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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명의 상어 떼에 희생당한 '인디애나폴리스 호 사건'의 전말

조회수 2020. 2. 22.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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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죠스> 보다 충격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 2015년 12월 14일 직썰에 발행된 글입니다.

어려서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는 <죠스>다. 상어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됐던 영화였던데다, 그 무지막지한 백상어의 커다란 아가리는 며칠 동안이나 꿈에 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식인상어를 잡겠노라 열의를 불태웠지만 막판에 상어에게 잡아먹히고 마는 어부 퀸트 역의 로버트 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영화 중 배 안에서 퀸트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는데, 그의 배가 일본군의 어뢰에 맞고 침몰한 뒤 태평양 위를 떠다니며 구조를 기다리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기억을 되새겨 대략적으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피 냄새를 맡고 상어가 몰려왔지. 상어의 눈은 검어. 마치 인형의 눈처럼 생명이 없는 눈 같지. 그 눈으로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지. 상어들은 가까운 데 있는 이들부터 차례로 공격했고 물린 사람은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어. 동료들은 하나 둘 상어의 밥이 됐고, 바다는 피로 물들었지. 가까이 있는 동료에게 다가갔는데 허리 아래가 없더군. 그게 1945년 6월 29일이었어."

이 이야기는 실화다. 날짜는 좀 틀렸지만. 퀸트가 이야기하는 배는 인디애나폴리스 호라는 이름의 미국 중순양함이었다. 이 배는 비밀 임무를 띠고 호위함 하나 없이 캘리포니아를 떠나 태평양으로 항진해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으나, 귀환 시에도 비밀스레 단독항해를 하다가 일본군 잠수함에게 공격당했다. 일본이 무조건항복을 하기 보름 전, 7월 30일이었다.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호가 맡았던 비밀 임무는 조립 전의 원자폭탄을 수송하는 일이었다. 침몰 6일 뒤 히로시마에서 수만 명을 일순간에 죽였던 바로 그 원자폭탄. 그 지옥의 물건을 운반한 댓가를 치른 걸까. 

어쨌든, 침몰한 인디애나폴리스 호에는 어뢰 폭발시 죽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수백 명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무려 4일 동안이나 구조를 받지 못하고 바다에 떠다니다가 상어 떼의 습격을 받아 죽어갔다. 피를 흘리는 부상병들이 상어를 부른 것이다. 생존자들은 부상병과 시체를 멀리 떼놓기도 했지만 이들을 모두 먹어치운 상어들은 근처에 또 다른 만만한 먹이들이 있음을 알게 됐고 그 ‘인형같이 까만 눈’을 번득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9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우연히 지나가던 미군 비행기가 그들을 발견해 구조대를 불렀을 때, 생존자는 단 316명 뿐이었다. 과거 임팔 전투 때 일본군이 바다악어 집단 서식지에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한 부대가 악어 떼들에게 통째로 잡아먹힌 이래 최악의 참사였다.

미국 전체가 뒤집어졌다. 이제 전쟁은 거의 끝났다고 여유만만해하던 판에 밀어닥친 대참사 소식에 여론은 들끓었고 함장 맥베이는 그야말로 대역죄인이 되었다. 전쟁을 끝내고 고국에 돌아올 일만 남았다고 여기던 청년들 수백 명이 상어들의 먹잇감이 되어 죽어갔다는 소리를 들은 미국인들 눈에 핏발이 섰던 것이다. 맥베이는 애타게 물었다. “그렇게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 왜 응하지 않았습니까.” 해군측의 공식 답변은 ‘구조 요청 없었음’이었지. 그리고 미 해군으로서는 어떻든 희생양이 필요했다. 


미 해군 역사상, 특히 태평양 전쟁사에서 자신의 배를 잃었다고 해서 함장이 군법 회의에 회부된 예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맥베이는 그 꼴을 당했고 “회피기동을 제대로 하지 않은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맥베이에 대한 군법 회의에 반대하고 그의 징계도 견책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겼던 니미츠 사령관은 맥베이를 원상복귀시키고 제독으로 승진시키지만 맥베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소장으로 군 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상어밥으로 만들었다는 대중의 비난과 유족들의 원성은 계속 그를 괴롭혔고 결국 맥베이는 자살을 택했다.


수십 년 뒤, 미국의 열 두 살 소년이 영화 죠스를 보게 되었다. 소년은 그 영화 속에 등장하는 퀸트의 경험담에 전율했고 그 사건의 무대가 된 인디애나폴리스 호 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료를 조사하던 소년은 그 배의 함장이 미 해군 사상 유일하게 자신의 배를 잃은 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 내막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영화 주인공처럼 끈질기고 호기심 넘쳤던 이 소년은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생존자들까지 찾아다닌 끝에 맥베이 함장의 무죄를 확신하고 무죄 탄원 운동을 시작했다. 


이 맹랑한 소년의 활약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인디애나폴리스 호 사건은 또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고 미 의회까지 나선 대규모의 재조사가 벌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경악할만한 사실이 여럿 밝혀졌다. 


당시 맥베이 함장이 구조 요청을 했었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는 분명히 위험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으나, 이를 처리해야 할 당국자들은 술에 취해 있었거나 카드게임에 빠져 그를 무시했다. 제정신에 구조 요청을 받은 사람도 “일본 해군에 무슨 기력이 있다고 순양함을 침몰시키나? 이건 일본군의 역정보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며 한창 논란이 격화되던 때 미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호를 격침시켰던 일본군 잠수함 I-58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가 쓴 것이었다. 그는 전쟁 후 얼마간 해운업에 종사했지만, 이내 모두 그만두고 교토 한 신사의 궁사 (절의 주지같은 느낌의 신사 관리인)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로서도 용서를 빌 상대가 많았다. 그가 침몰시킨 미국 함선의 승무원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의 사관학교 동기 15명 중 10명도 목숨을 잃은데다 전쟁 말기 일본 해군이 거느린 최대의 잠수함이었던 I-58에는 가이텐, 즉 천안함 사건 때 조선일보가 들먹인 ‘인간어뢰’의 원조라 할 가이텐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천황 폐하와 신국 일본을 위해 기꺼이 죽는다는 유서를 남긴 뒤 가이텐을 타고 바다로 출격했고 태평양의 고기밥이 되거나 폭뢰에 의해 산산조각나 죽어갔다. 일본 대본영은 가이텐이 항공모함을 폭발시켰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사실 거의 모든 가이텐들은 미국 함대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헛된 죽음 속으로 줄달음쳤던 청춘들을 떠올리면, 그가 궁사를 직업으로 택한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속세를 버렸던 그가 인디애나폴리스 호 문제가 미국 사회를 다시 달구기 시작했을 때 결정적인 편지를 보낸 것이다. 원래 전쟁 직후의 재판 과정에서도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기동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증언을 했던 그였지만 편지 내용은 더 구체적이었다.

'당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당시 인디애나폴리스 호는 어떤 방비를 하고 있더라도 격침이 가능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저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승무원들은 끔찍했던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 귀하와 귀하의 나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맥베이 대령에게 내려진 부당한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http://blue-paper.tistory.com/481 에서 인용)

하시모토는 그 이전에 진주만에서 인디애나폴리스 호 생존자들을 만난 바 있다. 그는 "저 때문에 죽은 사람들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라고 했고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선원들은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받아 주었다. 그가 미국 상원의원에게 위 편지를 보낸 건 1999년의 일이었고 1년 뒤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 해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맥베이 함장의 무죄를 선언했다.

전쟁은 수많은 인간들의 생명을 앗아갈 뿐 아니라 생전 볼 일도 없고 마주칠 기미조차 없었을 사람들이 악연을 쌓게 만든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국비로 공부하는 해군사관학교를 지망했던 한 똑똑한 일본 장교와, 3대째 제독을 지낸 해군 명문 집안 출신임에도 끝나가는 전쟁의 마지막 희생양이 된 군함의 함장인 미국 장교는 그 운명의 접점에서 만났고, 상어밥이 된 수백 명의 목숨을 뒤로 하고 살아남았지만 그 짐을 평생 지고 살아가야 했다.


그 죄책감과 억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던 맥베이와 그 억울함을 풀어주고자 하는 노력에 화룡점정을 찍은 하시모토. 불교인은 아니지만 잠시 이 사건에 얽힌 업의 무게와 인연의 타래를 생각하게 된다. 원자폭탄을 실어나른 인디애나폴리스. 그리고 그 폭탄이 터지기 전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죽어간 수백 명의 미군. 책임을 져야 했던 미군함정의 함장과 신사의 관리자가 된 일본 잠수함장. 단순한 우연이 반복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죽음이 얽혀 있기에.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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