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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일본과의 상황을 ‘관제 민족주의’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데이터로 증명되는 ‘관제 민족주의’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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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일 갈등에서 한국의 반응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건 불매운동이다. 그렇다면 불매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룹은 누구일까? 얼핏 생각하면 민족주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중장년층 이상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조사 결과는 사뭇 달랐다. 7월 31일 조사에 의하면 전 세대 중 비교적 탈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20대의 불매운동 참여율 및 향후 참여 의사가 가장 높았다.** 


**리얼미터의 그 이전과 이후 조사에서는 20대 < 30대 < 40대 순의 조사 결과가 도출됐으나 모든 세대가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출처ⓒ한국일보

최근 불매운동과 같은 반일 기류를 두고 ‘관제 민족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관제 민족주의린 말 그대로 민족주의적 행위를 정부 및 정치 조직이 앞장서서 조장함을 일컫는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현재의 20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다. (물론 20대 남성이 특히 낮은 것이지만) 대통령 및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낮은 그룹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과연 관제 민족주의로 해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윗세대의 반일의식 표출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관제 민족주의나 반일 종족주의를 주장하는 레토릭은 기본적으로 세대별로 노출되는 사회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본을 대하는 태도 역시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중장년층 이상 세대에서는 대개 한국은 ‘역사적 피해자’, 일본은 ‘역사적 가해자’의 입장에서 한일 갈등에 접근할 수 있지만, 청년층의 경우 대등한 국가 간에 있을 수 없는 결례를 일본이 저질렀다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항의에 ‘No Japan’ 깃발을 철거하는 서울 중구청

출처ⓒ연합뉴스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 관제 민족주의를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중구청의 ‘No Japan’ 깃발 게양이나 서대문구청의 일제 학용품 봉인식과 같은 정치적인 행위들이 주로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소셜미디어 등지에서 갈등 국면을 이용한 일부 정치인의 자기정치 또는 미래 일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큰 비판에 직면하고 좌절됐다. 소셜미디어를 활발히 사용하는 그룹이 청년층에 넓게 분포한다는 사실은 관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 동력까지 청년층에 있음을 뜻한다.


한국일보 보도에서 중앙대 신광영 교수, 성공회대 최진봉 교수께서 각각 지적했던 것처럼 불매 운동에 참여하는 대다수의 청년층은 일본에 대한 광범위한 피해의식이나 트라우마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일 집회와 같은 세력 결집의 행태가 청년층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한일갈등 전후로 유사하게 유지되면서 불매운동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 역시 정부가 적을 설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관제 민족주의와는 다르다.

‘관제 민족주의’ 검색 결과

출처ⓒ구글 캡처

일각에서 비판하는 ‘관제 민족주의’의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 사회의 절반은 더 이상 연단과 마이크 앞에서 갈등을 외치고 부르짖지 않는다. 그 대신 해쉬태그와 리트윗, 좋아요와 같은 공감의 표시가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다. 이러한 ‘조용한 싸움’에 대해 현 상황을 관제 민족주의라 진단한 홍세화 씨와 같은 중장년층 이상의 스피커들은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물론, 민족주의 자체가 어쩌면 낡은 개념이라고 비판하는 방향 자체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의 툴 자체도 시대에 뒤처진 낡은 툴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관제 민족주의니 민족적 열등감이니 하는 소모적 논쟁이야말로 시민사회의 성숙을 뒷걸음치게 하는 요인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정말로 관제이며 열등감과 트라우마에서 발생하는 일들일까. 그렇지 않다면 한국은 정말로 일본과 이제 대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일까. 이 간극을 면밀히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적 게으름에 불과할 것이다.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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