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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잘 모를 때부터 'N번방' 고발 위해 싸워온 사람들

조회수 2020. 4. 4.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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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개월간 텔레그램 성착취를 고발해온 Project ReSET

* Project ReSET(Reporting Sexual Exploitation in Telegram, 이하 리셋)은 2019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약 4개월간 활동을 지속해온 익명의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단체이다. N번방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막기 위해 모인 그들은 더 나아가 최초의 국회청원동의를 얻어냈고, 디지털 성범죄 법제화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 치열한 투쟁을 앞장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본 기사는 Project ReSET과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고함20은 리셋을 비롯하여 디지털 성범죄와 싸우는 모두와 연대합니다.

나, 우리가 되다

“각자의 자리에서 신고 등의 방법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던 사람들이 합류하며 리셋이 완성되었습니다.”

처음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기사를 통해서였습니다. 한겨레의 텔레그램 성 착취 연속보도는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범죄를 담고 있었어요. 다 끝난 사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언론에서 잡아낸 키워드를 중심으로 텔레그램 링크를 검색하자 수많은 성범죄 채널이 쏟아졌습니다. 일반인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국가는 방치하고 있던 거죠. 화가 치밀었어요. 누군가는 멈춰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디지털 성범죄 신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활동하며 자연스레 이런 일을 하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일탈계 해킹 사건’부터 이 문제를 파헤쳐 왔고, 또 다른 누군가는 훨씬 이전부터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경찰에 넘기고 있었죠. 그렇게 한 명 두 명 모여 힘을 합쳤어요. 우리는 그렇게 리셋이라는 하나의 팀이 되었습니다.

리셋, 활동의 시작

출처: ⓒ트위터 캡처
Project ReSET
“리셋은 강간 문화로 인해 잃어버린 디지털 공간의 여성 안전을 다시(Re) 세운다(SET)는 의미입니다.”

가장 먼저 시작한 활동은 신고 총공(다수의 사람이 연대해 함께 신고하는 것)이었어요. 매일 최소 1회 성범죄 채널을 신고하고 인증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모니터링을 통해 신고대상 채널을 점차 늘려나갔죠. 애플리케이션에 제대로 된 신고 절차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해당 채널의 불법행위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모니터링은 정신적인 타격이 큰 업무예요. 어느 날은 더 이상 가해 현장을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힘이 들기도 해요.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관둘 수는 없는 노릇이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힘이 들면 잠시 쉬고, 일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독려합니다. 서로를 위한 일인 동시에, 업무를 지속하기 위한 방편이에요.


팀의 규모가 커지면서 피해자나 경찰과 연락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경찰이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어요. 신고 접수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아직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런저런 고생 끝에 신고 접수를 하더라도 법적 근거가 부족해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는 일은 드물고요. 아무리 증거를 모으고 신고를 해도 현재의 법은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거죠. 결국 더 본질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국회국민동의청원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에 가다

출처: ⓒ국회 국민동의청원
“소라넷 사건으로부터 무려 6년이 지났습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국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법망을 제대로 정비하지도, 피해자 지원 인프라를 확보하지도 못했습니다.“

청원이 성립된 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어요. 국회가 발표한 법안은 딥페이크만을 다루고 있었죠. 이는 텔레그램 내에서 디지털 성범죄자들이 활용하는 수많은 수단 중 단 하나일 뿐이에요. 텔레그램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법안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에서 요구한 건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의 전문적인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 및 매뉴얼 마련,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청원 성립 후 입법에 도움이 되고자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했던 발표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었어요. 그러나 법안에는 이러한 구조적 해결책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실망스러운 법안 처리의 이유는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제1 소위원회에서 발언한 의원들의 회의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무지했습니다. N번방 사건은 물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이해도가 낮은 발언들이 회의록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 전문위원은 말하더군요. ‘N번방 사건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고.

끝나지 않은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

“’강간 문화’ 종식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이중 가장 시급한 과제는 피해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청원은 본회의에 부의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행보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정계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갈수록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발언할 기회는 많아졌습니다. <주식회사 화난 사람들>에서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주요 피의자인 조모 씨 엄벌 탄원 서명도 받기 시작했어요. 여성의당과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마련을 최우선 의제로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협약식을 했고, 3월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 주관 간담회에도 참석하여 디지털 성범죄 근절에 대한 의견을 표했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어요. 연대와 도움의 손길의 틈으로 또 다른 문제들이 비집고 들어왔으니까요.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채널이 노출되자 하룻밤 새 그 채널 이용자가 2천 명이 늘었습니다. 방송이 성범죄를 부추기는 역할을 한 거죠. 공론화 후에는 수사 대상 플랫폼의 이름이 그대로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날, 해당 플랫폼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던 범죄자들이 집단적으로 증거를 인멸하고 탈퇴하는 상황이 펼쳐졌어요. 


분별없는 보도로 인해 수사에 지장이 생기는 것 외에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2차 피해입니다. 흥미 위주의 경쟁적인 취재가 이어지며 피해자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되었어요. 피해자를 암시하는 키워드를 드러내거나 사건을 필요 이상으로 묘사해주길 요구하는 취재진도 있었습니다. 이미 정해놓은 편집 방향을 맞추기 위해 왜곡도 서슴지 않는 보도를 보며, 취재에 응하는 것이 그 어떤 업무보다 힘들게 느껴지기도 해요.

백 명의 사람들이 내딛는 한 걸음

출처: ⓒ인스타그램
SNS를 통한 N번방 챌린지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사관과 사회에 만연한 2차 가해 발언에 대하여 적극적인 항의를 하는 댓글, 친구, 가족이 피해자에게 힘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힘든 상황에도 활동을 지속하는 건 사회에 대한 우려나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니에요.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일상을 되찾는 데에 대한 바람이 커요. 일상 회복은 사회 시스템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가해자를 검거하고,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재판 결과가 나와야 하는 거죠. 하지만 그 과정은 길고 지난합니다. 피해자들이 홀로 버티게 해서는 안 돼요.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조력자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건 지금 당장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죠. 연대의 목소리는 아무리 커도 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관심이 는 것이 가슴이 벅차도록 기쁩니다. 인스타그램 등 SNS상에서 여전히 챌린지가 진행 중이에요. 하지만 이런 일마저도 위험을 동반합니다. 하루는 연대해주시는 분들께 위협이 있을 수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안전이 가장 우선이기 때문에 곧바로 챌린지에 대한 경고문을 게시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챌린지에 참여해주시는 분들은 많았어요.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숨지 말자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고요. 위협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연대로 대항한 연대자분들께 고마울 뿐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해킹에 대비할 방법을 정리하여 안내했어요. 


실제로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자들도 그런 연대에 반응해요. 요즘 ‘N번방 얘기 많이 하지 않냐’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가해자 중 한 명이 말했어요. 지인이 N번방에 대한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고. 그는 ‘(자신이) 쓰레기가 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피해자에 대한 연대,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가 이 사회를 달굴 때 그들은 한층 더 설 자리를 잃게 될 거예요.

우리가 마주할 미래

“리셋의 최종 목표는 리셋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고, 여성들이 평범한 삶을 다시 세울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리셋이 활동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인 처벌 범위가 담긴 법안과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사회 분위기 등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제도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요. 이 활동의 끝에는 더 이상 처벌의 근거가 없어 가해자가 사회를 활보하게 놔두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앱은 수사가 어려우니 단념하라’며 무심하게 신고를 반려하거나, 2차 가해에 대한 걱정으로 피해자가 신고를 주저하는 일도 없어야 할 거고요. 그 사회에서는 여성이 디지털 공간 내 대상화된 재화가 아닌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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