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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고 말하는 용기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조회수 2020. 11. 24. 11: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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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매일 늦게 들어온다


버스를 타다가 졸린 나머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깜빡하고 잠이 들어버린 나를 깨운 것은 낯선 아주머니의 고함이었다.


"오만 동네 다 들렀다가 오나, 뭐 이렇게 늦게 와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주머니에게 쏠렸다. 아주머니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늦게 오면 기다리는 사람들 시간은 뭐가 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당황하셨는지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아니, 아저씨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무언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꼈는지 모두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누구도 말을 꺼내진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가려면 택시 타셔야죠"


물론 이 한 마디로 사건이 마무리되기엔 아주머니의 분노가 너무도 강력했다.


"그쪽한테 말한 것 아니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딱히 내게 한 말도 아닌데 내가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 혹은, 정말로 아주머니는 뭔가 급하신 일이 있던 것이 아닐까? 나는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해졌다. 하지만 언니는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네, 그래도 아주머니 행동은 잘못되신 거에요."


와, 정말 멋있다. 저렇게 자신감 있게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런 모습. 초등학교 시절엔 여자애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며 낄낄대던 남자애들을 혼쭐내줬던 나인데, 지금은 그런 용기가 필요한 상황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항상 이런 식이다


지난번에는 박람회 단기 알바에서 메뉴얼에 따라 '땅콩 알러지가 있냐'고 묻는 말에 대뜸 화를 내는 손님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대신 내 실수에 대해서 곱씹고 있었다.


너무 무례하게 질문했나? 정중하지 못했나?


혹시 그 사람이 땅콩 알러지 콤플렉스는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생각해봤지만 내 잘못은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사회의 작은 괴물들에게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라디오 스타>에서 자신에게 독설을 내뱉는 김구라에게, 김숙은 "상처 주네" 라고 대꾸했다.


좋은 태도다. 내게 몰려오는 각종 무례한 행동에도 김숙과 같이 정색하며 직설적으로 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나마 눈치를 채기 때문이다.

시소 탈 때 상대와 나와의 무게 차이가 많이 나면 재미가 없듯이, 관계 또한 나 혼자만의 배려로 이어나가는 관계라면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조금씩 상대방이 나에게 실망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더 늦기 전에, 무례한 상대방을 배려하기에 앞서 언제나 내 옆에 있는 '나'부터 괜찮은지 물어볼 것이다.


다시 한번 버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일어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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