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통의 꿈은 정말 불가능할까?

조회수 2019. 6. 14. 16: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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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무상교통을 실시한 나라가 적지 않다.

2014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예비후보자(김상곤 전 부총리)의 공약 하나가 정치권을 후끈 달궜다. 그 공약은 ‘단계적 무상 대중교통’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잘못된 인기 영합주의이자 젊은이들을 현혹하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후보자에게 날 선 공격을 가했다. 종편 앵커는 “공짜버스는 허무개그의 소재가 될 것”이라고 비아냥을 놓았다.

▲무상교통에 대한 토론이 진행된 ‘부산지하철 공공성 강화 토론회’. 부산지하철공사 주최

‘무상’은 국가가 베푸는 은전(恩典)이 아니다


언론도 부정적이었다. 보수언론들은 공약을 내건 후보자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고 강펀치를 줄기차게 날려 케이오 승을 거두고야 말겠다는 그런 기세였다. 그들은 이런 말 펀치를 줄기차게 날렸다.


‘무상교통은 꿈같은 이야기’ ‘정치 초년생의 프레임 놀이’ ‘무책임하고 위험한 발상’


민주당 역시 ‘무상’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부 당 중진의원들(김진표 의원 등)은 조건을 제시하는 수식어인 ‘단계적’이라는 단어는 쏙 뺀 채 ‘무상’만을 부각시키며 ‘현실성 없고 실현 불가능한 얘기’라고 깎아내렸다. 결국 김상곤 예비후보자는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낙마했다. 잔뜩 얻어터진 ‘무상교통’도 후보자와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어떤 행위에 대해 요구하는 대가나 보상이 없음. 이것이 ‘무상’의 사전적 의미다. 무엇을 거저 준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가와 국민 간에 ‘무상 행위’가 성립할까? 정부가 과세권을 행사해 국민으로부터 확보한 돈을 국민을 위해 쓰는 것, 이런 행위를 ‘무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가의 돈이기 전에 국민의 돈이었다. 국가에 귀속된 돈이라고 해도 그 돈의 원천과 과세권에 따르는 국가의 책임을 생각한다면, ‘무상’을 국가가 국민에게 베푸는 특혜로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무상’을 은전(恩典)으로 보는 시각은 국가주의적 발상이다.


재원 확보의 어려움. 국민 조세 부담 가중. 수익자부담 원칙 위배. 이 세 가지가 ‘무상교통’을 반대하는 대표적 이유다. 하지만 ‘부분적 무상교통’은 실시된 지 이미 오래다. 1984년 노인·장애인·유공자를 대상으로 도시철도 무임승차 제도가 도입됐다. 또 2004년부터 서울시를 필두로 버스 운행 적자를 지자체가 보조금을 줘 보전해주는 버스 준공영제가 시작됐다.

적자 커지는 대중교통, 시민 안전 위협


버스와 지하철 적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버스 준공영제를 시행하고 있는 7개 시도가 투입한 연간 지원금 규모는 8600억원(2018년), 전국 7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연간 적자는 1조347억원(2017년)에 달한다. 준공영제의 전국 확대와 노인 무임승차 허용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버스의 경우, 버스회사들의 비리와 경영부실까지 더해지는 상황이어서 적자 폭은 크게 치솟을 수밖에 없다. 노인 인구 급증으로 무임승차 비율이 급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철도의 적자 폭 또한 지금의 두세 배로 커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정부도 곤혹스럽다. 대중교통 적자를 지자체가 전부 책임지는 건 부당하니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재원이 없다고 손사래를 쳐 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버스와 도시철도 때문에 적자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지자체를 모른 척하며 버틸 수 있을까.


대중교통의 적자 운영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다. 남원철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정책부장은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 불합리한 아웃소싱, 비정규직 전환 등이 이뤄지게 되고 이는 곧 안전사고 증가로 직결된다. 부산지하철의 경우 안전사고가 3,3배 증가한 상태(2017년 기준)”라며 유려를 표했다.


‘무상교통’은 꿈일까? ‘무상교통’을 위한 재원 마련은 정말 불가능할까? 이런 의문이 들면 떠오르는 게 있다. ‘교통세’다. 정식명칭이 ‘교통·에너지·환경세’인 이것은 대중교통의 육성이 설치 목적 중 하나인 목적세다.

대중교통 육성이 목적인 세금이 있다



교통세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도로·도시철도 등 교통시설의 확충 및 대중교통 육성을 위한 사업, 에너지 및 자원 관련 사업, 환경의 보전과 개선을 위한 사업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



유류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교통세다. 휘발유와 경유 1리터 가격에는 교통세(휘발유 529원, 경유 375원)가 포함돼 있다. 세수가 연간 15조원을 웃돈다. 국가재정의 주요 재원이다. 이 재원의 80%는 교통시설특별회계로 편입되고 나머지는 환경개선(15%), 지역발전(2%)등에 배분된다. 교통시설특별회계의 세출항목은 도로, 철도, 공항, 항만 등의 시설과 교통체계관리 등으로 구성된다.

한마디로 교통시설특별회계는 SOC 예산이다. SOC가 대중교통과 전혀 무관하지 않으나 직접적인 육성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교통세의 과세 목적 중 하나인 ‘대중교통 육성’에는 한 푼도 쓰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교통시설특별회계 세출이 크게 줄었다. 이전 정부들이 SOC에 필요 이상의 예산을 배정해왔다는 것을 방증해주는 대목이다. 교통세에서 넘어오는 세입은 증가한 반면 SOC 계정의 세출이 크게 줄자, 문재인 정부는 남은 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했다. 벌써 예탁금이 7조 원(2017년 6006억 원, 2018년 6조3782억 원)에 달한다. 이 추세라면 교통세가 일몰을 맞을 때까지 연간 수조 원씩 계속 늘어나게 된다.

▲교통세의 80%가 편입되는 교통시설특별회계는 SOC예산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세출이 크게 줄어 7조원에 달하는 예탁금이 발생했다. (감사원 자료. 2018)

이 여유 재원을 노리는 이들이 있다. 환경부는 환경 개선에 재원 배분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하고, 복지 관련 부처나 단체는 이 재원으로 복지 분야에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환경연합은 이 돈으로 공원을 매입하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교통세의 주목적 중 하나인 ‘대중교통 육성’에 쓰자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SOC 남발 막아 연간 수조원대 잉여 재원 확보


교통세에서 교통시설특별회계로 넘어가는 재원을 대폭 줄여도 되는 상황이다. 줄인다면 연간 수조 원 이상의 재원이 확보된다. 이 돈을 교통복지에 쓴다고 가정해 보자. 완전한 무상교통은 아니라도 단계적 무상교통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세는 목적에 맞게 사용되는 게 원칙 아닌가.


‘무상교통’이 꿈이라고? 아니다. 이미 시작한 나라가 적지 않다. 20여 개 국가 80여 개 도시에서 전면 혹은 구간별 무상교통이 시행되고 있다. 이들 중 에스토니아 탈린이 가장 성공적으로 ‘무상교통’을 구현한 사례로 꼽힌다. 탈린의 경우 ‘무상교통’을 실시한 이후 대중교통 이용자가 크게 증가하며 도심 교통체증이 감소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쇼핑과 장보기가 활성화되며 지역경제도 좋아졌다. 탈린의 교통복지를 누리려는 외부 전입자가 늘며 세수도 또한 증가했다. 탈린은 ‘무상교통’을 전면 실시하고도 오히려 흑자를 본 대표적 사례다. 교통복지는 이미 세계적 추세다.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무상교통’은 교통복지의 핵심이다.


17세기 말 프랑스. 8인승 마차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 마차를 보고 손가락질을 했다. 비상식적이며 당시 사회통념에도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최초의 대중교통은 시간이 지나며 상식이 됐다. 지금, ‘무상교통’은 그때의 8인승 마차와 같은 신세다. 하지만 머지않아 상식이 될 것이다. 대중교통의 공공성과 교통복지를 강화해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비등할 경우 정부가 마련할 출구는 ‘무상교통’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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