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골목식당' 사장님 일깨운 백종원의 일갈

조회수 2020. 1. 29. 12: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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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 문화촌을 찾은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전형적으로 장사가 안되는 가게들의 실상을 보여줬다. 16년 동안 한결같이 닭을 튀겨온 치킨집은 아무런 고민 없이 그저 전 주인으로부터 배운 대로만 조리했다. 닭의 비린내를 잡겠다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소주를 기름에 넣어 닭을 튀겼고, 염지가 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순물이 남아 있는 닭을 씻지도 않고 곧바로 조리했다. 그런데도 사장님들에게 열정과 성실함이 있어 백종원은 발 벗고 그들을 돕기로 했다.


팥칼국숫집은 상황이 좀 심각했다. 주력 메뉴인 바지락 칼국수는 맛이 평범했고, 팥옹심이의 경우에는 팥의 진한 맛이 없었다. 특색이 없는 가게에 손님이 몰릴 리가 없었다. 또, 위생 상태도 좋지 않았다. 냉장고에 고무장갑이 들어가 있는가 하면 팥을 갈아 놓은 믹서기도 놓여 있었다. 한편, 사장님은 백종원의 지적에 계속해서 변명으로 일관했다. 급기야 (예고편에서 나온 것처럼) 대놓고 “비법을 가르쳐 줘야지!”라며 반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감자탕집이었다. 이곳은 모자가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매우 침체돼 있었다. 엄마는 식당과 붙어있는 방에 들어가 TV를 보고 있었고, 아들은 카운터에 앉아 태블릿 PC로 축구 경기를 보거나 바둑, 예능 등을 시청하고 있었다. 장사에 대한 의욕이 없다고 할까. 가게에 대한 애정도 없어 보였다. 손님이 와도 건성건성 했다. 무기력함이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이런 식당의 음식이 맛이 있을까? 고기는 삶은 지 이틀이 넘었고, 감자도 3일 넘게 쪄둔 채 보관해 신선함이 없었다. 오래된 재료로 만든 감자탕은 백종원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끌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백종원은 의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들에게 과제를 내줬다. 엄마에겐 감자탕의 간을 맞추고, 매일 판매할 적당량만 만들고 남는 건 버리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아들에게도 미션을 줬다. 

“아드님은 숙제를 줄게요. 바쿠테(동남아식 갈비탕)라고 있어요. 엄마보다 일찍 나와서 아침에 갔다 오든가 손님 없는 브레이크 타임에 가서 마장동에 가서 그날 나온 돼지 등뼈를 한 채씩 사 와요. 바쿠테 레시피를 찾아서 하루에 한 번씩 연습해 보세요.”

과연 아들은 백종원이 내준 숙제를 성실하게 수행했을까. 애석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아들은 지난 한 주 동안 바쿠테를 끓이는 연습을 하긴 했지만, 마장동에 다녀오는 대신 가게 냉동고에 있는 수입 목뼈를 사용했다. 도대체 왜 백종원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던 걸까. 아들은 그 이유에 대해 궁극적으로 재고로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맛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 대답했다. 백종원은 “착각하고 오해한 것 같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백종원이 숙제를 내주면서 원했던 건 단순히 바쿠테의 맛을 재현해 보라는 게 아니었다. “그걸 해보라고 한 이유는 직접 발품 팔아보라고 시킨 거예요.” 백종원은 장사 의욕이 없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며 겉돌고 있는 아들이 매일 직접 마장동에 가보고 신선한 등뼈를 구해보며 발품을 팔아보길 바랐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가게에 애정이 없는 아들이 조금이나마 주인의식을 갖길 기대했던 것이다.

아들의 변화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겉돌고 있는 아들을 가게에 들어오게 하려고 했던 백종원의 1차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모니터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성주는 “지금까지 만난 <골목식당> 사장님들 중에 최고로 무기력한 분들 TOP3에 드시는 것 같아요”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백종원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요리를 하던 아들의 태도를 지적하며 “이 가게의 이방인이에요, 이방인. 무슨 마음으로 여기 앉아 있는 건지 묻고 싶은 거예요”라고 다그쳤다.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해요, 이러려면. 왜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냐고. 이건 아니지. 정말 이 일을 좋아하고 이 일에 사명감이 있고 정말 하고 싶어서 열정에 불타는 사람 많아요. 그래도 안 돼. 뭐야, 이렇게 무기력하게. 간절함도 안 보이고, 의지도 안 보이고.”

여전히 변명으로 일관하는 아들의 태도에 격분한 백종원은 차라리 다른 일을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아들은 처음에 가게에 합류했을 당시에는 의욕이 있어 여러 가지 제안도 해봤지만, 그때마다 엄마와 충돌하면서 점차 회피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백종원은 그렇다고 도망만 다닐 거냐며 상처를 딛고 다시 시작해 볼 것을 권유했다. 아들도 이대로 포기할 생각은 없다며 조금이지만 나름대로 의지를 드러냈다.

대화를 마치고 혼자 남은 아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급속히 쪼그라든 자신에 대한 자책이자 후회 때문이었을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상황실에서 내려온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기 시작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느낌이다”, “그래, 우리가 너무 태만하긴 했지”, “힘은 나네. 확실히. 힘은 나.” 


과연 백종원의 충격요법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감자탕집에 다시 한번 열정이 가득 차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까.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학습된 무기력이 개선되기 위해선 그만큼 피나는 노력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홍제동 감자탕집 아들이 제2의 홍탁집 아들이 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현재의 무기력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 질책과 비난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 역시 언제든 그들이 빠진 늪에 빠질 수 있음으로.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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