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자살설'은 사실일까?

조회수 2019. 12. 5. 1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일부 작가들의 상상에 불과하다

제가 항상 강조하듯이 역사는 진화하는 과학입니다.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조금씩 진화하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여기에 정리하는 이야기도 오늘은 사실이지만 내일 다른 증거가 발견되면 오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증거도 없는 상상 속의 주장이 사실처럼 호도되어서는 안됩니다.


충무공의 자살설은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정황상의 주장일 뿐입니다. 저도 선조의 무능력에는 의견을 같이 하지만 선조의 성품과 충무공의 자살설을 연결시키는 것은 전사를 모르는 일부 작가들의 상상에 불과합니다.

'충무공 자살설'을 가만 들여다보면 이러저러 해서 '충무공이 자살을 했다'가 아니라, '충무공이 자살을 했는데 이러 저러 했을 것이다'라는 주장입니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될 겁니다.

1. 갑옷을 일부러 입지 않았다.
입었다면 생존하셨을 것이다.

갑옷을 입었다면 생존하셨을 것인데 일부러 입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나오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근거리 조총탄은 치명타이기 때문입니다.


갑옷을 입든 안입든 근거리에서의 조총은 상당한 정확도와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굳이 전국시대 당시 20kg이 넘는 무거운 갑옷을 입은 사무라이들이 숱하게 조총에 맞아 쓰러진 것은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일반적인 조총일 경우 200m 이상의 거리라면 사람을 살상하는 능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조준한 목표를 맞춰 신체상의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100m 이내이며, 숙련된 사격자일 경우 100m 이내라면 10발 중 8~9발은 사람의 상반신에 명중시킬 수 있었습니다. 


실제 구경 9~16mm급에 3~6몬메(11.25~22.5g) 탄환을 사용한 일본의 표준형 조총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30m정도에서는 확인 사살이 가능한 수준이고, 50m부터는 대략 표적을 맞추긴 해도 탄착점이 조금 분산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일본의 조총 자체도 그렇고 운용체계도 그렇고 오히려 유럽대륙보다 더 뛰어나게 개량되었습니다. 약점이라면 화약기술이 낙후되어서 대구경 조총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갑옷이 대단한 방호력을 가진 것처럼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근거리에서는 조총은 물론이고 화살에도 뚫립니다.

2. 제독이 전면에 나서는 일은 없다. 일부러 노출시켰다.

전사를 모르는 초보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임란뿐만 아니라 서양의 해전에서도 제독이 침몰하는 기함을 버리고 다른 배로 옮겨타서 계속 전투를 하는 전사가 많습니다.


일본 해군은 근접해서 조총을 쏘거나 배에 올라 육박전을 벌이는 전술이지만 조선 해군은 원거리 화력전이 전술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난전이 벌어졌을 때에는 아래와 같이 충무공의 전선도 일선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은 난전이었습니다. 마치 노량해전이 도망가는 일본 해군을 일방적으로 두들긴 전투처럼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대단한 난전이었습니다.


세계 4대 해전으로 알려진 한산도 대첩의 전과입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의 전과입니다. 일본 해군의 규모가 짐작이 될 겁니다. 당시 맞붙었던 일본군의 함대 전력은 우리 해군이 전멸했던 칠천량 전투 다음으로 큰 대함대입니다.

명량해전으로 대역전을 시켰다고 해도, 칠천량해전에서 전멸당한 수군을 긁어모은 지 불과 16개월 만에 벌인 전투입니다. 조선 해군은 불과 83척이었고 (싸울 의지가 없었던) 명나라 해군 63척을 합쳐도 146척에 불과했습니다.


대난전이 벌어졌고 위에도 나오듯이 충무공 외에 많은 고위 지휘관이 전사하셨습니다. 명나라도 해군 부총병이 전사했고 심지어 진린 제독이 포위당해 죽을 뻔한 것을 구해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런 중과부적의 난전을 벌였기 때문에 충무공의 해전 기록 사상 처음으로 주요 지휘관이 전사하고 가장 많은 수군이 사상당했습니다.

3. 사실은 은둔한 것이다. 살아계셨다.

이건 논의할 가치도 없는 주장입니다. 충무공의 장사를 지낸 기록도 있습니다. 뭐 일본 만화가들도 오다 노부나가가 살아서 중국대륙을 통일했다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니까 이해는 됩니다만.

4. 충무공이 죽음을 각오하고 일부러 위험을 무릅썼다.

이건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하려고 접근전으로 난전을 벌인 것이 아닙니다. 노량해전 이전의 대규모 정식 해전은 주로 접근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일본군을 끌여들여 화력전으로 격멸시켰고 그래서 겨우 3~4명의 부상밖에 안나온 전투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노량해전은 성격자체가 달랐습니다. 일본 해군(그리고 육군)이 조선 해군을 상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퇴하는 전투였습니다.

임란당시 조선 해군의 전선은 화력전을 위한 전함이라고 하면 일본 해군은 기동을 위한 순양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해전마다 도망가는 일본군을 쫓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충무공의 표현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였습니다.


전쟁을 끝내고 도망가려는 적에게 평소와 같이 원거리 화력전을 펼치면 어떻게 될까요? 막히면 죽는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달려드는 적을 예전의 전술대로 뒤로 물러나면서 원거리 포격전을 한다면, 당연히 일본군이 바라던 대로 퇴로를 터주는 것이 됩니다. 그들을 잡으려면 길목을 막아서고 접근해서 난전을 펼칠 수 밖에 없는 해전이었습니다. 


명나라 제독도 목숨을 걸고 난전을 벌이는 판에 복수심에 불타는 조선 제독은 멀리서 신호깃발만 올릴까요? 당연히 죽음을 각오하고 난전판에 뛰어들었고 모든 지휘관이 그랬기에 임진왜란 당시 일반 군졸의 희생에 비해 지휘관 전사 비율이 턱없이 높았던 이유입니다. 


아마도 명량해전에서와 같이, 충무공이 몹시 병사들을 몰아쳤을 겁니다. 충무공께서 갑옷을 입지 않은 자료가 발견되더라도 그것은 자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갑옷을 벗고 마지막 해전에서 목숨을 내놓으시겠다는 결의를 부하장병 그리고 명군에게 분명하게 각인시켰다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요? 

5. 그래도 자살이 맞다?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넬슨제독과 같이 제독이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는 경우는 너무나도 흔합니다. 무엇보다도 그 어떤 지휘관도 승전인지 패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살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선조에 대한 반감(?)보다 왜군에 대한 복수심이 훨씬 더 큰 충무공께서 승패도 결정나지 않은 전투에서, 그것도 함선이나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적을 상대하면서 자살을 시도할까요?

* 외부 필진 우에스기 님의 기고 글입니다.

<직썰 추천기사>

‘민식이법은 악법’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김태호 PD와 유재석, 떼어놓으면 안 되는 이유

직썰을 앱으로 만나세요.
(안드로이드 버전)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