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도 열심히 살면 서울에 땅 사나요?"

조회수 2019. 8. 25.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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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유튜버인 ‘보람튜브’의 가족회사가 강남에 70억짜리 건물을 매입했다. 많은 사람이 박탈감을 쏟아냈다. 착실히 일하며 받는 월수입으로 요즘 같은 시대에 강남에 건물을 구매한다는 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보람튜브를 향해 사람들이 느낀 박탈감은 열심히 노동해도 더 나은 삶이 오지 않는다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한국은 1970년대 토지 개발 붐이 일고 이제껏 없던 고성장을 찍었다. 그런데 1997년 IMF가 경제를 휩쓸었고 성장은 고꾸라졌다.

여기에 서울에 사는 한 가족이 있다. 그의 부모는 경제 호황기에 토지 개발의 붐을 타고 중소 건설업체를 운영했다. 주인공은 중산층의 상징과도 같았던 ‘아파트 키즈’로 자랐다. 이 가족은 IMF 이후 올림픽 기지촌 아파트에서 서울의 한 월세방으로 밀려난다. 가족의 처지가 바뀌면서 부모와 자식 사이엔 부동산을 대하는 차이가 생겼다.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수도꼭지에 물 틀어놓은 듯” 아파트 가격이 오르던 시절

헐값으로 샀던 아파트 한 채는 그의 부모에게 또 다른 부를 선물했다. 당시 토지 개발 붐과 함께 잠실 지구 개발 사업까지. 한국의 호황기에 부동산은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부동산은 내 자식 세대에게 더 나은 것을 물려줄 수 있다는 희망도 생기게 했다. 적어도 70년대까지는 그랬다.

출처: ⓒ영화 <버블패밀리> 스틸컷

다큐멘터리는 89년생인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IMF와 서울의 변화를 청년의 시선으로 옮긴다. 그에게 부동산은 어떨까. 그는 독립하기 위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방을 구했다.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가 왔고 그건 부동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자가 있는 방을 구해도 값이 싸다면 다행이었다. <나혼자산다>에서 방을 구하러 다니는 충재 씨가 그랬듯. 우리에게 방을 구하러 부동산에 가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월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 살아야 한다. 


<버블패밀리> 속 ‘부동산’은 서로 다른 시기의 한국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의 부모가 살던 고성장 시대의 한국은 성장만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성장을 위해 다른 것은 제쳐두는 형태였다. 잠실 개발을 위해 한강을 허물던 시대. 하나의 성장을 위해 모든 구성원이 발 벗고 나섰다. 그러는 바람에 부모의 신혼살림이었던 아파트는 “수도꼭지에 물 틀어놓은 것“ 마냥 가격이 올랐다. 그의 부모가 방문에 ‘부동산 계약’이라고 달아놓고 그것만을 살길이라고 말한 것처럼. 성장이 아닌 다른 길은 없었다. 시대는 성장의 분위기를 탔다. 그 속에서 부동산도 신분 상승의 상징이 돼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지금도 유효할까.

뭐든 될 것 같았던 그때의 버블을 넘어

출처: ⓒ영화 <버블패밀리> 스틸컷

IMF를 지나며 더 큰 건설업체만이 살아남았다. 감독의 부모가 운영하던 건설업체도 망했다. 부모 세대는 고성장으로부터 밀려 나왔다. 우리도 세트 상품처럼 같이 밀려 나왔다. 부동산은 이미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몫이 됐다. 그들은 부동산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부를 견고히 했다. 그때의 성장엔 모두가 참여할 기회가 열려 있었다. 지금의 부동산은 이미 부를 불린 사람들을 통해 견고해졌다. 평범한 월 소득으로는 소유할 수 없는 개념이 됐다. 부동산은 우리 세대에겐 상대적 박탈감의 상징이다.


감독이 말한 거품은 뭐였나. 우리는 고성장으로부터 온 성장을 전리품 취급했다. 서울과 한강은 오랫동안 한국의 자부심이었다. 모두가 함께 밤낮없이 일해 일으켜 세웠다는 과거였다. 경제 성장은 마땅한 보상이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의심해본 적 없었다. 궁극적으로 70년대의 성장은 빛을 다했다. 우리는 이제 열심히 노동해서 중산층이 될 수 없는 시대를 만났다. 감독이 말한 버블은 그런데도 다시 중산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성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는 바람에 성장으로부터 밀려 나온 자신을 제대로 위로할 수 없었다.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건 ‘버블패밀리’가 아닌 ‘버블코리아’였다. 


감독이 본 부모의 방처럼 답은 우리 사회의 내부에 있다. 70년대를 제대로 보내주기 위해 주인공은 부모가 힘을 전력한 시대를 이해한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의 속을 들여다본다. 아니, 부모가 사는 방을 들여다본다. 


카메라는 고급 자개장이 빠진 빈자리를 오랫동안 가만히 담는다. 그의 부모는 아파트에서 사용하던 자개장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그건 부모에겐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미련이었다. 화려하던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가구였다. 감독은 자개장이 빠진 빈자리를 박탈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카메라는 빈 곳을 훑으며 박탈감을 느끼는 대신 위로를 하는 듯했다. 카메라는 그의 부모를 향하다 버블이 빠져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알았다. 지난 시절을 향한 위로가 가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장한다.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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