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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타투를 보며 ‘후회하지 않냐’ 묻는 사람들에게

내 몸엔 한 손으론 세지 못할 타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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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엔 한 손으로는 세지 못할 타투가 있다. 타투를 처음 하게 된 것은 4년 전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되면 바로 해야지 하고 벼르고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생각해보니 ‘평생 지우지 못하는 낙인’이라는 생각에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몇 년간의 고민 끝에 타투를 하러 간 이유는 어이없게도 다소 충동적이었다. 여느 날처럼 과외를 하고 들어가던 길에 종잡을 수 없는 이유로 눈물이 날 만큼 우울했던 나는, 지하철에서 타투를 예약하고 바로 목적지를 집이 아닌 타투샵으로 변경해 마음을 먹은 지 한 시간 만에 몸에 글자를 새겼다. 그게 나의 첫 타투였다.


여기저기의 타투들은 주로 보이는 곳에 있다 보니, 몸을 드러내고 다니는 계절이 오면 친인척부터 술집에서 처음 만난 사람까지, 모두가 나에게 비슷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중 대부분은 후회와 관련된 질문이다. 무슨 의미냐, 아프진 않냐, 이런 질문을 하다가도 결국에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후회에 대한 여부이다. 어떨 때 보면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묻는 걸 보니 마치 내가 후회하길 바라고 있기라도 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타투를 할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것은 불가역성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몸은 과연 얼마나 고정적인가? 만약 고정적이지 않다면, 내 몸이 겪는 수많은 변화 중 가역적인 것은 몇이나 되는가? 나는 잘 넘어지는 사람이라서 몸에 흉터가 많다. 그 흉터에 아무리 재생 크림을 덧발라보아도 그것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몸무게 역시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곤 한다. 몸은 원래 쉽게 변하고, 그런 변화는 쉽게 돌려지지 않곤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타투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조언’할까? 


우리는 항상 어떠한 몸일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몸의 모양은 획일화되어 있고, 당연히 그 영향은 미디어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일반인, 특히 여성들은 그런 연예인들의 몸을 재현할 것을 요구받는다. 잘못된 몸과 그렇지 않은 몸,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 합법적인 몸과 불법적인 몸은 사회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옷을 살 때 옷의 디자인보다는 사이즈를 더 많이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오히려 타투는 내 몸을 긍정하는 수단이었다. 내가 선택한 그림이 내 몸에 있다는 것은 내 몸에 애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내 몸을 나의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작년 이맘때쯤, 또 하나의 타투를 한 날의 사진

출처ⓒ고함20

내가 타투를 할 때는 한 가지 조건이 늘 있었다. 바로 ‘보이는 곳에 할 것’. 보이지 않는 곳에 한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줄곧 긴장된 채로 꼿꼿하다가도 쉽사리 풀어지고 늘어지는, 어쩔 땐 이상하고 어쩔 땐 “예쁜” 그 몸에서, 타투는 내가 나의 몸에 신경 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지표였다. 우리는 종종 무례의 선을 훨씬 웃도는 말을 주고받는다. “너 살 좀 빼야겠다”, “네 몸에 신경 좀 써”, “사람답게 좀 하고 살아라”, 마치 내가 거울도 안 보는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건넬 최후통첩으로써 나는 타투를 내보이고 다니곤 했다. “나는 내 몸에 그림을 그릴 정도로 신경을 쓰면서 살아요”하고 말이다. 물론 타투를 본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무례를 던진다. “몸에 이런 게 다 뭐니”. 그럼 당신은, 제 몸에 그런 말이 다 뭐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타투로써 Body Positive, 몸에 대한 긍정성을 회복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타투로나마 내 몸을 긍정하려 했던 것은 내 몸을 갉아 먹던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타투는 이제 나에겐 큰 의미는 없지만, 그만큼 나에게 의미 있는 행복을 주는 일이다. 내 몸을 사랑해보고자 하는 수단이었던 타투는 내 몸을 사랑하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가 됐다. 마치 내가 아끼는 새로 산 노트북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 놓으면 기분이 좋겠다-고 하는 것마냥. 


우리, 최소한 서로의 몸에 대한 단정 짓기는 그만하자. 몸은 늘 나의 마음처럼 나를 이루는 유동적이고 연속적인 요소일 뿐이다. 몸에 흉이 있든, 그림이 있든 그것은 여느 사물이 그렇듯 그 몸이 지니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다. 내 타투들에는 별 의미가 없다. 마치 내 흉터들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내 살과 근육에 의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처음에는 의미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새겨진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수 있다. 늘 의미란 것은 어떤 것 자체보다 그에 내가 새기는 뜻, 그로써 떠오르는 기억에 따르기 마련이니까.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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