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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폭력 피해자인 저를 'XX'라 불렀습니다."

조회수 2020. 5. 23. 13: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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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라고 불려야 하는 피해자는 없다.

1. "가해자 책임도 있지만, 저 여자애 그럴 만 했지. ‘걸레’잖아. "

휴대폰 전원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렸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어느 날, 교실 안이었다. 울음을 터뜨린 건 여학생 A였다.


그녀의 휴대폰에는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 페이스북 메시지,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발신인은 단 한 명, 그녀의 전 남자친구였다. 메시지 내용은 “걸레야, 나가 죽어라”, “창년, 너희 엄마 죽이고 감옥 간다” 등의 끔찍한 협박들과 성희롱이었다. 


여학생 A는 비슷한 메시지들을 매일, 수십 통씩, 몇 개월 동안 받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사실을 선생님과 다른 반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힘들 사람은 자신이라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그렇게 말했다. 


여학생 A는 고등학교 입학 때부터 연예인 같은 외모로 유명했다. 그녀는 처음엔 ‘여신’으로 불리다가, 곧 ‘남자친구 많이 사귀었던 애’로 불렸고 나중에는 ‘걸레’로 불렸다. 


예쁜 외모 때문에 성적 대상화되던 그녀는 연애 경험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몸 싸게 굴리는 애’가 되었다. 여학생 A는 성폭력을 당했을 때도 사람들이 ‘몸 잘못 굴려서’ 일어난 일이라고 얘기할까 봐 두려워했다.

출처: ⓒ세계일보
여신부터 걸레까지, 젠더 속에서 서술되는 여성

그녀는 성폭력이 몇 달이나 이어지고 나서야 사건을 신고했다. 하지만 학교는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 기숙사 학교에서 주 5일, 매일 24시간 여학생 A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녀는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사건을 공론화시켰다. 그러자 가해자에 대한 동정여론과 피해자에 대한 수군거림이 이어졌다. “가해자 책임도 있지만, 저 여자애 그럴 만 했지. ‘걸레’잖아. 쟤 때문에 우리 학교 명성 떨어졌겠다”


가해자는 공부를 잘하는 남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은 “얘(가해자) 인생 ‘어쩌다가’ 망하겠네” 하는 식으로 얘기했다. 반면 피해자는 상담 선생님에게 “얘(가해자) 인생이 이 사건 때문에 망가지면 어떡하니. 너무 불쌍하잖아”라는 말을 들었다. 성폭력 피해자였던 그녀는 순식간에 ‘공부 잘하는 남자애 인생 망가뜨리고 학교 명성도 망친 걸레’가 되어버렸다.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매장된 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였다.

2. 피해자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순수성'

그녀가 신고를 꺼리고 공론화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자신의 ‘순수성을 입증’해야만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꽃뱀, 걸레, 창녀라는 말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입히며 가해자를 지워버리는 현상은 너무나도 일상적이다. 피해자가 자신의 ‘순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 사실까지 지워진다.


‘순수성’은 허구적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더럽혀질 수 있다. 이 사회에서는 연애 경험이 많다는 사실, ‘색기 있게 생겼다’는 얼굴 품평 등이 충분히 여성을 ‘걸레’로 만들 수 있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순수성을 입증하지 못했고, 그녀의 예상대로 피해자인 본인이 가장 힘들어졌다.

출처: ⓒ여성신문
얼마나 더 조심해야 완벽한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죠?

3. 청소년 억압과 여성혐오의 결합이 만들어낸 지옥

피해자인 여학생 A는 ‘걸레’로 남았다. 그녀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고등학교였든, 어떤 청소년 성폭력 사건이었든, 사건의 전개 흐름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폭력 사건의 발발, 피해자의 자기검열, 주변인들의 2차 가해까지. 이 사건뿐만 아니라 학창시절 동안 여학생들은 너무나도 쉽게 ‘걸레’로 칭해졌다. 그저 연애 경험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걸레가 되었다. 그녀들은 남학생들의 호모소셜 속 농담 따먹기나 수군거림 속에서 ‘싼 년’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 개입하는 ‘청소년 억압’은 걸레라는 말의 혐오 강도를 심화시킨다. “어린 년이 발랑 까져서”같은 말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정당화되고, 피해자들이 자기검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편견 속에서 청소년 섹스와 흡연 등은 당연하다는 듯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혹은 그 지점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공부에 대한 강요와 동시에 연애는 금기시하는 청소년 억압은 분명 존재한다. 


청소년 억압은 성별을 막론하고 적용된다. 하지만 이것이 여성혐오와 맞닿는다면? 걸레로 불리는 남성이 없다는 것은 세대 불문 공통적이다. 여학생들에게 섹스가 금기시되는 용어인 반면, 오히려 남학생들에게는 섹스 경험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과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청소년 억압의 정도도 여성에게 더 엄격한 잣대로 다가오는 것이다. 연애 경험이 많다는 것도 남성들에게는 ‘능력 있다’라고 추켜세워지는 근거가 될 뿐, 그들이 걸레라고 불릴 일은 단언컨대, 없다. 

출처: ⓒ덕성여대 신문

연애 경험이 많다는 사실이나, 섹슈얼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공부하지 않고 노는 걸 좋아하는 여학생’을 통칭해서 걸레라고 부르는 문화도 이 맥락에서 특징적이다. 청소년 시기부터 이미 여성은 이유 불문하고 젠더 속에서만 존재해왔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여학생 A가 걸레로 남은 반면 가해자 남학생을 칭하는 말은 ‘쓰레기’, ‘나쁜 놈’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청소년 시기의 ‘걸레’라는 말은 청소년 억압과 여성혐오의 끔찍한 결합물이다.


청소년 억압과 여성혐오의 결합은 성폭력 피해자 여학생들을 억압한다. 대한민국의 중 고등학교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공부가 최우선시되는 청소년 억압) 가해자를 감싸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사실과 교사-학생의 수직적 권력관계를 가진 작고 폐쇄적인 공동체 속에서 사건의 공론화가 더 힘들다는 특성까지. 대학교 단톡방, 성폭력 사건은 매달 새롭게 공론화되는 반면, 고등학교 내 단톡방, 성폭력 사건은 공론화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은 이런 억압에 대한 하나의 단편적 예시일 뿐이다.

4.걸레라고 불려야 하는 여학생은 없다.

이 글은 특정한 여학생 A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창시절 동안 걸레라고 불려야만 했던, 불릴까 봐 무서워했던, 불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검열했던 여학생,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여학생 A는 방식만 달랐을 뿐 우리의 학창시절 속 어디에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 모든 여학생 A는, 걸레가 아니다. 걸레라고 불려야 하는 여학생은 없다.

*이 글은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쓰인 글입니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7년 5월 22일 직썰에 게재된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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