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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폭로' 최영미 시인이 출판사를 차린 씁쓸한 이유

조회수 2019. 8. 20.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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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시 '괴물'을 통해 문단 내 성추행을 고발했다.
▲ 최영미의 여섯 번째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출판사, 2019)

시인 최영미가 창비시선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펴낸 것은 1994년 3월이었다. 두 달 뒤에 내가 산 책은 8쇄였는데 그의 시집은 2016년까지 52쇄를 찍었다고 한다. ‘초판 기천 부’도 다 팔지 못한다는 시집을 52쇄까지 찍었으니 그가 주목받은 시인이었음은 분명하다.


그가 첫 시집을 낸 1994년 3월은 내가 4년 반 동안의 해직 생활을 거쳐 경북 북부의 시골 학교에 복직한 때였다. 이태 남짓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던 시기여서 그랬던지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제대로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중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유일하게 남은 기억은 표제 시 가운데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이라는 시구 정도다. 그것도 나는 ‘운동’을 ‘혁명’으로 ‘운동가’를 ‘혁명가요’로 바꾸어 기억하고 있었다. 글쎄, 대학 운동권 출신으로 비합법 조직의 사회주의 원전 번역팀에 들어가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동번역했다는 그가 ‘변혁’을 말하는 삐딱한 태도가 못마땅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30년 넘게 중고생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걸 업으로 삼았지만, 사실 시를 잘 모르며 어쩌다 읽는 시도 읽을 때만 반짝 맘에 두는 게 고작이다. 내가 그 뒤 최영미나 그의 시집 따위는 잊어버리고 살았던 이유다.


최영미를 다시 기억한 것은 2016년 그가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면서다. 베스트셀러 시집을 낸 시인이 ‘연간 소득이 1천 300만 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빈곤층에게 주는 생활보조금 신청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이었다. 


이 땅이 시를 쓰는 것만으로 먹고 살 수 없는 사회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지만, 시인이 국가의 부조 대상이 된 빈곤층으로 떨어져 살아간다는 사실 앞에서 독자들은 일종의 열패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게 국민소득 3만 달러를 향해 치닫고 있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으스대는 이 나라의 현주소였으니까 말이다. 


독자는 베스트셀러 시인이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그들이 시를 발표할 지면을 어떻게 얻는지, 그리고 발표한 시가 어떻게 평단의 호응을 얻고 또 어떤 방식으로 출판에 이르게 되는지 무지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방식으로 인맥을 형성하고 그 ‘네트워크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가를 알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꿈의 페달을 밟고>(1998), <돼지들에게>(2005), <도착하지 않은 삶>(2009), <이미 뜨거운 것들>(2013) 등 몇 권의 시집을 펴낸 등단 20년이 넘은 50대 중반의 유명 시인이 극빈층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확인하면서 독자들은 머리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최영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 1994)

독자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시인이 살아온 삶의 얼개를 깨달은 것은 이태 뒤인 2018년이었을 것이다. 시인이 ‘괴물’(<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이라는 시로 문단 내 성추행을 고발하고 방송에도 출연해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의 고발과 폭로는 비슷한 시기에 터져 나온 검찰과 연극·영화계의 성희롱·성폭행 폭로로 촉발된 미투 운동으로 상승하며 전개됐고 믿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문단을 비롯한 문화계의 저명인사들이 연루된 이 문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지만, 서서히 잊히어 갔다.

▲ 시인 최영미

올 6월에 최영미의 새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의 발간 소식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시 그의 존재를 재확인했다. 최영미의 새 시집은 그간 그의 시집을 펴내 온 창비도, 실천문학도, 문학동네도 아닌 이미출판사라는 낯선 곳이었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여러 해 물망에 올랐던 문단의 원로 시인 고은을 직격한 시 ‘괴물’을 발표하면서부터 그는 자신이 이전보다 더 어렵게 살게 될 걸 알았을 것이다. 1심에서는 이겼지만, 그는 그 원로 시인이 자신과 언론 등에 제기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치르고 있다. 


그가 시집을 내기 위해서 접촉한 출판사는 모두 그에게 퇴짜를 놓거나 침묵으로 답을 미뤘다. 그는 시집을 내기 위해 ‘출판사 등록’이라는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미투로 금이 가게 하긴 했지만, 이 나라 문화계 네트워크 커뮤니티의 견고한 성채와 그 권력은 굳건하다는 사실은 증빙됐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추고도 메이저 출판 자본에 기댄 문단 권력이 문학판을 좌지우지하는 전근대적 시스템은 건재하다. 작품 발표 지면을 무기 삼은 권력 앞에서 시인과 작가들이 숨을 죽이는 침묵의 카르텔도 여전하다. 


나는 시인의 시집 발간 소식을 듣고 서가 한쪽에 꽂혀 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찾았다. 시집을 새롭게 일별하면서, 서른아홉 교사가 흘려보냈던 한 시인의 언어는 25년 뒤에 새롭게 다가옴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 서툰 감상은 따로 적지 않는다. 


내가 산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은 2019년 7월에 나온 초판 2쇄다. 6월에 낸 시집은 7월 중순께 4쇄에 들어갔고, 모두 8천 부쯤 팔렸다고 한다. 지금은 8월 중순, 그의 시집은 아마 1만 부는 너끈히 넘었으리라.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의 외롭고 곤궁한 삶과 그 속에서도 쉽게 타협하지 않는 시인의 결기, 그러나 굳이 그걸 중뿔나게 표시할 필요가 없다는 처연한 자세 같은 걸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그가 등단 직후인 1993년에 발표한 시 ‘등단 소감’은 25년 경력의 저명 시인이었던 그의 삶이 의도적 고립의 결과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내가 정말 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 신문 월평(月評) 스크랩하며 /비평가 한마디에 죽고 사는

(중략)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 / 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

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 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

시집의 첫 시편은 ‘밥을 지으며’, 그의 일상을 노래한 시인데 마치 그의 삶을 물끄러미 조감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대강 대충 살아왔’지만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다는 그의 삶 말이다. 그것도 ‘목숨을 걸고 뭘 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제 계산이 맞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밥물은 대강 부어요 / 쌀 위에 국자가 잠길락말락 / 물을 붓고 버튼을 눌러요

전기밥솥의 눈금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 밥물은 대충 부어요. 되든 질든

되는대로 / 대강, 대충 살아왔어요 / 대충 사는 것도 힘들었어요 / 전쟁만큼 힘들었어요

목숨을 걸고 뭘 하지는 않았어요. / (왜 그래야지요?) / 서른다섯이 지나 / 제 계산이 맞은 적은 한 번도 없답니다."

노컷뉴스와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3년 전부터 거의 매일 도시락을 싸서 요양병원에 입원한 모친을 찾는 게 일상이라 했다. 아기가 된 어머니를 씻기고 몸에서 나온 것을 받아내는 생활이 시 ‘간병일기’가 됐다.


‘전쟁만큼 힘들었다’는 그의 삶은 그러나 그 자신이 선택한 고립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자신의 무계획한 삶의 결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문단에 만연한 성폭력을 고발하고 그로 말미암아 강고한 문단 권력과 싸우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문단 권력과 그 안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재고 살폈다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터이니 말이다. 


시집에 실린 마흔여덟 편의 시는 그런 시인의 시야에 포획된 벌거벗은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삶의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준다. 그리 어렵지도, 그리 쉽지도 않은 시편을 읽는 이들을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뒤표지에 실린 문정희 시인의 추천사는 최영미 시편의 성격을 가장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최영미의 시는 벌거벗은 검투사의 창처럼 위험하다. 계산이나 사교나 속도에 길들지 않은 호흡으로 위선이 숨을 곳을 차단한다. 예측불허의 표현과 자유로운 사고의 좌충우돌 속에 온몸을 던져 쓴 새 시집을 펼친다. 자신을 치열하게 드러낸 시와 외로운 삶의 우박들이 시린 상처처럼 솟구친다.”

최영미 시인의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은 한 시인의 개인시집이기 이전에 출간을 전후한 서사를 통해 오늘의 우리 사회와 문화계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종의 문학적 미니어처다. 베스트셀러 시인이 정부 부조의 대상이 되고 미투 운동에 동참해 힘들게 싸우는 것 등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전근대적 문단 시스템에 짓눌린 한 시인의 문학적 연대기를 재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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