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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10계명

조회수 2020. 8. 2. 10: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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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한 다음 글을 쓰겠다는 얘기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 글은 문인(지망생)을 위한 글쓰기 십계명이 절대 아닙니다. 의사 표현과 전달을 위해 글을 쓰기는 해야 하는데 글쓰기가 두렵거나 자신 없어 하는 이들을 위한 글쓰기 십계명입니다. 저도 스스로 글쓰기를 잘한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여기저기 물어오고 주문해 오는 일이 있어 시간을 내어 한 번 정리해 봤습니다.



1. 띄어쓰기나 문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름난 글쟁이들도 종종 비문(非文)을 씁니다. 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조정래, 시인 고은의 글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수(高手)인데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고수이니까 그렇습니다.


그이들은 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글쓰는 기본 목적은 의사 전달과 소통입니다. 뜻을 전하고 나아가 감동을 주는 데 도움된다면 비문을 써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의사만 주고받을 수 있다면 문법 띄어쓰기 정도는 틀려도 됩니다.



2. 잘 쓰지 않아도 뜻만 통하면 됩니다


글쓰기에서 가장 큰 장벽은 '잘 써야 한다',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학교에서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니라 글을 쓰는 방법만 가르친 탓이 큽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글쓰기 자체를 두려워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헤엄치는 방법을 익힌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틀려보지 않고 바르게 쓰는 사람 또한 없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틀리기도 쉽지만 고치기도 쉽습니다. 컴퓨터가 바로잡아 주기도 합니다.

3. 처음부터 짧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문장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전달하려는 뜻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문장이 길면 글이 꼬이기 쉽습니다. 문장이 짧으면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처음부터 짧게 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이 정리돼 있어야 짧게 쓸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글이 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짧게 쓰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부담이 됩니다.


먼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길게 써 놓습니다. 이런저런 꾸밈말도 여기저기 달아봅니다. 그러고 나서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호흡이 길다 싶으면 툭툭 잘라주고 꾸밈이 지나치거나 거치적거린다 싶으면 지워줍니다.



4. 잘난 척은 글을 망칩니다


처음 글쓰기를 하면서 종종 저지르는 잘못이 '어깨에 힘주기'입니다. 권위주의적인 표현을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면 오히려 안 되는 시절입니다. 사람들은 무겁고 권위가 잔뜩 들어간 글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친절하고 편하면서도 내용이 알찬 글이 곳곳에 널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깨에 힘을 주다 보면 자기가 잘 모르는 낱말을 갖다 쓰기도 합니다. 어려운 낱말을 써야 무게가 나간다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필자 본인도 잘 모르는 낱말을 쓰는데 뜻이 제대로 전해질 리 없습니다.

5. 글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입니다


사람은 논리보다는 감성에 따라 더 많이 움직입니다. 논리는 상대방을 꺾는 데 유용하지만 감성은 상대방을 품는 데 유용합니다. 글쓰기도 논리적이기를 지향하는 대신 감동적이기를 지향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잘 맞아도 감동을 주지 못하는 글은 가치가 덜합니다. 이제는 논리조차 감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데 쓰도록 해야 좋은 시대입니다.



6.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 글을 쓰겠다는 얘기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소설가들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인 나를 끌고 다닌다." 작가의 지향이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풀려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고백입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글 끄트머리에 빠져나오면서 적어야 할 글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서 글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음의 장벽, 생각의 장벽일 따름입니다.


어지간하면 글을 써가면서 생각도 더불어 정리하는 식으로 해야 좋습니다. 들어가는 한 마디만 있으면 족합니다. "그이는 자신의 결정을 곧바로 후회했다." 이런 식으로요. 들어가는 글 한 마디도 끝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써나가면서 보고 적당하지 않거든 버리면 되고 어쩌면 오히려 버려야 합니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데만 소용이 됩니다. 강을 건넌 다음 뗏목을 지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 끝까지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은 또 다른 무의식의 감옥입니다.

7. 사진은 이제 필수, 꼭 곁들이도록 합니다


지금 대세는 비주얼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지고 또 뚜렷해졌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글자가 아니라 사진이 주인공인 시대입니다. 글자는 조역일 따름입니다. 물론 아주 중요한 조역입니다.


처음부터 사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진 찍는 방법을 일러드릴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글에 담을 내용과 맞아떨어지도록 찍고, 나아가 그런 내용을 좀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진이 주재 하나만 담아서는 밋밋합니다. 저는 주재와 부재를 각각 하나씩 담기를 권합니다. 인물이 주인공이라 해도, 인물을 앵글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고 찍어서는 인물조차 제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럴 듯한 배경으로 받쳐줘야 마땅할 것입니다.



8. 마지막 마침표는 또 다른 시작입니다


문인은 아니지만 글을 아주 잘 쓰는 어떤 사람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문학적·예술적으로 잘 쓰는 글이 아니라 말하려는 요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입니다. 동료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느냐?'고요.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글 쓰고 나서 스무 번을 고쳐. "


어쩌면 글은 들여다볼 때마다 고칠 데가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은 생각하면 할수록 샘솟듯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신자들 앞에서 강론을 아주 잘하기로 유명한 신부(神父)가 있었습니다. 신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강론 원고를 쓴 다음에는 꼭 어머니에게 읽어드리고 어떤지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잘 모르겠다면 고쳐 썼습니다. 어머니가 좀 이상하다고 하면 그 대목을 손질했습니다. 어머니가 잘 알아듣겠다 하시면 기뻐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자기가 어머니가 돼서 스스로 읽고 고쳤습니다. 어머니라면 이해했을까? 어머니한테 어려운 표현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고 따졌습니다.



9. 막판에 한 번 정도 되풀이하는 건 서비스입니다


옛날에는 되풀이가 쓸데없는 노릇이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사람들이 대체로 글을 꼼꼼하게 읽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등등에 갖은 정보가 넘쳐나면서 더욱 그렇게 바뀌고 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낱낱이 따져 읽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썼다 해도 끄트머리에서 한 번 되풀이해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을 경우 독자들은 인상이나 기억을 뚜렷하게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10. 상투(常套)를 쓸 때는 한 번 더 생각합니다


'상투'는 늘 쓰는 투라는 뜻입니다. 상투가 상투가 된 데에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말이지요.


처음에는 이 표현이 산뜻하고 또 강렬했을 것입니다. 어떤 참상이 있다 했을 때, 참상 그 자체를 그려 보이기보다 그냥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더라는 표현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낱말 또는 표현이 이런 산뜻함이나 효과를 갖춰야만 상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투는 되도록 쓰지 않아야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 상투를 제대로 골라서 알맞게 써먹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상투라 해도 ‘피해야 하는 나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투적(常套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뻔하다'입니다. 처음에는 산뜻함도 있고 강렬하고 효과적이다 보니 자주 쓰였겠지요. 하지만 자주 쓰이다 보니 원래 산뜻함과 강렬함은 퇴색되고 그 효과도 잃었습니다.


뻔한 말과 사연은 사람을 질리게 하고 관심이 없게 만듭니다. 지금 쓰려는 '상투'가 '상투적'이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덧붙임 : 우리 말과 글을 위한 최소한의 에티켓


'갖다' 따위 낱말은 적게 쓸수록 좋습니다. 기자회견을 가졌다, 경기를 가졌다, 행사를 가졌다, 협약식을 가졌다, 수료식을 가졌다, 발대식을 가졌다, 견해를 갖고 있다, 시간을 가졌다, 활동을 가졌다, 간담회를 가졌다, 피로연을 가졌다. 등.


영어 take 또는 have에서 나온 표현들입니다. 70년대 80년대까지는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주범이 일어였다면 지금은 영어입니다. '가졌다'는 다른 낱말들이 많이 쓰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획일화가 되면서 다양성을 빼앗습니다.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우리말 곳간은 갈수록 썰렁해집니다. 얼핏 생각해도 이렇습니다. '행사(경기)를 치렀다', '피로연을 베풀었다', '시간을 누렸다', '생각하고 있다(또는 여기고 있다)'.


시간에 쫓기든 어쨌든 어쩔 수 없이 영어식 또는 일본식 표현을 쓰더라도, 달리 좀더 나은 표현은 없을까 고민까지 거두지는 말아야겠습니다. take나 have 말고도 이런 강도 노릇을 하는 영어가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by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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