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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하철 문은 왜 '수동'일까?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 "내리고 싶은 자, 문을 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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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파리 여행 중 가장 많이 이용한 교통수단은 '지하철'이었다. 딱히 파리가 아니더라도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되면 지하철 노선부터 확인하고, 그 위에 방문하고 싶은 곳을 적어둔다. (파리교통공사)

파리 지하철역 내부 풍경

출처버락킴

지하철이 매력적인 까닭은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점과 지하철 역에서 주요한 장소들로 이동하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또, 이동시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여행 동선을 짜는 데도 지하철 노선은 좋은 지침이 된다. 가령,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려면 아베쎄(Abbesses) 역을 기점으로 삼으면 되고, 개선문에 가려면 샤를 드 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 역에서 내리면 된다. 간편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동하면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없다. 그럴 때는 사람을 구경하면 된다. 파리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살고 있으므로 그만큼 머리카락 색도 다양하다. 그 다채로움 속에 있노라면 민족주의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계 시민'이라는 자각이 든다. 아, 파리의 지하철에선 냄새가 더러 나기도 한다. 아무래도 100년 가까이 된 탓이다.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총 14호선(독립 지선 포함 시 16개 노선)이다. 파리 만국박람회가 개최되던 1900년에 개통됐다. 그리고 고속 교외 철도인 RER(Réseau Express Régional)이 A선부터 E선까지, 트램(TRAM)이 A선부터 C선까지 구축돼 있다. RER은 1977년 파리 시내의 지하철과 지선 철도를 통합해 만들어 졌는데, B선은 샤를 드골 공항까지 연결돼 있고, C선은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어져 있다.




내리고 싶은 자, 문을 열어라


사실 지하철 이야기를 시작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문(door)'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냐고? 여행 둘째 날, 숙소 근처의 듀플렉스(Dupleix) 역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역에 대한 감상에 빠져 있는데 열차가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맨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다짜고짜 문에 달린 손잡이 같은 걸 잡고 돌리는 게 아닌가?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문화 충격을 느꼈다. 당연히 자동문이라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뭐지? 왜 불편하게 수동이야?'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동문이면 굳이 매번 타고 내릴 때마다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저들은 왜 이런 불편함을 감내하는 걸까.

손잡이 식 수동문(위)과 버튼식 수동문(아래)

출처버락킴

수동문이다 보니 열차의 문은 량(輛)마다 개별적으로 작동한다. 승, 하차할 사람이 없는 역에선 당연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난방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버튼을 누르거나, 레버를 올려 수동으로 열어야 한다. 전체 열차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가 닫히는 서울의 지하철과는 전혀 다르다. 독일도 프랑스처럼 지하철 문이 수동이라고 한다. 자기 손으로 여닫아야 한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자동문은 편리하다. 그만큼 고장의 위험성 또한 높다. 어쨌거나 수동문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람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다. 자동문처럼 관리하기 위한 별도의 인력도 필요 없다. 물론 파리에서도 1, 4, 14호선 등 일부 차량은 전자동 시스템이며, 점차 현대식으로 바꾸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 지하철은 수동식이며 시민들은 그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결정적으로 파리에서는 19세 노동자가 스크린도어에 끼어 죽는 사고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

파리에도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역이 있다. 문제가 생기면 스크린도어 밖에서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수리한다.

출처버락킴

몇해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보수하던 19세 노동자가 스크린도어에 끼어 죽었다. 당시 <한겨레>는 저 안타까운 '19세 수리공 죽음'의 구조적 원인을 4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는 묻지마 외주화, 두 번째는 인력 쥐어짜기(원칙은 2인 1조 근무이지만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 세 번째는 '헐값'에 청년 부리기, 네 번째는 원청의 ‘갑질’을 꼽았다. 안전보다 '비용절감'이 우선시 되면서 따르는 '필연적' 비극이었다.


얼마 전 서울메트로에 직고용된 안전 업무직 노동자들의 보수 수준이 나아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이후 민간위탁업체에 외주를 줬던 구조를 개선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죽음 이후 제법 많은 것들이 바뀐 셈이지만, 여전히 불안의 씨앗은 우리 사회 안에 잠재돼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 눈앞에서 제거하려고 하는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지 않는 한, 내가 좀 더 편리해지기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전가하는 우리들의 이기심이 깨지지 않는 한, 착취의 최전선에 서 있는 누군가는 또다시 불합리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와 같은 악순환을 이대로 지켜보는 것, 또 다른 사건이 터진 후에야 수습하려 드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한국의 자동문 시스템을 수동문으로 바꾸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불편함을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사고의 전환만큼은 필요하다. 파리 지하철의 수동문은 내게 제법 무거운 숙제를 던져줬다. 문득 다시 그 손잡이를 젖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거 제법 손맛이 좋았는데 말이다.

출처버락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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