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세계화가 말도 안 되는 이유

조회수 2020. 8. 25. 09: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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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다른 나라 조상들은 지혜가 없었겠는가?

한식을 세계화하자고?

나는 사석에서 곧잘 한식이 왜 세계화 되기가 어려운지를 이야기하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식의 수준이 세계화를 할 만큼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의 한식은 재료에 대한 몰이해가 아주 잘 드러난다. 재료와 품종별로 어떤 차이가 존재하고 어떻게 조리해야 '잘' 조리된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다.

당장 주식으로 찬양하는 쌀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에서 유통되는 쌀의 품종은 몇 가지나 되는가? 그 쌀의 품종별 차이는 아는가? 품종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시중에 나온 품종 자체가 다양하지 못하다. 오히려 쌀이 주식이 아닌 서양 국가들에서 거래되는 쌀 품종이 훨씬 다양하다. 당장 리조또용 쌀이 따로 있고 여기에서 주로 쓰이는 품종만 3가지가 있다는 것을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그 외 채소나 과일 등도 품종 자체가 다양하지 못하다. 차이가 없다. 각 지자체별 특산물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사과는 그냥 사과고 미나리는 다 미나리고 양파는 다 양파다. 지역별로 나름대로 브랜딩을 하긴 하는데 품종 자체가 다르지 않다 보니 그냥 앞에 붙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냉면 전문점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계란

결국 한식 재료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다 보니 무조건 과조리로 귀결된다. 개인적으로 평양냉면을 매우 좋아하여 다양한 냉면집을 다녀봤지만 정말 평양냉면 잘한다고 소문난 곳도 계란 하나 제대로 삶는 곳을 못 봤다. 전부 과하게 삶아서 흰자는 질기고 노른자는 과조리의 상징인 녹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평양냉면으로 유명하다는 곳들도 이런 수준이다. 과조리된 계란은 퍽퍽하고 맛이 없지만 완벽하게 익힌 계란은 진한 맛을 낸다. 하도 이렇다 보니 계란이 저렇게 황화철 때문에 녹변한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다.


고기 문화는 또 어떤가? 애당초 한국에서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것은 예전부터 고급외식의 일환으로 취급되었음에도 ‘제대로 구운 고기’에 대한 이해도 없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 삼겹살만 봐도 그렇다.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 먹는 사람들을 보라. 전부 과조리해 육즙이 다 빠진 퍽퍽한 고기를 씹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블랙 코메디가 있는데, 사람들이 특히 칼집 낸 고기와 직화구이를 상당히 선호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직화구이, 특히 숯불의 경우 불이 직접 닿는 데다 시간에 따라 화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인해 조리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칼집 낸 고기도 마찬가지다. 칼집을 내면 금방 익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너무 빨리 익어 과조리를 유발하기 쉽다. 이 장점은 어디까지나 업장 입장에서의 장점이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장점이 아니다. 특히나 칼집 낸 고기를 직화구이로 굽는다면 이건 무지막지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직화구이는 그래도 이해라도 가지 칼집 낸 고기는 대체 왜 그걸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나 몇몇 블로거들은 고기에 이렇게 칼집을 촘촘하게 냈다고 마치 맛의 비결이라도 되는 것인 양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건강한 맛? 그게 대체 뭔데?


재료를 잘 활용하는 법을 알지 못하니 재료의 신선도만 강조한다. 물론 요리에 좋은 재료 쓰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긴 쉽지만 좋은 재료 자체가 요리의 퀄리티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예로든 고기를 보자. 고기를 제대로 조리할 줄도 모르는데 비싼 고기, 좋은 고기, 신선한 고기를 찾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이거야말로 돈 낭비다.


조리는 재료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 재료가 가진 맛을 끌어 올리는 작업이다. 그러나 과조리된 요리는 재료가 무엇이 들어가든 간에 그 잠재력을 다 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갉아먹는다. 그러다 보니 '조리'를 통해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이렇게나 좋다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차별화 할 수 있는 게 결과물이 아니라 투입물인 이 괴상함이여.

이렇게 별다른 차이점을 만들지 못하다 보니 또 건강을 강조하기도 한다. 주요 한식집을 돌아다녀 보면 음식점 벽에다가 'XX의 효능'이라고 써 붙여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을 먹고 즐기는 문화 자체가 발달하지 못하다 보니 음식을 약으로 이해한다. 당장 한식 중에서, 특히나 국물 요리 중에서 약재를 넣었다고 좋은 음식이라고 홍보하는 곳이 어디 한둘인가. 그래. 양보해서 넣는 건 좋다 치자. 문제는 그 약재가 음식에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어서다. 먹어보면 약재의 강한 향이 음식의 향과 맛을 다 가려버리는 수준이 되는데 이걸 '건강한 맛'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음식을 맛으로 즐기는 것이 아닌 건강해지는 것 같다는 플라시보 효과와 비과학적 접근에 기반하여 평가한다는 부분에서 이미 미식과 식문화의 세계화는 아득히 멀어진다.


한식은 조리법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 극히 제한된 조리법으로 모든 요리를 커버하다 보니 이거나 저거나 큰 차이가 없다. 재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양념으로 커버를 해서 양념의 맛을 즐기는 조리법이 많다. 그러다 보니 들어가는 재료만 다를 뿐 바르는 양념은 큰 차이가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그 양념 맛으로 먹게 된다는 뜻이다.


해산물을 조리할 때 이 문제가 잘 드러난다. 한국은 3면이 바다라서 해산물 구하기가 굉장히 쉬운 편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해산물 요리는 너무 가짓수가 적고 천편일률적이다. 심지어 해산물 요리도 과조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 어떤 나라보다 해산물 구하기 좋은 조건임에도 최적의 조리시간과 방법에 대한 이해가 없다. 더군다나 생선살을 따로 쓰는 레시피도 없고 생선뼈와 머리를 이용한 레시피도 따로 없다. 가장 일반적인 게 생선살은 회로 먹고 남은 부속은 매운탕으로 끓여 먹는 게 전부다.



한식은 아직 멀었다


이러한 한식의 밑바탕 문화에서 무슨 세계화를 논할 수 있겠는가? 요리를 하는 쪽도, 그리고 먹는 입도 전체적으로 많이 뒤쳐져 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국수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난다. '감히 한식을 모욕하다니'하면서 말이다. '한식이 맛있고 건강에도 좋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식'이라고 항변하는데 다른 나라라고 조상들의 지혜가 없겠는가?


당장 우리가 찬탄해 마지 않는 보존식품의 대표 김치만 하더라도 조상들이 지혜를 발휘해서 대단한 걸 만들어 냈다 하는데 유럽 국가에서도 고기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 햄과 소세지를 탄생시켰고 장기보존을 위해 발효를 시킨 요리도 많다. 우리만 우수하고 우월한 거 아니다. 한식이란 문화를 애국과 자부심과 동치시키는 것이야말로 열등감을 거기에서 만회하려는 발버둥으로밖에 안 보인다.


한식세계화추진단 발족식에 참석한 김윤옥 여사. 2009. 5. 4.

물론 이해는 한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밥 먹고 산 지가 이제 겨우 50년이 채 안 됐다. 그 전엔 굶는 게 일상이었던 나라에서 식문화가 어떻게 발전을 하겠는가? 다만 여전히 그 빈곤함이 묻어나는 식문화를 전통이란 이름으로 옹호하고 추종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


문화는 들불 번지듯이 자연스레 퍼져 나가는 것이다. 우리의 식문화가 정말 우월하다면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세계화된다. 굳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식을 먹어보았나? 한식을 먹어라! 김치 먹어라! 이런 식으로 강요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타국인에게 한식의 우월성을 강요하지도 마라.


인정하자. 한식 문화는 좀 뒤쳐져 있다고. 그도 당연한 것이 저개발국에서 경제국으로 발전한 지 얼마나 됐나. 문화란 원래 천천히 발전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식문화가 발전하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다. 특히나 아직도 음식에서 '가성비'를 논할 때 '가성비'로 견주는 대상이 Quality(질)가 아닌 Quantity(양)인 나라가 식문화의 세계화를 논하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다.



덧붙임 1.

한식이 재료 쓸 줄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한 게 외국의 가지 요리를 먹어보고 나서다. 한식에서 가지를 활용하는 법은 나물무침이 대부분이지만 일본이나 중국은 튀김이 주류고 유럽의 경우 굽는 방식의 조리법도 많다. 수분이 많아서 조리하면 흐물흐물해지기 쉬운 가지의 특성상 수분을 날리는 조리법이 알맞은데 무침으로 하면 식감이 나빠지고 그 맛을 제대로 못 낸다. 그 점에서 한국식 가지무침은 개인적으로 가지 요리법 중 최악이라 생각한다.


가지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도 안 된 재료라면 그래도 이해할 텐데 가지 재배와 식용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조상들이 다른 민족과 비교해 특출나게 지혜롭고 대단하다면 왜 가지는 이렇게밖에 먹을 줄 모르는가?



덧붙임 2.

한식의 세계화와 미래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나는 이 답이 한국이 아니라 해외에 있다고 본다. 이미 다양한 조리법과 요리를 받아들인 외국에서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한식을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것 말이다.



덧붙임 3.

한식에서 궁중요리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물론 궁중요리는 한식 조리의 최고봉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최상위 계층의 요리 중에 안 그런 게 어디 있는가? 식문화의 기반은 왕과 귀족의 레벨이 아닌 민간 레벨에 있다. 그 민간 레벨에서 격차가 너무 크단 얘기다.

by 김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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