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가격이 내려가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조회수 2020. 10. 31. 09: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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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이 싸지면 결국 소비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정부가 단순히 프라이드치킨의 가격을 억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더 많은 마진을 받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더 작은 닭을 쓰면 된다. 11호 닭(도축 후 중량이 1.1kg)을 쓰던 업체는 10호 닭(1.0kg)으로 교체하면 비용이 줄어드니 실제로 가격을 올린 효과가 난다.


또 다른 방법은 빨리빨리 자라는 닭을 쓰는 방법이다. 이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11호 사이즈로 키우는 데 두 달 걸리는 닭들을 제거해 버리고, 한 달 안에 자라는 닭들로 교체하면 결국 사료비용이 줄어드니 실제로는 가격을 올린 효과가 난다.


여기서 중요한 가정이 하나가 있는데, 소비자들은 닭 사이즈가 줄어도 별로 불만 없는 '착한(?)' 소비자이어야 하고, 닭의 육질은 어떻게 되어도 별로 상관없이 그냥 한 마리만 먹으면 만족하는 별로 까다롭지 않고 '우직한' 소비자이어야 한다.


실은 현재 우리 소비자들이 그러하다. 그러니 닭 관련 외식업 쪽에 있는 기업과 닭 생산 업체들은 이미 위의 두 가지 방법을 꾸준히 써 오고 있다. 닭은 계속 작아 지고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소비자는 한 마리 먹으면 그걸로 만족하니 상관없다. 실제 우리나라 닭 관련 요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




치킨 가격이 내려가면 우리는 행복해질까?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난다. '어쨌든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면 족해. 싸게만 먹을래' 식의 소비 감성은 엉뚱한 곳에 영향을 미치는데, 가격에 대한 압박 때문에 농가들이 죽어나기 시작한다. 또 가격을 올리지 못하면 프랜차이즈에 일하고 있는 알바들의 시간당 인건비가 내려가야 하고, 그것을 감당 못 하는 가맹점주들은 더 많은 노동시간에 고통받아야 한다. 그리고 부대 재료비는 더욱 낮아져야 하니 치킨 무도 어쨌든 싼 것으로, 튀김 기름도 싼 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닭에 대한 소비 감성이 무던하면 무던할수록,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모든 치킨 업체와 닭 생산 기업들의 전략은 똑같아진다. '싸게만 만들자.' 이것이 과연 소비자들의 후생에 긍정적인 것인가?

실은 더 심각한 문제가 존재한다. 닭을 싸게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니, 닭 생산 기업, 육계 농가들은 사료 효율성이 좋은 닭들만 들여 온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먹는 육계 품종의 별명이 '팝콘 닭'이다. 팝콘처럼 팍팍 자라서 생긴 별명의 닭이다. 한국에서 기르고 있는 '팝콘 닭' 종자는 글로벌 종자 회사의 세 곳에서 들여온다. 일 년에 한국인들이 먹는 수억 마리의 닭들은 오로지 세 회사의 세 품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닭 생산 기업은 글로벌 호구가 되고, 육계 농가는 착취당한다. 종자 선택권이 없다. 세 글로벌 종자 회사의 병아리가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이 '팝콘 닭'이 유독 특정 AI 바이러스나 병에 취약하다면? 한국의 급격한 기후 변화에 적응이 힘들다면? 이 세 종자 기업의 종계 라인에 문제가 생겨서 한국에 들어올 병아리의 수가 줄어든다면? 실은 이 유전 공학의 개가인 팝콘 닭 -극도의 사료 효율성에 초점이 맞춰진 종자들이다- 이 세대가 거듭되면서 유전적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나타나고 있다. 이 팝콘 닭에만 기대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바꾸어야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육계 농장의 농장주인가? 닭 생산회사, 하림, 체리부로의 사장인가? 정부인가? 치킨 체인의 사장인가? 아니다. 소비자가 바뀌면 된다. 그게 무엇이든 닭 한 마리 튀겨 먹으면 된다는 '무던한' 소비 감성이 '까다로운' 소비 감성으로 바뀌면 공급자는 자연스럽게 바뀐다.




프랑스 토종닭의 기준, '천천히' 자라야 한다


프랑스로 가 보자. 정육점에 가서 '저기, 닭 한 마리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다음 나오는 정육점 주인의 답은 '무슨 음식을 할 건가요?'라는 질문이다. 어떤 음식을 요리할 것인가에 따라 사는 닭이 달라진다. 까다롭다.


프랑스의 토종닭 시장은 전체 닭 시장의 1/3이다. 프랑스 농산물 품질 관리법에서 규정하는 토종닭의 정의의 핵심은 '지역과의 연계성'과 '천천히 자라야 한다'라는 것이다. 농산물에 대해 이렇게 멋스러운 규정을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았고, 그 궁금증을 해소하려 이제 막 프랑스 땅에 도착했다. 이번만큼은 화려한 파리에는 관심 없다. 우리는 프랑스의 닭을 찾아 바로 프랑스 동부 시골로 간다.


내가 우리 토종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한국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토종 닭이 우수하다’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소비자들이 지역에 연계되고, 무작정 빨리 자라는 육계와는 다른 다양한 특성을 가지는 토종닭(토종닭에는 다양한 품종이 있다)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고 닭을 좀 더 까다롭게 소비하는 것이 기형적인 소비구조, 농업인 착취, 종의 다양성 훼손의 문제를 극복해 가는 큰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토종닭 품종들은 다르다. 육질도 다르고 다 다르다. 용도도 달라야 할 것이다.


커피처럼 닭도 까다롭게 고르자


마지막으로 질문을 한 번 던져 본다. 우리가 커피 마실 때 언제부터 원두의 원산지를 따져가며 마시기 시작했던가? 산미 높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땐 에티오피아 원두를 찾고, 내 입맛에 맞추어 여러 지역의 특성 있는 원두를 블렌딩해서 먹으며, 아메리카노를 먹을 땐 커피빈, 니트로를 마실 땐 스타벅스, 아이스 라테는 폴 바셋, 이젠 원두를 갈아서 먹을 때 입자의 크기도 따진다. 대한민국에선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화려하게 커피 문화가 꽃 피고 있다.


그 출발은 무엇이었나? 500원짜리 믹스커피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커피를 시도해보는 까다로운 소비 감성이 나타나는 그 순간에 시작되었다. 그러면 닭은? 지금의 팝콘 닭에 만족하지 말자.


by 문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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