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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의 씁쓸한 해피엔딩, 향미는 왜…

“동백이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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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동백이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한 편의 따뜻하고 구수한 전래동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속이 꽉 찬 해피엔딩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시청자들은 인생 최고의 드라마였다며 찬사를 보냈다. “다들 연말에 상 받을 준비해유~”라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6.3%로 시작했던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마지막 회에서 무려 23.8%를 찍었다. 지난 21일 종영한 KBS2 <동백꽃 필 무렵> 이야기다.


동백(공효진)은 향미의 500cc 맥주잔으로 진짜 ‘까불이’인 흥식(이규성)을 잡았다. 사랑하는 용식(강하늘)과 마침내 결혼했고, 시어머니 덕순(고두심)의 지지와 응원을 얻는 데 성공했다. 엄마 정숙(이정은)은 건강을 회복했고, 두 사람은 서로를 용서했다. 전 남편 종렬(김지석)은 양육비를 부담하겠다며 통장을 내밀었고, 그 덕인지 필구(김강훈)는 메이저리그를 누비게 됐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다뤘던 <동백꽃 필 무렵>은 분명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 근래 등장했던 대중성 있는 드라마 가운데 가장 진취적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부모도 남편도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동백의 입장을 대변했고, 향미(손담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직업여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굴절되고 비뚤어진 시선을 일정 부분 바로잡았다. 


또, 현실의 가부장제 세계에서 부정적으로 비치곤 했던 여성의 연대를 성사시켰다. 옹산의 게장골목을 중심으로 공고히 형성된 여성 공동체(옹젠져스)는 굳건히 뭉쳐있고,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자체적으로 대응한다. 서로서로 단속하고 보호한다. 까불이로부터 위협받는 동백을 위해 옹산의 여자들이 보여준 연대는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동백 씨는 내가 지킬 줄 알았는데 동백 씨는 동백 씨가 지키는 거였다.”

그리하여 <동백꽃 필 무렵>은 기존의 드라마들이 답습해 왔던 여자 주인공을 민폐 캐릭터로 만드는 우를 반복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에 빠졌던 동백이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멈춰 위기에서 벗어난 후 무사히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어려움에 처한 여자 주인공을 멋지게 구해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그림을 과감히 탈피한 것이다.


또, 경찰이 아닌, 용식이 아닌, 동백이 자신을 살해하려 했던 까불이를 때려잡는 호쾌한 모습을 통해 쐐기를 박았다. 이는 동백을, 더 나아가 여성을 더 이상 피해자의 위치에 묶어두는 기존의 고루한 서사를 뛰어넘었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애초에 용식이 동백을 (좋아하기 이전에) ‘존경한다’고 말한 대목에서 <동백꽃 필 무렵>이 꾀했던 흥미로운 전복은 예상됐다. 


그러나 초반의 신선함이 지속되지 못하고, 중반 이후 ‘가족주의’가 모든 이야기의 동력으로 자리 잡은 점은 실망스러웠다. 모성애와 부성애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감동을 넘어 신파로 이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덕순의 모성애와 정숙의 모성애, 종렬의 뒤늦은 부성애 급기야 흥식의 아빠의 부성애까지 눈물겹게 그려졌다. 연쇄살인범인 아들의 살인 행각을 도왔던 아빠마저 동정해야 하는 걸까.

옹산이라는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옹산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공동체로 보이지만, 실제로 매우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곤란하다. 그 안에 편입되기 전까지는 외부인에 대해 철저한 배제가 이뤄지지 않았던가. 옹산에 발을 디딘 동백은 6년 이상 왕따를 당해야 했다. 게다가 향미에겐 편입의 여지가 아예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백은 옹산 토박이 용식과 가족을 이루면서 비로소 옹산에 완벽히 스며들 수 있었다. 그러나 향미에겐 그럴 기회가 없었다. 동백이 살아남고, 향미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 때문 아닐까. 흥식이 옹산 내에서 제 본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옹산은 여전히 가족 공동체에서 벗어난 외부인에게 차가운 땅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려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순간 또 하나의 차별과 배제를 낳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기적같이 찾아온 동백의 행복에 만족하며 드라마를 떠나보낼 수도 있겠지만, 자꾸만 향미의 죽음이 입안의 모래마냥 계속 씹힌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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