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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정안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걸까?

조회수 2020. 12. 4. 0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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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나면 끄덕이게 되는 노동법 개정안 핵심 쟁점 5가지

관련기사: 전세계에서 한국을 포함한 단 7개 국가만 거부한 ILO 노동협약



정부는 10월 1일 국무회의를 열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관련 법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등 3개 법안입니다.


정부는 ILO 협약과 국내법을 일치하기 위해 만든 개정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은 ‘노동개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노동법 개악 말고 ILO 핵심협약을 즉각 비준해야 한다” -김재하 민주노총 비대위원장 (2020.10.19)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면서 노동법 개악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은 사기 행위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2020.10.19)

“정부는 ILO 핵심협약에 반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즉시 철회하고, 핵심협약 비준을 즉각 추진하라”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2020. 10. 27.)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라. 전면적이고 온전한 ILO 핵심협약의 비준을 촉구한다” –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2020. 10. 29.)

노동계는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이 ILO 기준에 부합하거나 노동기본권을 개선하기보다 오히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 개정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단결권: 실업자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


현행법은 기업별 노조에는 종사자만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해고자 및 실직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ILO핵심협약의 '자유롭게 노조할 권리'를 반영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것 역시 핵심협약 위반이라고 반박합니다.

<노동조합법>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4.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근로조건의 유지ㆍ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 다만,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

가.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나.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받는 경우
다. 공제ㆍ수양 기타 복리사업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라.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
마.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노동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개정안에서 정부가 삭제하려는 현행 노동조합법 제2조 4호 라목 때문입니다. 본문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단서에는 ‘다만, 해고된 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의 구제신청을 한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이 있을 때까지는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이 달려있습니다.


정부가 단서를 삭제하면 ‘근로자가 아닌 자(해고자, 구직자 등)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본문은 그대로 남습니다. 현재와 차이가 없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사전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를 설립할 수 있는 권리와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해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어떠한 차별도 없이 보장 받아야 한다”는 ILO 87호 협약 제2조에 위배됩니다.


ILO는 해고자 등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가 아니라, ‘라목 전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들도 단서만이 아니라,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 전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2. 단결권: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이상한 개정안


정부 개정안에는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지만, 해고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출입 및 시설사용에 관한 사업장의 내부규칙’ 또는 ‘노사간 합의된 절차’를 준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업장 내부 규칙을 정하는 주체는 사용자이고, 노사합의 역시 사용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가 ‘허가’를 하지 않으면 해고자는 사업장 내에 있는 노조사무실을 이용할 수도, 동료 조합원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정부 개정안을 보면 해고자는 기업별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 없습니다. 기업별노조에 가입해 조합원 명부에 올라가 있고, 조합비도 납부할 의무는 있지만, 임원이나 대의원이 될 수 있는 피선거권 (선거권: 뽑을 권리, 피선거권: 뽑힐 권리)은 없습니다. 정부가 만든 개정안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은 허용한다고 해놓았지만 노조활동은 아예 할 수 없도록 각종 제약을 걸어 놓았습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이상한 개정안입니다.




3. 단체교섭권: 단체협약 유효기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사측과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조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무기가 단체협약입니다. 정부는 개정안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습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은 ILO 기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은 기본적으로 관련 당사자가 정할 사항이지만, 정부의 조치가 고려 중에 있다면 법은 노사정 합의를 반영하여야 한다” (ILO, 2018년 결사의 자유 위원회 결정 요약집)


ILO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상한을 3년으로 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단체협약의 유효기간을 바꾸려면 노사정 합의를 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노사정 합의없이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ILO의 권고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노조 위원장의 임기는 통상 2년입니다. 노조가 가지고 있는 단체협약의 유효기간과 같습니다. 노조 위원장을 선출할 때나 능력을 평가할 때 단체협약을 어떻게 진행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임기 중 단체교섭을 제대로 못한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의 신뢰를 받기 어렵습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되는 것은 단순한 기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노조의 단결과 교섭력 약화로 노조 활동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문제이기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4. 단체행동권: 직장점거 금지


노조가 파업을 하면서 직장 내 시설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행위는 불법일까요? 아닙니다. ILO는 직장점거도 쟁의행위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ILO 전문가위원회는 피케팅과 직장점거와 같은 일정한 유형의 쟁의행위는 그것이 평화적인 방법에서 벗어나거나 근로할 자유를 방해하는 경우가 아닌 한 불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 제306차 보고서)


단체행동권 관련 정부 개정안(42조 1항)은 “생산 및 그 밖의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과 이에 준하는 시설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부 또는 일부’라는 말은 아예 점거 자체를 100% 금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개정안을 해석하면 노조원이 사업장 내에서 피켓팅을 하거나 집회를 여는 행위, 현장을 방문해 노동자를 만나 선전전을 펼치는 행위 등도 모두 금지됩니다. 아예 직장 내에서는 쟁의 행위 자체를 할 수 없고, 사업장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점거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 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인 경우 쟁의행위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정부 개정안의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는 ILO 기준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례조차 무시하는 동시에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무력화시키는 조항입니다.




5. 정부 개정안에서 누락된 ILO 권고사항


ILO는 택배기사, 화물노동자와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등 노동3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EU도 한-EU FTA에 따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면서 가장 먼저 노조법 제2조 제1호 ‘근로자 정의 규정’을 개정하여 특수고용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 개정안에도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조항은 누락됐습니다.

한국의 노동법은 진짜 사장, 원청 사용자를 특수고용노동자의 사용자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휘 감독하며 노동력을 제공받아 이익은 얻으면서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일하지만 자신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결정권도 능력도 없는 하청업체 사장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하청노동자들은 바뀌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위험에 노출된 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근무를 해야 합니다. 외주화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현재 한국의 특수고용노동자는 2,209,343명으로 전체 사업체 종사자의 약 12%에 달합니다. 소셜미디어, 앱 등 디지털 플랫폼 사업이 증가하면서 플랫폼 노동자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ILo핵심협약 비준 홍보를 위해 만든 카드뉴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은 ILO가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권고한 사항을 중심으로 ILO 기준에 맞게 개정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부는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오히려 ILO 기준보다 노동기본권을 후퇴시키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ILO 협약을 보면 “국내법은 이 협약에 규정된 보장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법 개정안은 마치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의 ‘체육관 민주주의’,’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한국식 ILO 기준’이라는 황당한 법안으로 탈바꿈 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정부 개정안을 가리켜 “ILO 핵심협약은 국제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기준이자 어려운 환경에 있는 노동자들도 자기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정당한 대가를 보장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벨트’마저 뜯어내버린 최악의 개악안을 두고 벌이는 자화자찬이 참 민망합니다.


BY 아이엠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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