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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썰

다들 재밌다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뒷맛이 씁쓸했던 까닭

현실이 판타지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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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파국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JTBC <부부의 세계>는 9.979%(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기준)로 시작해 매회 시청률이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어느덧 18.816%(6회)에 이르렀다. 엄청난 폭발력이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일상의 소소함을 은은하게 드러내는 매력적인 드라마가 사랑받기도 한다. 바로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가 다시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두 사람은 세 차례나 과거(1997, 1994, 1988)의 부름에 뜨겁게 응답했고, 그 다음엔 대담하게도 감빵으로 무대를 옮겨 ‘슬기로운’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이번엔 자신들이 찾아낸 슬기로움을 병원이라는 공간에 차분히 풀어냈다. 1회 6.325%였던 시청률은 5회 만에 11.321%까지 치솟았다. 폭발력은 뒤지지 않는다.


병원은 어떤 곳인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래서 환희와 슬픔이 교차하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어쩌면 가장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슬의생>은 그런 욕심을 과감히 버렸다. 신원호와 이우정은 촌각을 다투는 병원 속에서조차 일상을 발견하고, 그 소소한 삶에 따사로운 빛을 비춘다. 그 뻔하지 않은 시선은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 차별화돼 독특한 인상을 남긴다.

물론 이 드라마가 의학 드라마의 표피를 입고 있는 건 사실이다. (율제) 병원을 배경으로 의사가 된 20년지기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이익준(조정석)은 간담췌외과 조교수, 안정원(유연석)은 소아외과 조교수, 김준완(정경호)은 흉부외과 부교수, 양석형(김대명)은 산부인과 조교수, 채송화(전미도)는 신경외과 부교수이다. 당연히 <슬의생>에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동안 의학 드라마들이 줄기차게 그려왔던 병원 내의 권력 다툼이나 대형병원의 상업화, 의료 민영화 등의 사회적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슬의생>은 종합병원 의사들의 일상적 삶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의학 드라마의 장르적 규정에 갇혀 있지 않게 된 이 드라마는 휴먼, 코미디,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눈치 보지 않고) 녹여낼 수 있다. 한마디로 유연하고 자유롭다.


사건이 아니라 인물이 포커스가 됐을 때, 성패는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느냐에 달려있다. 다행히 <슬의생>은 ‘슬기로운’ 캐스팅을 통해 그 숙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등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주연급) 배우들을 한꺼번에 섭외하며 막강한 화력을 구축했다. 이들은 자신의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며 시청자들이 조금의 이질감도 느끼지 못하게 했다.

또,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전미도를 카메라 앞에 ‘모셔’와 시청자들이 그 매력에 푹 빠질 기회를 제공했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 왔던 선례를 이번에도 충실하게 이행한 셈이다. 그 밖에도 김해숙, 김갑수 등 중견 배우들이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젊은 배우들을 병원 내 다양한 인물들에 매칭 시켜 시청자들이 한눈팔지 않고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슬의생>은 다섯 명의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분량을 할애했다. 노는 것도 성적도 늘 1등을 도맡았던 익준은 병원 내 ‘핵인싸’로 통한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매력의 소유자이다. 물욕 없는 재벌 2세 정원은 VIP 병실의 수익금을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사용하는 키다리 아저씨이기도 하다. 까칠한 준완은 직설적인 성격 탓에 오해를 맡기도 하지만,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은둔형 외톨이 석형은 사회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자발적 아웃사이더이다. 그는 엄마만 찾는 ‘마마보이’이기도 한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귀신’이라는 별명답게 송화는 학회 참석은 물론 후배들까지 챙겨주고, 수술에 정시 출근까지 (음치라는 점만 빼면) 완벽한 인물이다. 이렇듯 매력적인 주인공 5인방을 <슬의생>을 참 맛깔스럽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캐릭터에 대한 소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곳곳에 배치해뒀던 러브라인을 부각시키며 율제 병원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여 가고 있다. 장겨울(신현빈)은 안정원(유연석)에 대한 짝사랑을 이어갔고, 추미하(안은진)은 양석형(김대명)에게 매력을 느꼈다. 안치홍(김준한)은 채송화(전미도)에게 고백했고, 김준완(정경호)은 이익순(곽선영)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며 연애를 제안했다.


기존의 의학 드라마와 결이 다르기 때문일까. 인간미를 강조한 캐릭터들의 힘 때문일까. 이들의 러브라인은 그동안 ‘병원에서 연애질만 하냐’고 지적하던 목소리를 깨우기보다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물론 (작가만 알고 있는) 갑작스러운 러브라인을 통해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건 여전하지만, 애초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큰 흠집은 아니다.


<슬의생>은 재미있는 드라마가 분명하다. 캐릭터는 매력적이고, 그들이 얽히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지고, 따스한 감동이 전해진다. 넋을 잃고 보게 된다. 그런데 드라마 한 회를 다 보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 허기가 진다고 해야 할까. 그 미묘한 느낌의 정체는 뭘까. 어쩌면 그건 <슬의생>이 구현하고 있는 병원(혹은 세계)가 지나치게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은 아닐까.

율제 병원은 의사들과 환자들에게 낙원에 가까운 곳이다. 그곳에는 병원 수익률을 따져가며 의사들을 압박하는 경영진이 없고(JTBC <라이프>의 구승효의 경고는 어디로 갔을까), 병원비 문제로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도 없다. ‘키다리 아저씨’가 있으니까. 의사들은 업무 분장이나 승진 문제로 갈등조차 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병원의 소유자부터 이사장까지 선한 사람들 천지다. 그들은 물욕도 없고, 이기심도 없다.


환자들(과 보호자)은 자신들의 짧은 식견에 대해 기꺼이 반성하고, 오로지 선량하기만 한 의사들에게 감사해한다. ‘교과서’적인 감동이 드라마 전반에 넓게 분포돼 있다. 기계적이라 느껴질 정도이다. 현실의 차가움이 메스로 완벽히 도려진 판타지는 지친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시에 휴머니즘이 만들어내는 왜곡, 이 착시 현상은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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