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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모아이 석상과 이스터섬의 날조된 미스터리

이스터섬의 진실이 점차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하나씩 벗겨지는 이스터섬의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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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스톨대학교 고고인류학 박사과정 중인 캐트린 자르만(Catrine Jarman)의 글입니다.


1722년 부활절, 유럽인은 처음으로 라파누이(Rapa Nui) 섬을 발견합니다. 이 섬이 부활절을 의미하는 ‘이스터’섬이라 불리게 된 이유입니다. 이스터섬은 163.6km2에 불과한 작은 섬입니다. 또한, 반경 2천km 안에 사람 사는 섬이 하나도 없을 만큼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외딴 섬입니다. 하지만 이스터섬은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들이 덧씌워져 곤욕 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구글맵 위성사진으로 보면 온통 바다뿐인 태평양 한가운데 눈을 가늘게 떠도 보일까 말까 한 점 하나가 이스터섬입니다.

이스터섬에는 많은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우선, 이 섬에 사는 원주민들이 폴리네시아에서 왔는지,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왔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이스터섬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모아이 석상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큰 돌을 깎아 산 중턱의 채석장에서 해안가 곳곳으로 옮긴 걸까요? 딱히 자원도 풍부하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은데 말입니다. 모아이 석상 존재 자체는 많은 사람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모아이 석상을 토대로 이스터섬에 있던 문명을 연구해 왔습니다. 이 섬의 원주민들이 과연 이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석상을 세울 만큼 뛰어난 문명을 이룩한 것인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이 석상을 세우고 이어 섬의 천연자원을 모두 고갈시킨 것인지를 두고 인류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최근 들어 인류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무분별한 환경파괴가 라파누이의 문명을 파멸시켰을 것이라 추정됐습니다.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상이 됐죠.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뜻하는 ‘환경파괴(Ecocide)’ 가설을 널리 퍼뜨린 건 유명한 지리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입니다. 그는 라파누이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인류도 재앙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60년 넘게 계속된 고고학 연구 결과 환경파괴 가설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들어 새로운 유전자 분석 기술이 더해지면서 이스터에 꽃피운 문명은 어리석게 삶의 터전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라파누이의 실체, 이스터섬의 진실이 점차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설득력 떨어지는 환경파괴 가설


환경파괴 가설을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한때 수만 명으로 추정되던 라파누이 인구가 유럽인들이 처음 발을 들인 18세기 초에는 어떤 연유인지 1,500~3,000명으로 줄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라파누이 주민들은 석상을 옮기려고 섬 전체에 번성했던 야자나무를 마구 베어버렸다는 겁니다. 토양을 지탱해줄 나무를 마구 벌목하고 나니 땅이 점차 쓸려내려 갔고 작황은 덩달아 나빠졌습니다. 나무가 모자라니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을 때 필요한 배를 건조하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다툼이 내전으로 비화했습니다.

라파누이의 인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한때 라파누이의 인구가 4,000~9,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최근에는 당시 농사로 얻은 곡식과 다른 먹거리를 토대로 라파누이가 1만 5천 명까지 먹여 살릴 수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722년 유럽인이 발을 들이기 전 라파누이 인구가 급감했다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20세기 초 민족지 연구보고서에 경쟁 관계에 있던 여러 집단의 갈등이 전투로 이어졌다는 구전 설화를 기록한 것이 라파누이 인구 급감설의 진원입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출발해 잉카식 뗏목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 것으로 유명한 인류학자 토르 헤이에르달(Thor Heyerdahl)은 민족지 연구를 바탕으로 1680년 라파누이의 내전이 격화돼 원주민 다수가 살해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라파누이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흑요석 조각은 당시 주민들이 치열했던 전투에서 사용한 무기의 흔적이라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칼 리포(Carl Lipo)를 필두로 한 연구진은 라파누이 곳곳에 널린 흑요석은 무기가 아니라 가재도구 혹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데 필요한 도구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유골을 살펴봐도 크게 다친 사람들은 2.5%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으로 인구가 줄었다면 유골은 상처투성이여야 정상인데 말입니다. 되려 상처가 아물고 있던 정황이 보이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설사 갈등이 있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전쟁은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빼면 같은 부족을 죽이고 내전이 격화돼 섬 전체가 사실상 멸망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17세기에 일어난 전쟁의 결정적인 근거가 20세기 들어 처음 기록된 구전 설화뿐이라면 그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많던 야자나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유럽인들이 오기 전 라파누이 사람들은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고 살았다는 증거가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한때 섬 전체를 뒤덮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야자나무들이 급격하게 사라진 건 1200년경 라파누이에 처음 사람들이 발을 들인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꽃가루 분석 등 분자 식물학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야자나무가 급격히 사라진 건 사실로 보이지만, 그 원인이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설명은 근거가 빈약해 보입니다.


그 대신에 유력한 범인으로 꼽히는 건 폴리네시아 쥐입니다. 폴리네시아 쥐들은 처음 라파누이에 들어온 사람들의 배에 숨어있다가 섬에 발을 들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쥐들은 야자 열매는 물론 어린나무까지 먹어 치우는 식성에다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야자나무 숲은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습니다. 최근 진행한 제 연구에 따르면 라파누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먹거리를 상당히 많이 얻었고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농사 기술도 뛰어나 야자나무가 사라졌다고 당장 굶어 죽진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벌목보다 무서웠던 노예무역


그렇다면 라파누이의 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20세기 초에 분출된 갈등과 내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해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바로 노예무역입니다. 19세기 남아메리카에서 온 노예무역상들이 섬을 급습해 원주민 절반을 붙잡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1877년 라파누이의 인구는 111명으로 급감합니다. 유럽인은 원주민에게 질병을 옮겼고 섬 곳곳을 파괴했으며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욱 희소해진 자원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아마도 민족지 연구에 기록된 구전 설화 속 내전은 이때 일어난 갈등을 가리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석상 건설을 중단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죠.


지금까지 남아메리카 사람들이 유럽인보다 몇 세기 앞서 라파누이에 정착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현재 이스터섬 원주민들에게서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DNA가 발견됩니다. 하지만 고고유전학자 라스 페렌슈미츠(Lars Fehren-Schmitz)는 이런 정설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증거를 찾았습니다. 해당 연구에 저도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유럽인이 당도하기 전과 후 라파누이 사람들의 유골과 유품에서 발견되는 DNA를 분석했습니다.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연구 논문은 1722년 유럽인이 이스터섬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라파누이 사람들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고 결론 났습니다. 현재 이스터섬 원주민들의 DNA는 18세기 이후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을 통해 바뀐 것입니다.


사람들의 환경파괴가 라파누이의 인구를 급감시켰다는 날조된 서사는 이스터섬의 진실이 아닙니다. 대신 미스터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근거 없는 추측이 쉽게 정설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가해자의 역사를 집단으로 망각해버린 탓에 정작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놀라우리만치 잘 살아오다가 피해자가 된 이들을 오히려 멸망을 자초한 어리석은 이들로 내몰았다는 것이 이스터섬의 진실이자 교훈이 돼야 합니다.


여전히 석상들을 어떻게 옮겼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고요? 사실 그 궁금증도 몇 년 전에 연구를 통해 풀렸습니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실천했던 기발하면서도 과학적인 방법이죠. 모아이 석상은 라파누이 사람들이 끌고 당기면 알아서 걸었습니다.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라파누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왔을 테니까요. 물론, 농담입니다. (컨버세이션)


번역: 뉴스페퍼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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