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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에 살인 누명 벗고 출소한 남성이 꿈 이루기 위해 한 일

조회수 2020. 5. 3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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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듀이 보젤라다.

2011년 10월15일, 52세의 한 중년 남성이 프로복싱 데뷔전을 앞두고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 센터, 버나드 홉킨스(Bernard Hopkins) vs 챠드 도슨(Chad Dawson)의 주경기에 앞서 열린 데뷔전 경기에서 래리 홉킨스(Larry Hopkins)를 상대로 4라운드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둔 선수는 52세의 듀이 보젤라(Dewey Bozella)였다.

이 중년 복서의 도전에 감동을 받은 미국 오바마(Obama) 대통령은 필라델피아에서 버나드 홉킨스와 훈련하고 있던 듀이 보젤라에게 직접 전화해 그의 도전에 응원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한 중년 남성의 프로복싱 데뷔전에 미국 대통령까지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영화 같은 보젤라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미국 전역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듀이 보젤라의 시련은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듀이 보젤리는 빙고게임을 즐기고 귀가 중인 에마 크랩서(Emma Crapser)라는 92세 노인을 전깃줄에 묶어 구타한 후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1983년 첫 재판을 받고 싱싱 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시 보젤라의 나이는 18세였다.


20살 때부터 살인혐의로 줄곧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던 보젤라는 끊임없이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보젤라를 기소한 것은 전적으로 두 사람의 증언 때문이었는데 이들은 범죄 전과를 가지고 있었고 증언 내용도 수시로 바뀌기도 했다. 게다가 살인 현장에서는 보젤라의 혐의를 입증할 어떤 증거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죄 입증이 어려웠던 보젤라는 2007년 잘못된 기소로 고통받는 이들을 무료로 도와주는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를 이용했고 윌러해일(WilmerHale) 로펌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2009년 10월28일 무죄 판결을 받고 26년간의 수감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보젤라가 적지 않은 나이에 프로복서의 꿈에 도전한 데는 싱싱 교도소에서 배운 복싱 때문이었다. 그는 싱싱 교도소 내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도소 안에서 신학 공부에 열중해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또 동료 제소자의 여동생인 중학교 교사와 결혼도 했다.

보젤라는 수감 중에 4차례의 가석방 기회가 있었다. 또 그가 유죄를 인정하고 형량을 조절하는 사전형량조정제도(플리바겐, Plea-Barganing)와 타협만 했다면 조기 석방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젤라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이런 그였기에 그이 수감생활은 누구보다 모범적이었다.


석방된 보젤라는 26년 간의 결백 투쟁을 인정받아 스포츠 전문채널인 ESPN이 매년 수여하는 ‘아서 애시 용기상(Arther Ashe Courage Award)’의 2011년 수상자가 되었다.

수감생활 동안 보젤라의 꿈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겹게꿈을 이룬 보젤라는 석방된 후에도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고, 에마 크랩서 할머니의 유가족들을 찾아 위로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복싱을 계기로 프로 복서의 꿈을 설정하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이미 50살이 넘은 중년이었지만 무죄입증의 꿈을 위해 26년을 참고 기다렸던 그였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결국 그는 프로 복서의 꿈을 이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26년의 투쟁으로 무죄를 입증했고, 52세에 프로복서의 꿈을 이룬 듀이 보젤라에게는 또하나의 꿈이 있다고 한다. 보젤리는 자신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청소년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늘 꿈을 꾸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였기에 많은 청소년들에게도 그의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리라 믿는다.

* 외부 필진 여강여호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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