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외 자꾸 한글을 틀리고 그레?"

조회수 2020. 10. 9. 14: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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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 못 맞추면 세종대왕님이 화를 내실까?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친히 훈민정음 28자를 만드신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른 결과, 우리는 수많은 한자를 외워 쓸 필요 없이 몇 개 되지 않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쉽게 문자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5, 6살만 되어도 동화책을 술술 읽어내리고, 글로써 서로와 어렵지 않게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고맙고 사랑스러운 한글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어쩌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조금 어긋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글날을 기념해 당신에게 소개한다. 한글에 대한 오해 네 가지.




1. 한글 = 한국어?

어쨌거나 파괴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다.

먼저 알아둘 사실. 한글과 한국어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어는 우리가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언어이고, 한글은 이 언어를 글로 옮기는 표기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annyeonghaseyo’는 한국어를 알파벳으로 쓴 것이다.

‘아이 러브 유’는 한글로 쓴 것이지만 한국어는 아니고 영어이다.

추가적으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한글도 훈민정음도 한국어도 아닌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세종대왕께서 ‘나랏말쌈이 듕귁에 달아’ 문자와 (말이) 서로 맞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쉽게 제 뜻을 펴지 못하여 마침내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신 것이 훈민정음인데, 이 ‘훈민정음’은 문자의 이름인 동시에 그 문자의 창제원리를 풀어 설명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 책은 두 가지 판본이 있어 ‘훈민정음 해례본’과 ‘훈민정음 언해본’으로 나뉘는데, 이 중 ‘훈민정음 해례본’이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한국의 문자나 언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책이 지정된 것이니 헷갈리지 말자.




2. 세상 모든 소리를 한글로 표기 가능하다?

그럴 리가. 우리가 내는 소리만 해도 다 표기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표기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보’라는 단어를 보자. 앞의 ‘ㅂ(바의 ㅂ)’과 뒤의 ‘ㅂ(보의 ㅂ)’은 우리가 보기에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음성학적으로 보면, 앞의 ㅂ은 무성음이고 뒤의 ㅂ은 유성음이다. 분명히 다른 소리이지만,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들리지 않으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는 소리이기에 똑같이 ㅂ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예전, 15세기의 조선시대 화자들은 ㅂ과 순경음 ㅂ을 구분할 수 있었기에 둘 다 썼었다. 하지만 지금은, 웬만한 한국어 화자들은 앞의 ㅂ과 뒤의 ㅂ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르다는 걸 알아도 한국어 내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렇기에 다른 소리이지만 똑같이 ㅂ으로 쓰는 것이다.


영어의 ‘f’는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 정답이 없다. ‘strike’처럼 어두에 자음군이 오는 경우는 또 어떠한가? 한국 안에서만 봐도, 지방에서 사용하는 소리들을 잘 생각해 보면 뭔가 한글로 표기가 안 되는 모호한 소리들이 있기도 할 것이다. 만약 이런 소리들을 표기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예전에 썼던 순경음 ㅂ이나 아래아 같은 표기들을 가져올 수도 있고, 아예 새로 만들어서 한글에 끼워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3. 맞춤법 못 맞추면 세종대왕님이 화를 내실까?

사도세자를 보는 정조처럼…?

세종대왕님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당시, ‘나라 말씀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이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편안하게 할 따름이다’라고 하셨다. 그냥 백성들이 뜻을 펼치기 쉽게 하시려고 만드신 표기법이었던 것이다.


‘소리나는 대로 적되, 의미를 밝혀 적기'(한국어 정서법) 때문에 맞춤법이 중요한 것이지, ‘외숙모’를 ‘왜승모’로 써도 세종대왕님은 아무 신경 쓰지 않으실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의 한국어 화자들은 ‘네가’ 대신 ‘니가’를 많이 쓰는데, ‘네가’와 ‘내가’가 소리상 구분이 잘 되지 않으니까 ‘네’ 대신 ‘니’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그 둘의 구분이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만 쓰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의미를 밝혀 적는 지금의 한국어 정서법을 생각해서라도, 맞춤법은 잘 지키면 참 좋다.




4. 찌아찌아어의 공식 문자는 한글이다?

찌아찌아족 거주지구 근처의 표지판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을 채택한 적도 없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자신들의 언어를 표현할 문자를 가지고 있지 못한 지방어의 경우 로마자로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한글을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채택했었더라면 인도네시아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었고, 외교 문제로까지 커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글이 우수한 글자이긴 하지만, 애초에 훈민정음은 15세기에 조선어를 사용하는 백성들이 쓰기 쉽게 만들어졌고, 지금의 한글은 지금의 언중들이 쓰기 좋게 다듬어진 것이다. 그것을 굳이 바다 너머의, 우리와는 많이 다른 소리체계를 가진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줘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가 쓰지만 그들이 쓰지 않는 소리에 해당하는 글자는 빼고, 우리가 쓰지 않지만 그들이 쓰는 소리를 위해 글자를 추가하는 것부터 쓰는 방식까지 고민하는 등 토착화 연구가 잘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들이 한글을 필요로 한다면 물론 두 팔 벌려 환영하며 한글을 전해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글을 과하게 보급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이러한 일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꼭 한글을 다른 곳에 전파해야만 한글의 우수성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결론


지금까지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살펴보았다. 솔직히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한글날만이라도 조금 더 생각해보자.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말과 우리글을 우리는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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