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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기자가 말하는 '고유정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조회수 2019. 6. 18.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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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 그리고 가짜뉴스들

제주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일명 ‘고유정 사건’이라 불리는 전 남편 살인 사건입니다. 범죄 수법 자체가 워낙 엽기적이라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매일 언론 보도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독립 언론 제주의소리와 1인 미디어 아이엠피터가 고유정 사건의 문제점을 지역 기자의 눈으로 짚어봤습니다.

현장에 폴리스라인조차 설치하지 않은 경찰

출처: ⓒ제주의소리
▲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열린 고유정 사건 브리핑

고유정 사건이 알려지면서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경찰의 부실 수사 의혹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황당했던 건 경찰이 범죄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경찰은 수사 중에도, 직후에도 살인이 벌어졌던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펜션 주인도 다른 한 편으로는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부부가 퇴직금을 털어 운영 중인 펜션이 한순간에 살해 현장이 되면서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경찰이 강력 범죄가 벌어진 현장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현장 보존은 수사의 기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피해자의 혈흔이 굉장히 빨리 사라졌습니다. 6월 1일 고유정을 긴급 체포해온 이후 주인이 펜션을 청소하면서 범죄 현장이 훼손됐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미 루미놀 검사(혈흔 반응 검사)를 통해 피해자 A씨의 혈흔을 확보했다’며 살인의 증거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식으로 답변했습니다. 경찰은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펜션에 폴리스라인을 치지 않았고 청소를 해도 되냐는 주인의 말에 해도 된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피해자의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드러났지만, 그 혈흔 증거는 고유정이 따로 챙겨갔던 담요에서 나왔습니다. 현장에서 채취된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는 소량의 혈흔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성분을 채취하지 못했습니다. 현장 보존만 제대로 됐어도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었다는 조사 결과는 더욱더 일찍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건 초기부터 이를 취재해온 박성우 제주의소리 기자는 경찰 대처에 대해 “처음에는 실종사고였지만 경찰이 사건에 무게를 뒀더라면 피해자의 시신이 유기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습니다.

제주라서? 쏟아지는 가짜뉴스와 루머들

고유정 시건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유정의 친정 집안이 지역 유지라 수사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고 있다는 가짜뉴스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괸당(친족) 문화로 대표되는 제주 지역사회가 좁은 것은 맞지만, 살인 사건을 그르칠 정도로 경찰이 편파 수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출처: ⓒ제주의소리 화면 캡처
▲ 16일 제주의소리가 보도한 가짜뉴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제주아산렌트카 관련 기사

최근 온라인에서는 고유정의 가족이 운영하는 렌터카 업체라며 특정 회사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고유정의 가족이 사건 이후 업체명을 바꿔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문제의 업체로 지목받은 ‘제주아산렌트카’는 고유정 집안과 관련이 없었습니다. 


아산렌트카 대표 현모 씨는 제주의소리와의 전화에서 “최근에는 회사로 고유정과 관계된 회사냐는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정말 억울하다”며 “우리는 고유정과 관계가 없다. 20년 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고유정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고유정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소식이 많이 퍼졌습니다. 고유정의 전 애인 실종설도 나돌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남성 실종자 중 고유정과 관련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고유정이 화학 전공이라 피해자의 유해에서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도록 했다는 소문도 잘못됐습니다. 고유정은 화학과 출신도 아니며 인천에서 피해자 것이라며 발견된 뼛조각은 ‘동물 뼈’로 밝혀졌습니다. 


재혼한 남편과 사건을 공모했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경찰은 공범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독 취재? 언론의 가십성 어뷰징 기사

출처: ⓒMBN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 6월 9일 MBN은 단독이라며 고유정의 진술을 그대로 보도했다.

6월 9일 종합편성채널(종편) MBN은 ‘단독’이라며 “고유정은 전 남편이 성폭행을 하려 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MBN 단독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를 본 제주 지역 기자들은 황당했습니다. 이미 기자들은 사건 초기부터 고유정이 남편의 성폭행으로 벌어진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고유정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었습니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단편적으로 보도될 경우 유가족과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고유정 사건을 보도하면서 범행 도구인 전기톱을 끄집어내어 사건을 자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를 버젓이 제목으로 달기도 했습니다. 조회 수에 매달려 가십성 보도를 이어간 탓에 사건의 본질은 흐려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언론의 고질병이 이번 사건에서도 이어졌습니다. 

- 유튜브에서 보기

* 외부 필진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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