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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흉가에 나타난다는 '착한 떼귀신'의 정체

조회수 2020. 2. 6. 1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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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수백 명의 귀신이 살고 있다고 했다.

* 2016년 7월 6일 직썰에 게재된 글을 재발행합니다.

흉가는 별 게 아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지 않으면 그 집은 흉가가 된다. 분명히 며칠 전에 멀쩡히 도배 깔끔하게 해 놓고 비워 놓은 집에, 에어컨 배관 구멍으로 새가 들어와 새똥을 갈기고 간 걸 본 적이 있다. 사람 손을 안 타면 집은 그렇게 금방 망가진다. 거미가 줄을 치고 벌레가 모여들고 쥐들도 대담해진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흉가가 되는 것이다. 흉가가 되면 가끔 사람들이 온다. 흉가 구경한다고. 곰곰히 떠올려보면 우리 주변에는 의외로 흉가들이 많고 그 중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흉가도 적지 않다. 나도 촬영차 그 몇 군데를 돌아 본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곳은 경북 영덕 장사 해수욕장 근처의 흉가였다.


네비게이션이 없을 때라 인근에서 물어 물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인근 영덕 군민들은 열이면 열 그곳을 알고 있었다. 다들 그 집에 간다는 우리를 이상한 듯 쳐다봤지만.

"그 집에 뭐한다고 가니껴?"

우리가 찾은 흉가는 ‘언덕 위의 하얀 집’ 같은 전망좋은 위치에 있었다. 원래는 횟집으로 지어진 듯 허물어진 수족관 흔적이 보였고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은 귀신쫓는다는 팥죽 자욱이 선연한 가운데 깨진 유리창과 산더미같은 쓰레기로 어수선했다. 그리고 이 버려진 집 전체에는 설명하기 힘든 괴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런데 좀 낭패가 난 것이 1층에는 깔끔하게 수리된 방에 사람이 버젓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의 계시로 보따리 싸서 이 집에 들어왔다는, 무속인인 듯 보이나 완강히 그 호칭을 거부하며 ‘불자’를 자처하는 부부였다. 

"이 집에 들어와서 제가 보름 전에 전기를 넣었어요. 그런데 전기공 하는 얘기가 이 집은 12년 동안 전기가 끊겨 있었대요."

그러니까 사람의 발길이 끊긴 것이 12년은 족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왜 그렇게 인적이 끊겼을까? 당신은 무섭지 않은가? 여기서 귀신 본 적은 없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불자 부부 중 아내가 담담하게 하는 이야기에 나는 그만 소름이 돋고 말았다. 

"지금 선생님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이지요? 하지만 지금 이 집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우리랑 함께 있어요. 저는 부처님 원력 의지하니까 괜찮지만 보통 사람들한테는 이 집이 끔찍한 집이지요. 내가 왜 사람이라고 하냐면, 정말 사람처럼 이 집을 들락거려요. 수십 명 수백 명이....."

불자는 귀신들이 매우 착하다고 했다.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떼로 뭉쳐 다니는 ‘떼귀신’들이긴 하지만 사람을 해꼬지한 적도 없고 유순하다고 했다. 그들은 누구일까. 

한국 전쟁 당시 학도병의 모습

이 궁금증에는 마을 사람들이 더 그럴 듯한 대답을 주었다.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직전에는 양동작전, 즉 진짜 작전을 적에게 숨기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몇 군데 해안 지역에 소규모 상륙작전이 펼쳐진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의 흉가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사 해수욕장이 그 현장 중 하나였다는 얘기였다.

"그 LST(상륙 작전용 함정)에 탄 거는 국군이 아이라 학도병이었다카대. 훈련도 안받은 그 어린 아-들이 상륙을 하다가 인민군들한테 몰살을 당했다 카더라고. 그 학도병들을 떼로 묻은 기 그 집 터라 카대. 그 언덕 전체가 묘지였다카거덩. 그래 공사한다고 땅 팔 때 유골이 많이 나왔다 카더라고..."

서늘해지는 등골을 감싸안으면서 분위기를 돌려 보려고 옆에 있던 대학생 체험단의 리더격인 학생에게 물어 보았다. 아주 냉철한 듯한 어투로 . “넌 귀신 같은 거 믿냐?” 그러자 그 학생은 제 속을 들여다보듯이 말을 되받았다.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으니 결과가 생기겠죠."

"이유?"

"PD님은 그 학도병들이 귀신이 될 것 같지 않아요? 억울해서라도?"

"......"

"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귀신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신문에 정일권 당시 육군 참모총장의 작전명령서가 복원됐다는 기사가 떴다. 흠칫 놀란 것은 이 명령서에 바로 이 장사 상륙작전이 등장한 탓이다. 육군 작전 명령 제 174호였다. 

"육본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상륙 감행시켜동대산(東大山/포항북부 소재)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는 당시 정일권 참모총장의 친필명령서이다."

놀라운 건 군사편찬위 양영조 군사연구부장의 말이다.

"당시 투입된 학도병을 언급한,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공식 문건이다."

즉 장사 상륙작전에 투입돼 죽어간 학도병들은 지금까지 ‘비공식’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꿈도 많고 열기도 넘치고 하고픈 것도 허다했던 그 반짝이는 나이에 피를 토하며 죽어가야 했던 그들이 이제껏 공식적인 전사자 취급도 받지 못했다는 거다.


학도병들은 무려 10시간의 사투 끝에 장사 해수욕장 근처 200고지 (언덕 위의 흉가에서 내다보이는 그 산인 것 같다)를 점거하고 1주일을 버텼다. 퇴각을 위해 LST가 왔지만 밧줄에 매달려 철수 작전을 벌이던 중 인민군의 박격포가 집중되자 LST 함장이 밧줄을 끊어 버렸다. 해변에는 수십 명의 학도병이 남아 울부짖었다고 했다. 

가까스로 배에 올라탄 학도병들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그들을 향해 인민군이 새까맣게 죄어들어오는 모습이었다. 700여 명이 상륙했지만 몇 명이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부산으로 귀환했을 때 신성모 국방 장관이 엉겁결에 내뱉은 말을 학도병들은 평생 잊기 어려웠을 것이다. 

"너희들 어떻게 살아왔니?"

물론 반가움이 극에 달하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신성모의 캐릭터를 아는 이로서 저 말이 그리 살갑지는 않다. 


누렇게 떠 버린 종이와 희미한 글씨 사이에서 언덕 위의 하얀 집을 떠올린다. 그 집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우물물을 퍼먹고 노래도 부르고 발도 구르고 가끔 쌈박질도 했다는 ‘떼귀신’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이제는 정말 평화 속에 쉬시기를. 그리고 만약에 또 한 번 그대들처럼 불행한 소년들이 또 나올라치면 다시금 몰려나와 위정자들의 꿈 속에서 악다구니 쳐 주시기를.  


"이 개새끼들아 또 우리같은 귀신 만들 참이냐" 하면서.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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