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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기생충’, 우리는 ‘지.옥.고’에 삽니다

‘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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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고: 지하(반지하)와 옥탑방, 고시원에서 한 글자씩 따와 주거빈곤가구의 고충을 표현한 신조어다. 특히 청년층이 지옥고에 거주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영화 <기생충>이 ‘최초’라는 기록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

라디오에선 한껏 상기된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월 9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무려 4관왕을 거머쥐었다. 최근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다소 무거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영화 <기생충>의 선전은 우리 사회에 반가운 소식이다.


<기생충>은 사회 양극화 현상을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 속 극명히 대비되는 집은 인상적이다. <기생충>의 줄거리는 감독의 허구적 상상력으로 탄생한 것이지만, 영화 속 공간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영화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이유는 연출이 디테일하고 번역이 훌륭해서 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우리 사회에 실재하는 공간이기 때문 아닐까. 수많은 사람이 영화 관람 후 ‘너무 현실에 가까워서 찝찝함이 남는다’라 평가하기도 했다. 


영화가 개봉한 지도 260여 일. <기생충>이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궁금해졌다. 시야에 각기 다른 모습의 집들이 들어온다. 벽돌집과 콘크리트 집. 창문이 있는 집과 없는 집. ‘제발 조금이나마 나아졌어라’. 하는 마음으로 찾아가 봤다.

고시원 복도에 쌓여있는 물건들. 방안은 신발과 우산을 둘 자리가 없다.

출처ⓒ고함20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고시원을 방문했다. 들어가 보니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앞으로는 수많은 우편물과 택배가 쌓여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장소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방에선가 틀었을 음악 소리가 좁은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6개월간 거주했다는 박 씨를 만났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부탁했다. 거절할 수도 있겠다며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데 웬걸, 그는 흔쾌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품기 쉬운데, 여기에도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전북 출신인 박 씨(25세)는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이며 서울에 온 지는 올해로 4년 차다. 그동안 학교 기숙사/부모님 회사 기숙사/반지하/하숙집/고시원 등을 전전했고 크고 작은 이사만 무려 일곱 번 정도 했다. 박 씨가 이렇게 자주 이사를 해야 했던 이유는 ‘과도한 주거비’ 때문이다.


주거비 부담을 덜기 위해 그는 열악한 공간을 선택했다. 전에 살던 반지하에서는 한 달도 못 살고 나왔다고 한다. “남들도 여기서 누가 살 거라곤 상상도 못 하는지 버젓이 창문 앞에서 담배를 피웠어요.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집에 늘 퀴퀴한 냄새가 났는데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다 보이게 문을 열어 둘 수도 없잖아요. (…) 그 집에서는 처음 보는 벌레도 많이 봤어요. 무슨 벌레인지 이름도 모르겠어요.” 


급히 방을 빼 보증금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고시원이었다. 처음에는 고시원 생활이 너무 답답하고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도 컸지만,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니 이곳에서의 생활도 익숙해졌다. 이제는 같은 층 사는 사람들은 얼굴도 다 익혀 어디에 누가 사는지도 알겠단다. 무엇보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에 대해 선입견을 갖기 쉬운데, 여기에도 자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었다.

고시원 방 내부 사진. 박 씨의 방 대신 비어있는 옆 방을 촬영했다.

출처ⓒ고함20

우리 사회의 주거 빈곤 문제에 대해서는 “과도한 주거비는 분명 사회적 문제”라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빚부터 지우는 사회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방학은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아르바이트를 쉬어 본 적이 없다. 여전히 생활비에 월세, 학자금 대출 등은 그를 불안하게 하지만 언젠간 꼭 ‘내 집 마련’에 성공하고 싶다고 전했다.

― “부족하면 아껴 쓰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처음으로 돈 때문에 불안했어요.”

무거운 마음으로 고시원을 나와 다음으로는 한 씨의 집에 방문했다.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한 씨(22세)는 현재 서울의 한 대학가 근처 옥탑방에서 2년째 거주 중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한 씨의 옥탑방 생활은 신청했던 기숙사 입사에 떨어지면서 시작됐다. 소득 분위와 거리 점수를 충족하지 못해서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어떻게 통학을 하냐며 굉장히 황당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1000에 50”. 한 씨가 처음 서울에 와 방을 구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보증금이 없는 곳은 하나같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고 한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부모님께서는 지방의 한 국립대에 진학하기를 권유하기도 하셨던 터라 손을 벌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큰 금액의 보증금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마련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돈이 제게 스트레스 요인이 아니었어요. 부족하면 아껴 쓰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처음으로 돈 때문에 불안했어요.” 그는 막막한 마음에 청년들을 위한 주거지원제도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자신을 위한 제도는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청년’을 위한다지만 신혼부부 등을 위한 제도여서 서류접수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고 신청이 가능한 기숙사의 경우 학교까지 통학할 엄두가 안 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률도 너무 세 신청해도 떨어지기 일쑤였다. 한번은 예비선발이 되었다는 문자에 희망을 걸어봤지만 다시 연락이 오진 않았다.


현재 그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7평 남짓한 옥탑방에 살고 있다. 추운 날씨 탓에 씻을 때가 힘들고 비싼 난방비 역시 걱정되긴 하지만 자신은 그런대로 잘 지낸다고 한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친구들도 많지 않냐며 오히려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도 덧붙였다.

― “조금의 취향은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 모두에게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을 했다. 박 씨는 “지금은 공용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답했다. 한편 한 씨는 “창문이 크고 해가 잘 드는 집, 건조대 하나 편다고 방이 꽉 안 차는 곳이면 좋겠다”며, “당장 의식주를 해결하기도 힘든 누군가에게는 이게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조금의 취향은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서울시가 제작한 기생충 투어 카드뉴스

출처ⓒblog.seoul.co.kr

사람에게 필수재인 집, 청년에게도 ‘자기만의 방’은 필요하다. 이는 보장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다. 영화 <기생충>이 화제가 되면서 국내를 비롯한 외신에서도 ‘반지하’라는 주거공간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영화가 가난을 소비하는 방식이 옳았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열악한 주거공간이 주목받고 이로 인해 누군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긍정적인 걸까 고민이 깊어진다.


한편 서울시는 <기생충> 촬영지를 한류 관광 코스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문제를 진단하기보다는 그 공간을 ‘관광상품’으로 소비하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은 한참 멀어 보인다. 어쨌든 ‘주거 빈곤’에 대한 화두는 던져졌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 사회에 작동하고 있지 않은 복지 시스템을 수리해야 함이 분명하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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