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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하면 발포한다” 트럼프의 망언, 누가 처음 했나 봤더니...

“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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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흑인 시민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함으로써 촉발된 시위가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 내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과 경찰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시민들이 잇따라 거리로 나오면서 시위의 규모는 매일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또 한 번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했습니다. 구설에 오를 만한 말실수 정도를 훨씬 넘는 문제 있는 발언을 늘 일삼은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번에는 트위터가 곧바로 해당 트윗 아래 폭력을 부추길 수 있는 문제 있는 선동적인 트윗으로 트위터의 운영 방침에 어긋난다는 배너를 달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용한 표현은 미국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때 지역 경찰의 수장이 했던 말, 당연히 권력을 가진 백인이 동등한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흑인을 향해 한 말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습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자세한 역사적 연원에 관해선 모른다고 선을 그었지만, 정말 이를 몰랐다면 그것도 너무나 ‘트럼프다워서’ 문제라 할 수 있는 그 기원을 워싱턴포스트가 설명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

직역하면, “약탈이 시작되면, 총을 쏘기 시작한다” 정도로 옮길 수 있겠죠. 그러나 뒤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한 말과 맥락을 고려해보면, 지금 거리에 있는 시위대에겐 충분히 “약탈하면 곧바로 쏴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들릴 만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1967년, 미국 마이애미의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치안은 최악이었습니다. 무장 강도 사건이 빈발하고, 소요 사태가 잇달아 일어났죠. 마이애미시 경찰청장 월터 헤들리(Walter Headley)는 기자회견을 열고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육군 기갑부대 장교 출신의 헤들리 청장은 자신이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발포 명령이든 사나운 개를 푸는 일이든 언제든지 명령을 내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회견이니) 표현을 좀 순화해서 말씀드리자면, 범죄자들이 약탈을 시작하면 그때 저는 바로 발포 명령을 내릴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찰의 폭력에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분노하며 미국 전역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시위대를 향해 경고 조로 남긴 트윗의 출처가 헤들리 청장의 발언이었던 겁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올린 트윗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다시 트윗을 올려 자신은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약탈을 하면 총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지난 수요일 밤에 총에 맞아 사망자가 발생한 이유도, 루이빌에서 무려 7명이 총에 맞은 이유도 다 마찬가지였다. 나는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젯밤 내 발언의 맥락도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

1967년 마이애미 지역 언론인 마이애미 헤럴드는 헤들리 청장의 발언을 전하며, “경찰은 범죄자를 체포하거나 진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상태다. 사살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보도했습니다.

월터 헤들리

출처ⓒNews Miami

헤들리 청장은 당시 20년째 마이애미 경찰을 이끌어온 인물로, 자신이 청장으로 있을 때 마이애미 경찰이 다른 지역 경찰보다 먼저 흑인을 경찰관으로 채용한 사실을 자랑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백인은 정식 경찰관(policemen)으로 불렸지만, 흑인은 다른 칭호(patrolmen, 순찰경관)를 써야 했지만요. 1967년, 흑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치안이 급격히 나빠졌지만, 헤들리 청장은 지역사회를 직접 찾아가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 중에 헤들리 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역사회와 대화를 나누고 개선점을 찾아가는 방법은 처음부터 잘 안 됐습니다. 경찰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연사들을 보내 흑인 지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어 흑인들을 향한 속내를 드러냅니다.

“근데 진짜 흑인들은 답답하게도 자기들끼리 살해하고 총 쏴 죽이면서도 그 명백한 사실을 잘 모른단 말이에요. 우리 경찰들은 백인만 지키는 게 아녜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게 문제투성인 흑인들도 우리가 지켜주느라 이 고생이란 말입니다.”

이듬해인 1968년 8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전당대회(RNC)가 마이애미에서 열렸습니다. 베트남전 반전 운동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마이애미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이어져 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으며, 200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헤들리 청장은 심지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휴가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헤들리 청장은 마이애미 경찰이 “어떤 상황에서 무얼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앞서 “약탈하면 쏴도 좋다”는 지침을 분명히 내린 뒤였으니까요.

출처ⓒGetty Images

헤들리의 발언은 이후에도 자주 인용되며, 수많은 강경 진압의 빌미와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앨라배마 주지사를 지냈으며,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도 여러 차례 도전했던 대표적인 흑백 분리주의자이자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지지했던 조지 왈라스는 선거 유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헤들리 청장은 1968년 11월 사망했습니다. 몇 달 뒤 전국 폭력예방위원회가 펴낸 보고서는 헤들리 청장이 “처음부터 유색인종이나 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 사회와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경찰의 책임이 아니라고 믿었으며, 실제로 마이애미의 흑인 사회와의 관계 개선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또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을 남용했거나 인종차별을 자행했는지와 무관하게 마이애미 경찰로서는 1967년 12월부터 1968년 8월까지 여덟 달 동안 관할 지역 내 흑인 사회의 치안을 불안하게 방치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 외부 필진 뉴스페퍼민트 님의 번역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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