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교육 현실 적나라하게 드러내 호평받는 '이 드라마'

조회수 2020. 1. 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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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야 한다."
“양심고백. 우리 중 누군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야만 한다.”

tvN 월화 드라마 <블랙독>의 대치고 교장 변성주(김홍파)는 심화반 부활을 선언했다. 이미 3년 전에 폐지한 정책이었지만, 추락하는 학교의 위상 앞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3학년 부장 송영태(박지환)는 ‘상위권 애들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냐’며 강하게 주장했다. 창의체험부장 한재희(우미화)는 다른 학교들도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며 거들었다. 교무부장 문수호(정해균)까지 동의하고 나서자 송영태는 기세등등해졌다.


‘이 구역의 미친개’를 자처하는 진학부 부장 박성순(라미란)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노골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심화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냈지만, 중론을 뒤집긴 역부족이었다. 뾰족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학부도 대입 실적이 나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이카로스(Icaros)’라는 이름의 심화반이 만들어졌다. 교육청은 ‘특별관리 동아리’라는 우회로를 제시했다.  


송영태는 심화반 담당 선생님으로 고하늘(서현진)을 지목했다. 3학년부에도 속해 있지만, 심리적으로 진학부에 좀 더 가까운 고하늘에게 어려운 선택지가 주어진 셈이었다. 단순히 소속감을 넘어 교육관 차원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1년짜리 계약직’ 신분이라는 처지가 걸렸다. 고하늘에겐 학교에서 살아남는 것, 다시 말해 정교사가 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려면 심화반을 맡아 제대로 된 실적을 내야 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고심하던 고하늘은 송 부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에 앞서 불편한 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체 교사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기 전, 고하늘은 진학부 선생님들을 불러 세웠다. 양심고백을 하기 위해서였다. 고하늘은 학생들의 개별 능력이 아니라 학교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한국대학교 입학사정관(백은혜)의 말을 전했다. 학교 자체의 시스템이 후지고 교사들의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었다. 

고하늘은 입학사정관의 지적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합격생의 입시 자료를 살피며 고심을 거듭한 끝에 진로부 윤여화(예수정) 선생님의 추천서에서 해답을 찾았다. 학생부 종합평가(학종)에서 교사 추천서는 큰 영향이 없다는 다른 선생님들의 생각과 달리 해당 학생의 고등학교 3년 생활을 애정 어린 눈으로 꼼꼼히 살펴본 교사의 진솔한 이야기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교사들의 애정과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미였다.


더불어 고하늘은 대치고 내에서 행해지는 선행학습의 문제점도 함께 제기했다. 윤여화 선생님의 추천서에는 해당 학생의 성적이 갑자기 떨어졌던 이유가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시험 때문이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이 강조되면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점차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고하늘의 말은 뼈아팠다. 현재의 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지금 왜 하는 겁니까?” (박성순)

“누군가는 말해야 할 거 같아서요. 심화반을 만들고 이것저것 하기 전에 지금 더 중요한 게 뭘까. 누군가는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고하늘)

고하늘의 이야기는 당연히 불편한 이야기였다. 자칫 ‘내부 총질’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도 진학부는 고하늘의 양심고백을 묵살하지 않았다. 덮어버리고 쉬쉬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할 것 같았다"는 고하늘을 힐난하지 않았다. 더구나 진학부에는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사로서의 자부심을 지닌 박성순이 있었다. 그는 곧장 교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고하늘이 지적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함께 살펴볼 것을 요청했다. 공론화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생님들의 생각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전체 회의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박성순이 대치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건 학생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 및 교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 말하자 선생님들은 당장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부는 일어서서 항의하기도 했다. 박성순은 선생님들의 업무량과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면서 비난할 의도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자는 취지라 설명했다. 

“심화반이든 뭐든 활동하고 나면 애들 한 명 한 명 관찰하고 생기부에 그 과정까지 써주는 것. 생기부나 추천서 쓰기 전에 혹시 애들에게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관심 있게 봐주고 물어봐 주는 것. 시험 문제 낼 때도 학원 안 다니고 집 어려운 애들도 충분히 풀 수 있을까 생각하고 내는 것.”

자성의 목소리가 뼈아팠던 것일까. 아픈 곳을 찔린 교사들은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냐’며 언성을 높였다. 전체 회의는 아수라장이 됐다. 힘겹게 자리를 지키던 박성순은 눈을 질끈 감고 “우리 애들이잖아요!”라며 소리쳤다. 변화를 촉구하는 박성순의 용기 있는 외침,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잠시나마 숙연해졌다. 학생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학교를 바꿔보려는 진학부의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단시간에 변화를 끌어내긴 어려운 일이다.


이제 막 학교라는 사회에 발을 내딛은 고하늘은 매일마다 좌충우돌이다. 온통 불합리한 것 투성이라서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고하늘은 선행학습을 한 ‘이카로스’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출제된 시험 문제를 두고 출제자인 하수현(허태희)에게 곧장 달려가 항의했다. 학교에 적응을 끝내고 불합리를 어느 정도 참아내는 법을 익힌 도연우는 “학교란 데가 원래 이 모양이에요?”라고 들이받는 고하늘이 걱정스럽다. 어찌됐든 고하늘은 1년짜리 계약직이 아닌가. 


<블랙독>은 고하늘의 눈을 통해 우리 교육이 처해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고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찾아낸 고하늘과 그 의견을 받아들여 공론화한 박성순, 진정성 있는 두 사람의 에너지가 학교를 바꿀 수 있을까. <블랙독>을 보다 보면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학교판 ‘미생’ 고하늘을 응원하게 된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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