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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유망주가 '커밍아웃' 이후 겪은 끔찍한 일들

조회수 2020. 5. 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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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책임도 아닌 성적 정체성 때문에 별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무게

영화 <크라잉 게임>은 그동안 금성철벽으로 여겨지던 성기의 직접 노출을 감행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IRA에 납치된 흑인 영국군을 감시하던 IRA 조직원. 그런데 감시자가 감시받는 자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영국군이 약속을 깨뜨리고 공격을 감행하는 와중에 인질이었던 흑인 병사는 죽음을 당하고, 감시자는 생전에 자신의 애인을 찾아가 달라고 했던 인질의 부탁을 기억하여 그 애인을 방문한다. 이리저리하다가 눈이 맞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 남자는 기절초풍하고 만다. 그 애인은 ‘남자’였던 것이다.


당시 공륜(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도 이 장면을 두고 무지하게 고민을 했다 한다. 필름 마구 잘라내는 데에는 도사급이었던 공륜이었지만 그 장면을 완전히 들어낸다는 것은 영화의 허리를 꺾음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1초’였다고 들었다. 뭔지 보여는 주되 들여다보기는 어렵게. 


공륜의 가위질 위원들만큼이나 영화 속 주인공도 큰 충격을 받아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신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고 생각하는 이의 정체(?)를 알게 됐을 때의 당혹감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 같으면?"이라고 반문을 하면서 몸서리를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 <크라잉 게임>

<크라잉 게임>의 주제와는 별도로 젊은 시절의 나에게 성적 소수자들이라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던 영화였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요즘은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곤 한다. 내가 성적 소수자였다면, 사랑을 느끼는 이가 나에 대해서 기겁을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비참할까.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슬플까. 자신의 책임도 아닌 성적 정체성 때문에 별 수 없이 감당해야 할 바위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1998년 5월 2일 그런 류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한 축구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저스틴 파사뉴라는 이름의 이 선수는 영국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서 열 여덟살에 프로에 데뷔했고 81년 노팅엄 포레스트로 이적할 시 100만파운드의 이적료를 받아 흑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몸값이 100만 파운드를 넘은 기록을 세운 유망주였다. 그러나 그의 출중한 실력과는 별도로 그를 괴롭히는 문제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그가 성적소수자라는 것이었고, 팀의 감독이 악명높은 호모포비아였다는 것이다. 


브라이언 클롭 노팅엄 감독은 파샤누가 게이바 출입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출전을 제대로 시켜주지 않았고 이로써 파샤누의 노팅엄 생활은 종언을 고한다. 그 뒤 몇 몇 팀을 떠돌아다녔지만 그라운드에 설 때마다 관중들의 야유는 소나기처럼 쏟아졌고, 급기야 친동생인 존 파샤누마저 방송에 출연해 형을 비난하기에 이르자 1990년 마침내 파샤누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히는 커밍아웃을 한다. "동료들은 나를 배려해 줬지만 정말 힘든 것은 팬들의 야유였다." 파샤누의 말이다.

저스틴 파샤뉴

이후 미국으로 옮겨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던 파샤뉴가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것은 1998년이었다. 어느 17살 소년이 술에서 깨어보니 파샤누의 침실에 자신이 누워 있었다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2급 성폭행 등의 혐의로 수배된 것이다. 겁이 났던 것일까, 억울했던 것일까. 파샤누는 영국으로 도망쳤고 1998년 5월 2일 런던의 한 창고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게이라는 편견 때문에 부당한 수사를 받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이후 미국 수사 당국은 증거불충분으로 사건 수사를 종결했고 영국 당국은 파샤누가 체포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역사상 최초로, 그리고 그 이후로도 유일하게 커밍아웃했던 선수 파샤누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갔다. 


성적 소수자의 법적 권리가 보장되고, 적어도 공공연하게 호모포비아를 표방하는 것은 몰상식으로 치부되는 유럽 사회이지만 유명 축구 선수로서 커밍 아웃을 한 예는 파샤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얼마 전에는 독일 축구 대표팀의 주전인 미하엘 발락의 에이전트가 "독일 대표팀은 게이들의 소굴"이라는 말을 내뱉는 바람에 감독 이하 선수들이 급거 부인이나 애인(물론 여자)을 공개하거나 자신은 게이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소동을 빚은 일도 있었다. 대표팀 주장 필리프 람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강력하게 부정한 뒤 이런 글을 남긴다.

"게이인 선수가 있다면 커밍아웃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저스틴 파샤누처럼 될 수 있으니까."

저스틴의 이름은 그렇게 아픈 멍울로 남아 있다. 저스틴의 조카 아말 파샤누는 현재 성적 소수자 축구 선수들의 권익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삼촌의 아픔을 기리고 있다고 한다.


파샤누가 비운에 죽어간 날, 나는 기껏 '차별 금지법'을 입법 예고했다가 차별 금지의 대상에서 '성적 지향'을 슬그머니 빼버렸던 대한민국 법무부와 "드라마 보다가 우리 아들 호모되면 책임져라"고 악을 쓰던 기독교인들을 동시에 떠올렸다. 파샤누의 마지막 유언은 "나는 주님 안에서 안식을 찾으리라"였지만, 만약 그가 한국인이었다면 하나님은 자신의 신도들의 등쌀에 그를 편안히 품지 못하였으리라. 기독교인이라는 이들이 인간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제도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짜를 놓는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많은 저스틴 파샤누들이 이 완고한 나라에서 속을 끓이며 살아가고 있을까.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 2015년 5월 3일 직썰에 실린 글을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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