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가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

조회수 2020. 1. 14.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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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2016년 9월 25일 직썰에 게재된 글입니다.

바람이 끊이지 않고 몰아치던 지리산 자락, 전라북도 남원의 어느 집에서 한 남자가 죽었다. 남자 나이 쉰 다섯. 그는 식칼에 찔려 피살됐다. 살인자는 나이 서른의 가정주부였다. 치정관계라고 하기엔 나이 차이가 났고 돈 문제가 얽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한 관계였다. 그런데 그 원한은 무척이나 깊은 것이었다. 무려 21년 전 우물가에 물 길러 갔던 아홉 살의 소녀는 잠깐 이리 와 보라는 아저씨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따라갔고, 그만 성폭행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홉살 소녀의 고통과 놀라움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느냐마는, 그 말문을 막아버린 것은 공포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막막한 공포, 말해 본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캄캄함의 공포, 누구에게든 말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이 부르는 현실적인 공포. 아홉 살 소녀의 아픔은 공포 속에 묻혔고, 그로부터 21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찌 어찌 키는 자라고 가슴은 나와 성인이 됐고 결혼도 했지만 그녀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고, 누군가와 아이를 낳고 살면서도 화들짝 화들짝 고슴도치가 되어 버리는 스스로에 절망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스물 한 해 전의 악몽을 떠올려 냈다. 자신의 안에 흐르는 악몽의 강의 새암이 그날이었음을 기억해 냈다.


그녀는 그 악몽으로부터 스스로를 떨쳐 낼 방도를 찾았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 자의 공소시효도 15년이면 끝나는 나라에서 자신이 당한 범죄의 가해자를 응징할 방도는 없었다. 마음씨 좋은 파출소 순경이었으면 “아주머니. 정말 미치게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어요. 그냥 잊고 사세요.”라고 나직하게 타일렀을 것이고, 좀 까칠한 순경이었으면 “진작 신고 안하고 뭐했어요, 아줌마. 이제는 대통령이 와도 안 돼. 돌아가세요. 바빠 죽겠는데.”라고 돌아앉았을 것이다. 많은 번민과 주저 끝에 여자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망친 가해자를 응징하기로 결심한다.

1991년 1월 30일 여자는 21년 전의 그 남자를 찾아가 칼을 휘두르고 현장에서 체포된다. 그리고 공판 중 그녀가 한 말은 역사에 남는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

이른바 김부남 살인 사건이었다.


1월은 한국 여성 잔혹사에서 남다른 달일 것이다. 1992년 1월에는 의붓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성폭행을 당해 왔던 여대생이 그 남자친구와 함께 ‘이년이 바람이 났다’고 날뛰던 의붓아버지를 죽이는 일이 일어났었다. 1989년 1월 20일에는 식당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마주친 남자가 강제로 키스를 시도하자 그 혀를 물었다는 이유로 기소됐던 여성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그런데 그건 2심 판결이었다 1심 판결은 여자의 상해 행위를 인정, 6개월의 징역과 1년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것이다. 도대체 1심 판사는 그 상황에서 혀가 아닌 코를 물어야 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혀가 잘리도록 물어뜯은 것은 심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김부남 사건은 이 두 사건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 양의 선처를 요구하는 시민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이단옆차기와 함께 선보이는 송강호의 대사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를 들먹일 것도 없이 강간대국으로 그때나 지금이나 그 타이틀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대한민국의 빙산의 일각을 드러낸 이 사건에서, 김부남은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이라는 최종 판결을 받는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의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가던 나는 라디오에서 이 뉴스를 들었다. 그때 비분강개하던 택시 기사 아저씨의 멘트는 그 취중에서도 꽤 선연하게 남아 있다.

“그런 개새끼는 죽어도 싸지. 미친 놈. 아홉 살짜리한테 어떻게 그 짓을 해. 들어가기나 하면 말도 안 해.”

나도 그 말에 동의하면서 함께 욕지거리를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들어가면’, 즉 그 정도의 나이의 여자였다면 그 범죄의 중함이 좀 덜해지는 것이었을까. 택시 기사의 말 뜻이야 물론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것이고, 내가 동조한 것도 그와 비슷했겠으나 오늘 덜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행여 그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관대함(?)이다.


김부남 사건 1년 전, 느닷없이 들이닥친 불한당이 옴짝달싹 못하게 해 놓고 들이미는 혀를 깨물었던 여자에게 유죄가 선고(1심이었을망정)되었던 나라에서 가능했음직한. 룸싸롱이나 단란주점에서는 매일같이 ‘초이스’가 이루어지며, 옆에 앉은 여자의 몸을 만지고 주무르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노래방에 가도 두당 몇 만원이면 블루스를 추고 ‘놀아 줄’ 도우미를 찾는 것이 당연한 나라에 살면서 우리는 조금은 긴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김부남이 가련했던 것은 물론 그녀가 어려서 그런 일을 당하고 그 후 수십 년을 악몽 속에서 살았다는 점에도 있지만, 그녀가 나이 스물 아니 마흔 아니 쉰에 그런 일을 당했더라도 그 악몽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피해자는 어떤 색마의 비정상적인 기질의 발동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을 대상화하고, 그 대상화를 즐기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남의 아픔을 무시하거나 자신이 즐거우면 남도 즐거우리라는 착각하는 우리들에 의해서도 배태되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하명중은 2009년 한국일보에 쓴 글에서 김부남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그는 김부남의 삶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고, 그녀에게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하지만 그녀는 대화를 나눌 상태가 못되었고, 주치의도 그를 만류하여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성폭력을 당한 뒤 버려진 야생 소녀를 다룬 미국 영화 <넬>의 촬영팀에 합류했는데 소녀를 돕는 의사 역을 맡았던 리암 니슨이 그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당신 나라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들 날이 올 거요.”

귀국 후 하명중은 간신히 주치의의 허락을 받고 김부남을 만났다고 했다. 내내 무표정하던 그녀는 아들 얘기에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고 한다.

“어저께 축구를 했는데 아들이 멋진 골을 넣었어요. 정말 멋진 골이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고 했다. 그 웃음이 진실로 보고 싶다. 얼마나, 얼마나 밝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얼마나 오랜만에 그 두터운 암울함을 비집고 나온 웃음이었을까.


1991년 한 여자가 짐승을 죽였다. 하지만 그 짐승은 짐승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빚어낼 수 있는, 빚어내고 있는 사람의 형상 가운데 하나였다.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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