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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꼬집은 ‘이 드라마’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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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꿨습니다. 약자는 보호받고 죄를 짓는 자는 처벌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근무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은 없습니다. 모두에게 정의로운 세상도 없습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어쩌면 다가올 미래에도 그런 세상은 없을 것입니다.”

“힘 있는 자들은 여전히 약자들을 굴복시킬 테고,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지금처럼 남의 것을 빼앗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웃으며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선의로 포장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분명한 것은 이런 세상에서는 단 하루도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움츠러든 어깨를 펼 수 있는 세상, 나의 노력으로 내가 품은 꿈을 이룰 수 세상, 그리고 나 자신과 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저 장태준이 만들겠습니다.”

JTBC 드라마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속 장태준(이정재)의 국회의원 출마 선언문은 사뭇 비장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성민 의원(장진영)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공석이 된 성진시 보궐선거에 공천받은 만큼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대립할 때가 많았지만, 가장 의지하고 신뢰했던 선배였다. 지금의 장태준이 있기까지 버팀목이 돼줬던 은인이기도 했다. 설령, 공적으로 다투더라도 사적으로 서로를 지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지였다.


무엇보다 장태준은 이성민 의원의 죽음에 책임이 있었다. 불법 선거자금(5,000만 원) 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이성민 의원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는데, 거기에는 당시 선거 자금을 끌어왔던 장태준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돼 있었다. 이성민 의원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너는 나보다 강하니까”라며 장태준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했다. 죄책감과 부채 의식은 장태준을 더욱더 강하게 채찍질했다. 

그러나 힘의 격차는 명확했다. 장태준은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송희섭 의원(김갑수)과 싸움을 통해 힘(권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더 뼈저리게 느꼈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고 여긴 장태준은 결단을 내린다. 송희섭 의원을 찾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고, 송 의원이 가득 따라준 술잔을 목구멍에 털어 넣으면서 항복을 선언했다. 어둠을 밝히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애석하게도 송희섭 의원에게 무릎을 꿇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고, 그러자면 삼일회의 총무이자 주진화학의 이창진 대표(유성주)의 마음을 달래줘야 했다. 결국 이창진 대표의 요구사항인 서북시장 재개발을 밀어붙이면서 겨우 기회를 낚아챌 수 있었다. 그런 장태준의 출마선언문이 비장한 건 당연했다. 그러나 과한 비장미에도 감동은 없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에 익숙해져 버린 어둡고 차가운 현실, 정치는 바로 이 차가운 현실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 차가운 어둠 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자 의무입니다.” (5회, 장태준)

이유는 간단했다. 진심이 없었으니까. 경찰을 그만두고 정치에 입문했던 장태준은 당시 아나운서였던 강선영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정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설파한 정치의 목적과 의무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또, 그가 당시 보좌관이었던 이성민 의원을 찾아갔을 때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낯뜨거운 소리 잘도 하네?’라는 말에 딱 한 마디로 대답했다. “진심이니까요.” 


그것이 장태준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 출마선언문에서 장태준의 언어는 비장할지언정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말은 그의 (정치적) 행보와 오버랩 됐다. 장태준의 말은 비루했다. 이성민 의원을 허망하게 보냈으면서도 ‘이번 한 번만...’이라며 타협했다. “네 양심까지 팔아서 그렇게 해야겠냐?”며 책망했던 친구 고석만 보좌관(임원희)을 외면했다. (그리고 고석만은 마티즈 차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서북시장 상인들을 속여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고,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믿고 따랐던 인턴 한도경(김동준)의 마음을 잃었다. 장태준의 조력자인 윤혜원(이엘리야) 비서조차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이라며 비굴하게 스스로를 합리화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장태준이 공천을 받기 위해서였다. 힘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뭘요? 누구를 위해서요?”라는 한도경의 물음에 장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번 눈을 감으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해. 부끄러워.” (9회, 이성민)

장태준은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끝내 쟁취해 내는 영특함을 지녔다. 그러나 더 이상 장태준이라는 인물을 지지하기 어렵다. 물론 그가 송희섭, 조갑영(김홍파) 의원 같은 부패한 정치인들과 힘겨루기에서 이기는 건 제법 통쾌한 일이지만, 그 싸움이 결국 그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적극적인 지지는 어렵다. 장태준이 저들처럼 노회한 정치인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장태준은 매번 ‘이번 한 번만…’을 외칠 것이다. 그러나 그 한 번은 곧 두 번이 될 것이고, 세 번, 네 번으로 늘어날 것이다. 송희섭 의원만 해도 장태준이 부러워하는 힘을 지녔지만, 영일그룹 성 회장을 위시한 삼일회라는 적폐 세력에 꼼짝도 하지 못하는 실정 아닌가. 장태준도 이제 올가미에 걸린 셈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삼일회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거기에 ‘그가 바라봐야 할 사람’(국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말의 낙관을 지닌 채 타락한 장태준이 무엇을 위해 싸워나갈지, 자신이 약속한 ‘이번 한 번만…’을 지켜나가기 위해 얼마나 애쓸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11월에 방영될 시즌2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한편, “끝까지 살아남아서 보좌관님이 틀렸다는 걸 제가 증명할 겁니다”라고 호기롭게 외친 한도경의 각성도 흥미롭다. ‘장태준의 미래가 송희섭이고, 한도경의 미래가 장태준’이라는 불길한 예언이 깨어지길 희망해 본다.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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