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마광수는 정말 시대와 불화한 '혁명가'였나

조회수 2020. 10. 10. 0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래서 마광수가 도대체 뭘 진보시켰는데?"
출처: 마광수 교수 페이스북
마광수 교수

시대의 호흡이 빨라지다보니 2,30년 전 일들이 벌써 하나의 역사로 변해 버리고 그래서 그 때 일을 뚜렷이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당혹스럽게도 바로 어제 같은 일이 눈 앞에서 황당한 의미로 둔갑하는 일을 보게 되기도 한다.


마광수 교수가 얼마전에 타계하였다. 많은 이들이 추모를 하는 가운데, 그가 그 시대에 무슨 의미를 가진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서도 내가 보기에는 황당한 거품과 과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도 진보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들 사이에. 당혹스럽다. 이럴 때에는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이상한 것인가가 헷갈린다.


8,90년대는 우선 성적 자유나 표현이 억압되었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런 말은 유신 체제에나 적용되는 것이었다. 일본파시즘을 흉내내며 똥폼을 잡던 유신 체제에서는 이른바 "건전한 국민 정신"이라는 것을 국가와 체제가 앞장서서 표방하였고, 이에 저해되는 일체의 표현 등은 날라갔다.


70년대를 풍미한 "호스테스물"이라는 영화를 보면 가관이다.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인생 푸념인지, 벗는 장면은 아슬아슬 감질만 나고. 장발과 청바지와 미니스커트와 통기타 전자기타 등 모두 그랬다. 82년에 교회에 전자기타를 도입하려던 중학생 홍모씨는 교회 어른들에게 직사하게 혼이나고 쫓겨날 뻔하기도 했다.


5공화국 때부터는 달랐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이 세미나에서 가르친대로, 스포츠, 섹스, 스크린이라는 이른바 "3S"로 온 국민을 현혹시키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 운동권은 이 세 가지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이기도 했다.


정작 성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곳은 그래서 운동권 진영이었다. ㅋㅋ 바깥 세상은 달랐다. 영화는 애마부인으로 시작되어 토속 에로물로 이루어지던... 등등. 외화 수입은 더했다. 16살이던 85년에 킴 베신저 나오는 나인하프위크도 보았고, 그 전에는 엠마누엘 등등.


87년 민주화의 엉뚱한 하지만 자연스럽고도 또 의당한 변화 하나는, 이러한 성적 개방성이 날개를 달았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마광수의 "사라"는 사실 강리나라는 여배우의 이미지에 굉장히 가깝게 구현되어 온 나라의 영화관에 걸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새로이 생겨나기 시작한 "모텔"은 24시간 성업이었고, 비디오의 등장과 함께 "에로 비디오"라는 새로운 장르물도 나타나고 있었다.


표현의 자유가 억제되고 있었다고? 정치 사상적인 것 외에는 전혀 그런 느낌받지 못했다. 모두 다 더 튀지 못해 안달하던 것이 90년대의 시대 정신이었고, 이는 폭발적인 소비주의 문화와 연결되어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93년에는 "네멋대로 해라"가 시대의 구호였고, 혼숙과 다대다 연애를 표방하는 문화 집단도 나타나서 다단계 전기담요 조직과 쌍벽을 이루기도 했다. 마광수라는 인물은 그래서 사실상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편승 - 아마도 무임승차. 그가 민주화를 위해 무얼 했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보았으니까 - 한 1인이라고 보는 게 옳다.


나는 만약 그가 서슬퍼런 70년대에 "즐거운 사라"와 함께 "장미여관" 퍼포먼스를 벌였다면 기념비적 인물로 존경했을 것이다. 그건 명백하게 유신 ㅈㄲㄹ 는 의미이니까. 실제로 70년대에는 벗고 길거리를 뛰어가던 "스트리커"라는 반항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ㅋㅋ 아는가? "장미여관"이 당시 신촌에 실제로 있었던 모텔 이름이었다는 것? 90년대의 그런 글과 행동은 걍 심드렁한 해프닝이었을 뿐이다.


마광수 '즐거운 사라' 중

그러면 마광수 교수는 왜 문제가 되었는가? 그는 연세대 국문과 교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단의 아웃사이더인 장정일 같은 작가가 그런 언행을 하고 다녀봐야, 경범죄 등으로 벌금을 낼 일은 있어도 사회적으로 무슨 물의를 빚거나 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근엄한 사회 지도 엘리트의 최중심이라 할 만한 곳에 멀쩡한 교수가 맨날 섹스 이야기나 하고 이상한 숙제나 내고 나아가 이상한 글까지 써대니까 이게 튀어서 돌출된 것 뿐이었다.


그가 법정에 서고 교수직을 잘리는 등의 물의에 휘말리게 된 것은, 그러한 엄숙한 지배 엘리트들의 괘씸죄에 걸린 것 뿐이었다. 마광수 교수를 탄압한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아니라 그 엘리트 사회였던 것 뿐이다. 그리고 내 추측이지만 마광수 교수가 원했던 것도 한국 사회 전체의 인정이 아니라 바로 그 엘리트 문단 지식계의 인정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인정은 사실 지겹게 받은 셈이니까. 마광수 교수로 빚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그 시대 상황을 대표하는 대표성이 있는 사건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이제 고인이 된 마광수 교수의 뜻을 존중하고 그가 추구하고 주장했던 바가 개방된 정상적 사회에서라면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각에서 그 이는, 고인에게는 죄송한 표현이지만, 그냥 "또라이"로 여겨지는 것이 세간의 시각이었다.


때는 90년대 초이다. 광주 학살이 벌어진지 10년도 되지 않았고, 87년 혁명은 실패하여 학살 원흉이 버젓이 대통령 자리에 있었고, 도처에서 노동자 농민들이 사회적 모순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숱한 이들이 감옥으로 고문실로 끌려가고 또 분신까지 이어지는 시대였다. 그런데, 여기에 1류대학교 교수 하나가 튀어나와 갑자기 장미여관과 사라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야말로 D. H. 로렌스의 후예라고 외치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그에게 도대체 관심을 주어야 하는가?


그의 작품을 읽어 보았느냐고? 당연히 안 읽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고 성적 상상력이 졸렬했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에는 "O양의 수기"를 이리저리 베꺼다가 변주해 놓은 정도였다. 헨리 밀러를 읽지 뭐하러 장미여관을 읽겠는가? 섹시하기는 오만년전 롱펠로우가 훨씬 더 섹시하다. 글을 읽으면 색심은 커녕 있던 색심도 다 사라지는 그런 글을 뭐하러 읽겠는가.


문학평론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여기에 심각한 모순과 문제점이 있었다. 그는 성적 해방과 자유를 외치고 있지만, 그의 글은 심각한 성적 억압을 강박증에 가깝게 반복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헨리 밀러나 아서 케슬러가 성을 묘사하고 접근하는 데에는 진짜의 여성 - 정신과 육체와 감정을 모두 가진 - 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글에는 손톱과 머리카락과 유두 뿐이다. 그의 성적 상상력이라는 게 요즘의 관점에서 볼 때 지독한 여성혐오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자의 육체에 대한 극도의 페티시즘으로 점철되어 있거니와, 이는 Melanie Klein의 아동 심리 분석에 나오는대로 어머니의 육체를 발기발기 찢어놓고 생각하는 유아기적 심리의 반영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앞 뒤가 모순된다. 차탈리 부인의 사랑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육체 전체를 두 사람이라는 존재 전체를 몸으로 관능으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성적 억압의 강박증을 지겨운 이미지로 반복하는 글을 가지고서 성적 자유를 외치는 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슨 모순이며 악취미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는 일부 평론가들은 (심지어 여성주의 평론가들도 있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그는 성적인 해방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보편적인 인간 해방의 하나이며, 성적 판타지의 일방적 탐닉이라는 것이 성적 억압과 지배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성적 해방을 이야기하는 글이랍시고 장미여관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무슨 읽을 생각이 들었겠는가?


그가 시대와 불화했느냐고? 천만의 말씀. 자기가 쓰고 싶은 글과 추구하고 싶은 판타지를 추구하는 것이 작가요 문필가라고 했을 때, 그 때문에 생계를 못 잇고 비참한 삶을 사는 이들이 한 둘인가? 그리고 사회적 주목은 커녕 등단도 못해보는 이들이 한 둘인가? 그는 대학 학계에 안주하면서 윤동주 연구로 학계의 한 중간에 곱게 자리잡고서 사회적 명망과 경제적 안정성을 배경으로 챙겨놓았다. 그러한 물의를 일으키고자 했을 때 그러면 뭘 기대했는가? 사람들이 "한국 문학 정신의 일대 비약"이라고 자신에게 월계관을 씌워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출처: 연합뉴스
구속수감되는 마광수 교수

끝까지 교수직도 유지하였고 사회적인 관심과 주목은 풍부하게 받았다. 문학사에 보면 글 썼다가 감옥가고 직장 잘리고 하는 온갖 필화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고작 벌금물고 교수직 잠깐 잘린 것 가지고 마치 고귀한 십자가나 진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건 실로 우스꽝 스럽다.


몇 년 전에 돌아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음악인과 경제적 고통으로 일찍 삶을 마감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생각난다. 40대에 들어서면 이혼이 거의 과정처럼 자리잡은 우울한 미술인들이 생각난다. 방송국 다니던 시절, 열정과 꿈 하나로 온갖 착취를 참아내며 기가막힌 양질의 컨텐츠를 누에가 비단 뽑아내듯 하던 그리고 그 다음에는 착취에 고갈되어 스러져 가던 젊은 여성 방송작가 무리가 생각난다. 마광수 교수가 무슨 시대와 불화했다는 말인가?


쓰고 나니 참 시시껍적한 글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시대를 살아온 나같은 이에게 마광수 교수는 항상 "발바리의 추억"을 그린 만화가 강철수나 비슷한 존재였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광수라는 키워드로 깊은 사색을 해 본 적도 없고, 나오는 이야기도 앞에 보신 것처럼 시시껍적하다.


그런데 이렇게 별다른 영양가 있는 견해도 없으면서 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담론 권력을 손에 넣은 지금의 40대 50대에게는 아주 기억이 또렷한 이름이 마광수 교수이다. 그 분이 작고하셨다. 그러자 너도나도 페북에다가 그 의미를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있다. 그 세대의 한 사람인 나도 당황스럽다. 이러다가는 벼라별 것이 다 엄청난 의미를 가진 시대의 아이콘으로 둔갑할 판이다. 이 4,50대의 지독한 나르시시즘. 자기들이 기억하고 경험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시대를 획했던 엄청난 것들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자뻑. 이게 집단적으로 터지는 것을 보는 것 같아 황당할 뿐이다.


이게 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런식의 자뻑은 어처구니없는 자만감의 시대에도 나타나지만 데카당스의 시대에도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한 세대가 그 정신이 완전히 고갈되어 아무런 새로운 것도 나오지 않을 때에도 데카당스는 스멀스멀 기어든다.


그 세대가 그 사실을 이해할만한 자기의식 Selbstbewusstsein 을 그나마 가지고 있다면 허무와 퇴폐의 형태로 데카당스가 나타나지만, 그 세대가 너무나 속물적이고 즉물적이어서 그러한 자기의식조차 결여하고 있을 때에는 그 기고만장이 계속된다. 이때 데카당스는 끝없는 자기복제와 complacency의 형태로 등장한다. 내가 보기에는 똥팔륙 근처의 한국인들 세대가 딱 이렇다. 그래서 등장하는 게 이들 의식 속에 있는 것으로 구성된 만신전 pantheon 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누볐던 많은 이름들이 사실 별 것도 아니고 또 응당 극복하고 잊혀져야 마땅한 것들이 많지만, 이 놈의 세대는 티브이와 예능 프로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담론과 정신 세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자기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끝도 없이 호출하고 있다. 소가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하고 게워내고 또 되새김질을 하고 하듯이 말이다.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쇼미더머니"의 지겨움과 천편일률의 반복인 "나는 가수다"는 뭐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김광석이 지겹다. 물론 김광석과 그의 노래를 무척 사랑하지만, 시대 때도 없이 나오는 김광석 아이유가 호출하는 김광석은 짜증만 날 뿐이다. 제발 꺼져라 똥팔륙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김광석을 들으면서 자기들이 20대 후반 소줏잔을 기울이던 기억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그 세대인 내가 보기도 어처구니가 없다.


이 세대는 지독한 complacency가 특징인 것 같다. 경제 발전도, 부동산 투기도, 사교육도, 민주화도, 남북 정상회담도 모두 이루었으니까. 그래서 이들이 기억하고 이들의 의식 threshold 안에 있는 것은 모두 다 신성하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기괴한 pantheon 만신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광석이 거기 있고, 신영복이 거기 있고, 등등등이 있다. 마광수도 만신전에 들어가는 것일까? 좀 더 차근히 관찰하면서 지켜보아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마광수 교수가 구속되었을 때 학생운동 내에서 이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던 게 나였다. 운동권의 동료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보통의 학우들도 나를 비웃었다. 총여학생회 등의 여성 쪽에서는 마광수는 공공의 적이었다. 한마디로 별 쓸데없는 소리를 떠든다는 게 내게 돌아온 비웃음이었다. 당시 용어로 "일반 민주주의적 투쟁"을 옹호하는 게 사회주의 운동의 기본 전략이라는 레닌의 가르침을 따르려던 내게는 내 또래 젊은이들의 마광수 교수에 대한 냉담함이 정말 싫었고, 혼자 마구 분노에 떨면서 밤새 익명의 대자보를 써서 다음날 붙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느낌은 정반대이다. 황당한 또래들이다. 단, 분노는 아니고 조금 우습고 조금 재밌고 조금 겁나고 조금 구역질난다.


후기: 정말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엉뚱한 데로 유탄이 튀지만, 지금 "촛불 혁명"의 어르신처럼 다니는 도올 김용옥의 그 당시 존재는 어떤 것이었던가? ㅋㅋㅋ 노태우 정권을 찬양하면서 정권 이데올로그를 자임하던 해바라기 지식인이었다는 게 그 당시의 세간의 인식이었다. ㅋㅋㅋ 도올이 정말로 그런 사람인지 어떤지는 물론 나는 전혀 모르고 관심도 없다.


아, 좋은 참고 문헌이 있다. 당시 세간의 마광수나 김용옥에 대한 인식을 보고 싶으면 헌책방 어디 잘 뒤지면 "1마3김"이라는 책이 있을 것이다. 당시 4당 체제의 "1노3김"에 빗대어 마광수, 김용옥, 그 밖의 두 김씨를 엮어서 풍자한 가벼운 책이었다. 하나 더 있다. "노동자해방문학"이라고 사노맹 기관지 몇 호엔가 박노해 시인이 "야한여자 비판"의 형태로 마광수 비판한 시인가 글인가가 있다. 이것도 당시의 시대가 마 교수를 보던 특히 진보쪽의 "계급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


나처럼 쓸데없는 기억이 많은 자는 빨리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좋다.


BLESSED ARE OBLIVIOUS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