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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으로 확인한 한 가지, ‘김은숙 작가의 시대’ 끝이 보인다

그를 넘어서야 할 시대가 온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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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 작가가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 연속되는 작품들 속에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둔다. 그것이 시대와 절묘하게 호응할 경우, 우리는 그 작가의 이름 뒤에 ‘월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불과 한 시대 전만 해도 우리에겐 김수현이 있었다. 가히 절대적 존재였던 그가 지난 40년 동안 끊임없이 그려냈던 건 ‘가족’이었다.


소위 ‘김수현 월드’의 밑바탕은 ‘가부장제’였다. 주로 권위 있는 가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고, 끝내 가부장제를 보호하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김수현의 가부장제를 만만히 보면 곤란하다. ‘김수현 월드’는 권위 있는 가장이 존재하지만, 그 권위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가족 구성원의 이혼, 엄마의 역할, 심지어 동성애까지)을 거침없이 다뤘다. 방법은 전폭적인 포용이었다.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꽤 진보적이었다.

<더 킹 : 영원의 군주>는 1회 11.4%, 2회 11.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수현이 그린 포용은 가부장제 내로의 포용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지루해졌다. 시대적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김수현의 줄기찬 고민을 존중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곁엔 누가 있을까. 단연 김은숙이 떠오른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김은숙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김은숙 월드’는 대중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


SBS <파리의 연인>(2004)부터 SBS <시크릿 가든>(2010~2011), SBS <신사의 품격>(2012), SBS <상속자들>(2013), KBS2 <태양의 후예>(2016), tvN <도깨비>(2016~2017), tvN <미스터 션샤인>(2018)에 이르기까지 '김은숙 월드'의 영토 확장은 쉼 없이 이어졌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아 나갔던 그의 작품들은 신드롬과 함께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위세에 수많은 시청자가 기꺼이 포로가 됐다. 김은숙은 2017년 53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작가가 '월드'의 건설자로서 그 존재감을 증명받은 상징적인 사건이었지만, 사실 더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공식적인 선언이 없었다뿐이지 김은숙의 힘은 만인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김수현의 아우라를 뛰어넘은 지도 오래였다.


과연 ‘김은숙 월드’라 일컬어지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 어떤 세계관이 작동하고, 어떤 가치관이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을까. 또, 그곳에 사는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파리의 연인>부터 SBS <더 킹 : 영원의 군주>까지 일관성 있게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김은숙 월드'라 일컬어지는 세상은 철저하게 ‘남성 중심적’이었다.

김은숙 월드의 중심축은 어김없이 남성이다. 장르를 결정하는 것도, 이야기의 전개도 오롯이 남성 주인공에게 달려 있다.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은 공동체에 재난이 닥쳤을 때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액션 히어로였고, <도깨비>에서 김신(공유)은 한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판타지 세계의 초월적 존재였다. <미스터 션샤인>의 유진 초이(이병헌)는 비장미 넘치는 민족의 영웅으로 뜨겁게 타올랐다.


게다가 그들은 항상 ‘백마 탄 왕자님’이었는데, 위기에 처한 여성 주인공들 앞에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그 과정은 상당히 로맨틱하게 (포장된 채) 그려졌다. 김은숙의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판타지는 그 역사가 <파리의 연인>의 “애기야, 가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곤란한 상황에 놓인 강태영(김정은)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던 한기주(박신양)은 그 세계에서 한없이 로맨틱한 사랑꾼이어야 했다.


김은숙의 판타지는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시크릿 가든>과 <상속자들>에서도 남성 주인공을 불가항력의 매력을 지닌 재벌로 그려내며 자신의 판타지를 녹여냈다. 반면, 평범한 여성 주인공은 ‘씩씩함’으로 단련된 ‘캔디’형의 인물이었는데, 처음에는 '백마 탄 왕자님'을 거부하지만 끝내 그들이 친 거미줄에 낚여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 물론 결론은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정도에서 정리된다.

김수현 드라마의 딱따구리식 수다가 숨 막혔던 것처럼, 김은숙 드라마의 말장난도 이제 더 이상 재미있지 않다.

<더 킹 : 영원의 군주>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아니, 좀 더 노골적이 됐다. 평행 세계라고 하는 거창한 세계관을 꺼내 들었지만, 실상 김은숙이 보여주고 싶은 건 부와 권력을 지닌 젊은 황제 이곤(이민호)의 로맨스일 뿐이다. 이곤은 모든 걸(심지어 어렸을 적 마음의 상처까지) 다 갖췄다는 점에서 기존의 남성 주인공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아,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아예 대놓고 백마(맥시무스)를 타고 나타났다는 점일까.


남성 주인공이 주는 기시감만큼이나 여성 주인공도 진한 데자뷔를 느끼게 한다. 정태을(김고은)은 거침없다. 할 말은 한다. 게다가 (경찰로서) 능력도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결국 정태을은 꽃미남 황제의 달콤한 멜로를 위해 알맞게 생성됐다는 인상만 줄 뿐이다. 김은숙 월드 속에서 여성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성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더 킹>에서 여성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대한제국에는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 구서령(정은채)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총리의 첫 대사가 금속탐지기를 통과하며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라는 건 실망스러웠다. 무려 최초(이자 최연소)의 여성 총리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브라의 필요성만 강조하다니 시대착오적이다.

그뿐인가. 구서령은 능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보다 이곤과의 관계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 국정 보고를 한다는 명목하에 이곤에게 의도적으로 몸을 밀착해 스캔들을 만들고, 이곤에게 따로 애인이 있진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면서 있지도 않은 존재를 두고 “어려? 예뻐?”라며 질투한다. 어리고 예쁜 여성에 대한 질시를 담아내는 설정은 구시대적이다.


김은숙 월드의 여성 주인공들은 욕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백마 탄 왕자님’과의 로맨스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여성 총리가 당당하게 자신의 정책을 펼치지 않고 황제의 총애를 받으려 애쓰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정태을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그의 존재 이유도 결국 이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과 <신사의 품격>의 서이수(김하늘), <상속자들>의 차은상(박신혜)이 그랬던 것처럼.


그동안 우리는 '김은숙 월드'에 (갇혀) 울고 웃었다. 열렬히 환호하기도 했고, 그 달콤함에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불편함’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의 세계관은 지나치게 구리고, 그의 여성관은 시대착오적이다. ‘김은숙 월드’는 점점 더 남성중심적으로 달려가고 있다. 과거에는 은밀하게 깔려있었다면, <더 킹>을 통해 색이 훨씬 짙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방향성과 속도 모두 생각보다 확고하다.


2019년 우리는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배타미(임수정)라는 멋진 여성의 출현을 목도했다. 그는 “내 욕망엔 계기가 없어. 내 욕망은 내가 만드는 거야”라고 일갈했다. 그런데 김은숙은 다시 여성에겐 ‘백마 탄 왕자님’이 필요하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제 결단이 필요한 건 아닐까. 우리가 ‘가부장제’를 그렸던 김수현의 시대를 넘어서야 했던 것처럼, 이젠 김은숙을 넘어서야 할 때가 온 건 아닐까?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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