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법 통과를 보며 노무현에게 진 빚을 떠올렸다

조회수 2020. 1. 1.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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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출처: ⓒ연합뉴스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공수처법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억압적인 특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즉,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곧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력 간의 상호 견제와 협의라는 복잡한 관계를 제도적으로 구축해 나간 역사와도 같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주체가 있었다. 다름 아닌 검찰 조직이다. 대한민국의 검찰에게는 수사와 기소에 관련된 대다수의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또한 검찰 조직은 이러한 권한을 활용해 자신들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회피하고 좌절 시켜 왔다.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만 해도 이를 법제화하는 데 23년이 소요됐다. 


대한민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국들은 일찌감치 수사권 및 기소독점의 폐해를 인지하고 검찰 조직의 권한을 지속해서 축소해왔다. 이는 각국의 민주주의 실현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검사동일체의 실질적 폐지 및 대배심제(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해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배심제의 한 종류)를 통한 원천적 견제, 형사소송법의 끊임없는 개정 등을 활용해 꾸준히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의 수단을 창출해왔다. 반면, 대한민국은 형식적 민주주의를 비교적 이른 시일 내에 이뤘지만, 이러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달성은 유독 늦었다.

출처: ⓒ연합뉴스

물론, 공수처가 검찰개혁 및 검찰 권력에 대한 유일하고도 올바른 견제 수단이라 단정하긴 어렵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대배심제를 활용하는 곳도 있으며, 검찰의 층위를 나눠 검찰끼리 상호 견제가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검찰 조직의 견제 방안이 법률적으로 마련돼 있는 국가들이고,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한 유일한 기관을 견제해야만 하는 필요성이 존재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공수처는 권력자에게 또 하나의 칼이 될 뿐이라는 지적도 당연히 새겨들을 만 하다. 그러나 공수처와 검찰이 병존할 경우 상호 견제라도 가능하다. 공수처가 없던 시절의 검찰은 완전무결하고 정의롭던 사법의 수호자만은 아니었다. MB 정권도, 박근혜 정권도 검찰을 입맛대로 길들여 활용했다. 오히려 검찰이 청와대 턱밑까지 칼을 들이대도 피의사실 공표 정도나 문제로 삼지 대통령이 직접 검찰총장에게 메시지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불간섭으로 일관하는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유일하다.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만약 공수처의 부작용이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면 이미 몇 번이나 ‘권력의 칼’이 돼 본 경험이 있는 검찰의 독점적 권력을 그대로 놓아두고 검찰 스스로의 자정과 개혁을 바라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요원한 일일 것이다. 서두에도 말했듯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독점한 자는 절대로 그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며, 내려놓지 않기 위해 억압적으로 변질한다.

결국 공수처의 도입은 그 한 걸음을 이제 겨우 떼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일각의 지적대로 우리가 조금이라도 경계를 게을리하는 순간 공수처 역시 권력의 칼이 될 수도 있다. 상호 견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권력자가 선택할 수 있는 칼의 종류가 하나둘씩 늘어난다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므로 공수처의 도입에 우리는 무조건 환호할 수는 없다.


결국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때문에 모든 권력의 최종 견제는 국민 스스로가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견제당하는 제도 권력이 늘어날수록, 결국 시민 개개인의 책임도 비록 작지만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사실 생전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시민의 힘’을 강조했던 것도 어쩌면 그의 의지 속에 이러한 혜안이 들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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