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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16명의 조선인 ‘가미카제’는 어떻게 일본에 끌려갔을까?

꽃다운 청춘을 이역만리 바다에 던져 물고기밥이 된 조선인 가미카제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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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해와 서울 여의도가 벚꽃으로 유명하다면 일본에서는 도쿄 우에노 공원의 사쿠라 꽃이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사람들 중에는 사쿠라 꽃을 보면 ‘가미카제(神風)’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12년 4월 15일 밤 KBS 1TV <역사스페셜>에서 ‘조선인 가미카제 탁경현(卓庚鉉, 창씨명 미쓰야마 히로부미: 光山博文)의 아리랑'을 방영한 바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탁경현이란 이름은 낯설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는 조선인 출신 가미카제였습니다. 1945년 5월 11일 자살특공대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미국 함대로 돌진했다가 실패한 그는 그 후 오키나와 해상에서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조선인 가미카제 탁경현

출격 전날 그는 평소 자주 찾던 식당에 들러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지었다고 전합니다. 지난 2001년 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 <호타루>가 상영돼 일본 전역에서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호타루는 우리말로 반딧불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그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 돼 일본의 극우파들에게 ‘군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2007년 5월 그의 고향인 경남 사천에서 그의 위령비를 건립하려다 친일 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국어사전에서 ‘산화(散華)’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이라고 나옵니다. 우리가 흔히 봐온 익숙한 용례로는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散華)하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수류탄을 들고 산화(散華)한 무명용사들’ 등이 그것입니다. 조국을 위해, 혹은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값진 희생을 일컫는 셈이죠.


그런데 원래 이 말은 불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극락세계는 마당이 칠보로 덮여 있고 여러 가지 꽃들로 향기가 그윽한데 극락왕생을 바라는 중생들은 꽃을 뿌려 부처를 공양했다고 합니다. 즉 불전에 꽃을 뿌려 공양하는 것을 ‘산화(散華)’라고 합니다. 산화 공양은 삼국시대부터 치러졌으며 초기에는 생화를 뿌리다가 후대로 오면서 연꽃잎 모양의 종이꽃을 뿌렸다고 합니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는 미군 항공모함

한편,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 해군 소속 비행기를 몰고 미국 군함에 돌격한 특공대, 즉 ‘가미카제’들의 죽음을 일러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산화라고 불렀습니다. 사쿠라꽃(華)이 지(散)듯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우리 국어사전에서 산화의 의미를 ‘어떤 대상이나 목적을 위하여 목숨을 바침’이라고 정의한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이 역시 일제 잔재인 셈이지요.


2004년 모멘토 출판사에서는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인 문화인류학자 오오누키 에미코의 저서를 광운대 일본학과 이향철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서, ‘상징인류학의 관점에서 자연이나 미의식이 국가내셔널리즘에 이용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연구’한 내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일제가 사쿠라꽃을 어떻게 침략전쟁의 상징으로 활용했는지를 분석한 것입니다.

가미카제를 상징하는 꽃이 된 사쿠라꽃(벚꽃)

결론부터 앞세우면 사쿠라꽃은 19세기 말부터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의 꽃이 됨은 물론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의 상징으로 활용됐습니다. 청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청년의 희생이 필요하게 되자 일제는 ‘천황, 즉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는 사생관을 조장했습니다. 이는 중세의 무사도 정신을 근대화시킨 개념으로, 일본의 근대를 연 메이지 이후에 도입된 신개념이랄 수 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절정에 달하자 일제는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들을 ‘피어 있는 사쿠라꽃’에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타는 비행기에 사쿠라꽃을 새기거나 또 출격 때는 학생들이 사쿠라 꽃가지 들고나와 전송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들의 전사를 사쿠라꽃이 진다는 뜻에서 ‘산화’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군부가 불교 용어의 원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충혼의 상징용어로 변용한 것입니다.

오오니시 해군 중장

가미카제 특공대는 해군 중장 오오니시 타키지로오가 고안한 것으로, 애초 이는 미국의 일본 본토 침공에 대비한 방위계획이었습니다. 특공대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10월 20일 창설됐는데, 최초 출격은 1944년 10월 25일(‘마쓰이 오장’의 출격일보다 한 달 4일이 빠름) 시키시마 부대가 필리핀 레이테만에서 미군 함정에 ‘몸체공격’(體當たり, 육탄공격)을 가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때 오오니시는 해군 특공대에게 ‘신풍(神風)’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는데, ‘가미카제’는 여기서 유래한 것입니다. (* 오오니시는 일제 패망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가미카제 영령’들에 대해 사죄를 담은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가미카제용 공격기 '제로센'

‘확실한 죽음’을 의미한 특공작전의 장비는 비행기와 어뢰로 이뤄져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탑승원을 위한 안전장치는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가미카제들이 몰았던 ‘제로센’이라는 단발 엔진 탑재 함상 전투기는 고도 2만 피트(약 6,100m)를 최고시속 372마일(약 600km)로 비행하는 성능을 갖고 있었고 250kg의 폭탄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제로센은 폭탄의 무게와 가속도로 인해 일단 급강하하기 시작하면 제어가 불가능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 군함을 향해 한번 하강하면 그 길로 곧 군함에 부딪히거나 바다에 빠져 죽는 길뿐이었습니다.


한편 가미카제 특공대는 초창기엔 미군을 공포에 빠뜨렸으나 갈수록 그 위력은 미미해졌습니다. 파괴력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특공대원들이 탄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비행기에 실은 폭탄이 너무 무겁거나 속도가 너무 빨라 조준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입니다. 또 더러는 마지막 순간에 조종사, 즉 특공대원들이 두려운 나머지 눈을 감아버려 이 역시 표적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일본 패망 때까지 2,500여 명의 인간 폭탄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는데 성공 확률은 겨우 6%. 가미카제는 군사작전이라기보다 적에게 두려움을 주는 심리전적 성격이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쿠라꽃으로 ‘산화’한 조선인 가미카제 16인


당시 특공대원들은 해군 비행예과 연습생이나 학도병들이었는데 그들 가운데는 조선인 청년들도 더러 포함돼 있었습니다. 위 책에 따르면 학도병으로 징집된 조선인은 4,385명이며, 이 가운데는 ‘마쓰이 오장’처럼 가미카제에 지원했다가 산화한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이들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천황의 군대’였던 만큼 보기 나름으로는 ‘친일파’로 낙인찍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간 우리 역사에서 묻혀 왔는데, 이들 역시 망국으로 인한 피해자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신원이 밝혀진 조선인 가미카제 16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격하는 가미카제에게 사쿠라꽃을 흔들며 전송하는 학생들

1. 박동훈: 1928년 조선 출생, 소년비행병 제15기 출신, 마코토 제41비행대 오장(伍長), 1945년 3월 29일 오키나와 중부 카데나 서방해상서 전사, 17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2. 최정근: 1921년 함북 경흥 출생, 일본육사 56기 졸업, 비행 제66전대 중위, 1945년 4월 2일 오키나와 주변 해상서 전사, 24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좌)



3. 김상필: 1920년 조선 진남포 출생, 1943년 10월 연희전문 졸업, 특별조종견습사관 제1기, 제32 무극비행대 소위, 1945년 4월 3일 서남해상서 전사, 25세, 전사 후 2계급 특진(대위)



4. 이윤범: 1921년 조선 출생, 조종후보생, 제80 신부(振武)대 상사(曹長), 1945년 4월 22일 오키나와 주변 해상에서 전사, 23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5. 카와히가시 시게루(河東 繁, 한국명 불명): 조선 출생, 출생연도 불명, 소년비행병 제14기 출신, 제106 신부대 오장, 1945년 4월 16일 오키나와 주변 해상에서 전사,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6. 키무라 세이세키(木寸正碩, 한국명 불명): 조선 출생, 출생연도 불명, 소년비행병 제14기 출신, 제77 신부대 오장, 1945년 4월 28일 오키나와 주변 해상에서 전사,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7. 탁경현(光山博文, 미쓰야마 히로부미): 1920년 경남 사천 출생, 교토약학전문학교 졸업,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 제51 신부대 소위, 1945년 5월 11일 오키나와 비행장 서해상에서 전사, 24세, 전사 후 2계급 특진(대위)



8. 이현재: 1926년 조선 경성부 성동구 출생, 소년비행병 14기 출신, 제431 신부대 오장, 1945년 5월 27일 오키나와 주변 해상에서 전사, 18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9. 김광영: 1926년 조선 경성부 동대문구 출생, 소년비행병 14기 출신, 제431 신부대 오장, 1945년 5월 28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 18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10. 이시바시 시로오(石橋志郞, 한국명 불명): 1918년 조선 경성부 중구 출생,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 비행 제20전대 소위, 1945년 5월 29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 27세, 전사 후 2계급 특진(대위)



11. 한정실: 1925년 조선 출생, 소년비행병 제15기 출신, 제113 신부대 오장, 1945년 5월 28일 오키나와 해상에서 전사, 20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12. 노야마 사이코쿠(野山在旭, 한국명 불명): 1924년 조선 출생, 특별간부후보 1기생, 제15전대, 1945년 1월 30일 필리핀 마닐라 남방 나스구브 해상에서 전사, 21세



13. 노용우: 조선 수원에서 출생, 경성법전 졸업, 특별조종견습사관 1기생, 비행 제5전대 오장, 1945년 5월 29일 시즈오카현 오마에자키 상공에서 전사,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14. 임장수: 1924년 조선 출생, 소년비행병 12기 출신, 근황대 오장, 1944년 12월 7일 올머크만에서 전사, 20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15. 이와모토 미츠모리(岩本光守, 한국명 불명): 1925년 경남 울산 출생, 조종후보생 12기, 제23독립비행중대 중사(軍曹), 1945년 3월 26일 오키나와 나하 서방 해상에서 전사, 20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16. 마쓰이 히데오(松井秀男, 한국명 인재웅(印在雄): 1924년 조선 개성 출생, 소년비행병 13기, 야스쿠니 부대 오장, 1944년 11월 29일 필리핀 레이테만에서 전사, 20세, 전사 후 2계급 특진(소위)

보시다시피 ‘마쓰이 오장’(16번)의 전사가 가장 빠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일제 패망 서너 달 전에 오키나와 부근 해상에서 전사했으며, 계급은 오장(하사)에서부터 중위(최정근)까지입니다. 나이는 대개 20세 전후인데 최연소는 17세(박동훈), 최연장자는 27세(이시바시 시로오)입니다. 전사 후 이들은 2계급 특진했으며, 이들 가운데는 김상필, 탁경현, 노용우 등 3인은 학도병 출신입니다. 학도병의 경우 겉으로는 지원이었지만, 사실상 강제징집이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들은 조선인임에도 일본군 신분으로 일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고 더러는 일본의 전쟁영웅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버젓이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꽃다운 청춘을 이역만리 바다에 던지고 물고기밥이 된 조선인 가미카제 청년들. 일본에서는 조선인이어서 차별대우를 받고 조선에서는 일황을 위해 죽었대서 친일파로 낙인찍힌 그들. 죽어서조차 고국 땅 부모·형제의 품에 안기지 못한 채 고혼으로 떠돌고 있는 조선인 가미카제. 이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한 전쟁 피해자라고 하겠습니다.


by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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