으면 경찰이 왜 불러 세우겠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입니다. 경찰이 수상한 사람을 불러 세우는 데엔 합리적인 방법론이 있는 게 아니거든요. 유색인종들이 사는 동네에 가보면 경찰들은 정말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 사람을 불러 세우고 검문검색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무언가 수상한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경찰 개개인의 인종차별 사고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흑인이 상대적으로 범죄 저지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연구를 통해서 입증된 결과입니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면 운전을 하는 흑인이든 길을 걸어가는 흑인이든 무언가 범죄 용의점이 있다는 의심을 더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흑인 검문 횟수가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 조직의 업무 평가 방식과 기대치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경찰관의 업무 능력을 평가할 땐 생산성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산성은 얼마나 많이 검문하고 딱지를 뗐는지, 얼마나 많이 체포했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때문에 경찰이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저소득층 혹은 유색인종 동네를 찾아가 실적을 올립니다. 부유한 백인 사회에서는 딱지 하나 떼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정치적인 힘을 동원해 경찰이 원칙대로 검문하는지 하나하나 따져 들 것이고, 표심을 거스를 수 없는 시장 등 선출직 공무원을 압박해 경찰을 견제하려 할 테니까요.


일부 경찰관들은 이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경찰 당국의 암묵적인 할당제를 고소해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뉴욕시 경찰 아딜 폴랑코(Adhyl Polanco)는 W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찰의 직무를 업무량만으로 평가하게 되면 경찰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 소수자 커뮤니티로, 흑인들이 사는 지역으로, 호화 요트 같은 건 꿈도 못 꾸는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동네로 갑니다. 실적 올리는 게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뉴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법무부의 ‘퍼거슨 보고서’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타납니다. 퍼거슨 시는 경찰들을 관할 구역에 따라 할당한 뒤 실적 경쟁을 부추겼습니다. 경쟁 기준은 얼마나 많은 범칙금을 부과해 시 정부의 수입을 올리느냐였습니다.


대부분 경찰은 흑인과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에 투입되었습니다. 퍼거슨 인구의 67%는 흑인입니다. 2012~2014년 전체 인구의 85%가 적어도 한 번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90%는 딱지를 떼거나 법정 출석요구서을 받았다고 합니다. 체포된 사람 가운데 93%는 흑인이었습니다.

체포 이유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법무부 보고서에서 발췌한 사례를 한 번 보시죠.


경찰관들이 체포 시 자주 사용하는 경범죄 조항은 29조 16항의 1절이다. 공무를 집행하고 있는 경찰관의 법적 명령이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죄, 즉 공무집행 방해죄 정도에 해당한다. 많은 경우 경찰관은 확실한 증거 없이 심증만 있는 상황에서도 정지 명령을 내린다. 범죄가 발생할 징후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지시는 ‘법적 명령’이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경찰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시민은 공무 집행을 방해한 죄로 체포된다.


‘겉치레 정지 명령(pretextual stop)’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 후미등이 깨진 차를 발견한 상황입니다. 경찰은 이 차량을 보고 혹시 다른 사고나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닌지 불러 세워 조사를 벌입니다. 전적으로 경찰관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겁니다. 이와 같은 겉치레 정지 명령은 경찰의 지나친 개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필란도 카스틸(Philando Castile)가 사망 당시 타고 있는 승용차

필란도 카스틸(Philando Castile)의 경우도 바로 이런 겉치레 정지 명령에서 시작된 재앙이었습니다. 처음에 경찰이 그를 불러 세운 건 차량 후미등이 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문 과정에서 경찰관은 카스틸이 강도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해당 경찰관은 카스틸의 넓적한 코가 용의자와 비슷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넓적한 코는 흑인의 외형적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또한 심각한 인종차별적 사고입니다.) 카스틸은 강도에 가담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히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혀 벌금을 내게 됩니다. 벌금을 못 낼 경우 징역을 살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 경찰에 항의하다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카스틸은 그중 최악을 맞이했습니다.


범죄학자들이 ‘죄목의 확장(net widening)’이라 부르는 문제도 생각해볼 대목입니다. 죄목의 확장은 정부가 범죄의 가지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지방 정부, 주 정부, 연방 정부는 점점 더 많은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과거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거나 주의만 받고 넘어갔을 경범죄도 이제는 벌금형, 심지어 징역형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찰은 또 예전 같으면 웃고 넘겼을 일도 심각한 범죄 다루듯 단속하고 처벌하게 된 겁니다.


교통신호 위반이 대표적입니다. 예전에는 노란불에 교차로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거나 차량이 드문 시간에 신호를 무시한 차량, 아니면 응급 환자를 태우고 가는 등 사정이 있던 개인 차량에 굳이 딱지를 떼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교차로에 설치해놓은 단속 카메라가 이를 엄격하게 단속합니다. 곤잘레즈 반 클레브 교수는 마치 거대한 그물로 어류를 싹쓸이하는 어선처럼 경범죄를 긁어모으는 꼴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목을 늘려 더 많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겁니다. 단속되는 사람들이 전부 감옥에 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벌금을 걷고 법정에 세우는 것 자체가 처벌인 셈이죠. 비숙련직에서 일하는 저소득층에게 이건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월차 같은 제도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니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루 일을 쉬고 법정에 가기가 어렵죠. 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액수가 아니다 보니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벌금을 내기 위해 아이들 양육비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자가 됩니다. 이 또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복스)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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