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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 연기력에도 ‘바람이 분다’에 박수 칠 수 없는 이유

간혹 어떤 배우는 캐릭터를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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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어떤 배우는 캐릭터를 뛰어넘는다. 가령, 무미건조하고 매력 없는 배역을 돋보이게 만든다든지 도무지 개연성이 없는 배역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식으로 말이다. 오로지 배우가 지닌 매력과 연기력이 작가가 구축한 캐릭터를 구원하는 경우다. JTBC <바람이 분다>를 시청하면서, 그 안에서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감우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탁 하나만 할게. 우리 혹시 우연히 마주쳐도 아는 척하지 말자. 서로 소식 궁금하다고 알아보지도 말고 당신 말대로 나는 다 잊고 내 인생 다시 시작할 거야. 그러니까 우리 절대 마주치지 말고 절대 아는 사이도 아니었던 거고 절대 기억도 하지 말자.”

도훈(감우성)과 수진(김하늘)은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끝내 도훈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수진에게 숨겼고, 조용히 숨어 사는 길을 선택했다. 그는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상태는 점차 악화돼 갔다. 한편, 수진은 이혼 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수정으로 분장해 도훈과 호텔에서 만났던 날에 덜컥 임신하게 됐다. 고민 끝에 도훈을 찾아갔지만, 도훈의 대답은 냉담했다. “어디서 누구 씨를 받았는지 내가 알게 뭐야?”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지났고, 수진은 홀로 아이를 키워냈다. 사업도 성공적이었다. 그의 곁에는 대학 선배였던 문경훈(김영재)이 있었다. 도훈은 시골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는 많은 기억을 잃어버렸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수진과 자신의 딸 아람만은 잊지 않았다. 그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도 결코 만나선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선을 넘으면 수진이가 내 모습을 알기 때문이다.”

증세가 악화된 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아람의 유치원 입학식으로 향했다. 그토록 경계했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정작 도훈은 수진과 아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유치원 앞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을 마주쳤지만, 도훈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수진은 도훈이 아람의 존재를 알아챌까 전전긍긍하며 아이를 뒤쪽으로 숨겼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도훈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다. 뒤늦게 유치원으로 향했지만, 도훈은 순찰차를 타고 이동해 그곳에 없었다.


도훈과 아람의 만남은 그 이후에 이뤄졌다. 도훈은 친구 항서(이준혁)와 낚시를 한 후 초콜릿 공방에 들렀다. 그동안 도훈은 아람에게 줄 초콜릿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수진은 경훈, 아람과 함께 캠핑을 가기 위해 근처 카페를 들렀다. 아람은 혼자 진열대로 이동해 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도훈은 아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람아, 안녕?” 그리움과 애정이 듬뿍 담긴 따뜻한 목소리였다. 애틋한 만남에 시청자들의 마음은 흠뻑 젖어 들었다. 


JTBC <바람이 분다>는 5회부터 확실히 달라진 듯했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지독하게 엇갈리는 도훈과 수진의 관계는 5회를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던 제작진의 장담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초반의 어수선함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 건 분명했다. 감우성과 김하늘의 섬세한 연기도 더욱 빛을 발했다. 특히 감우성은 멜로 장인이라는 별명답게 깊은 감성을 끌어냈다. 눈빛, 표정, 말투에서 캐릭터에 몰입한 감우성의 힘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드라마 초반의 무리수가 더욱더 아쉽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어설펐던 김하늘의 코 분장은 수많은 시청자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2회 4.024%까지 올랐던 시청률이 3회 3.005%까지 뚝 떨어진 이유는 명확했다. 제작진은 “도훈의 진심을 다른 여자가 돼서라도 알고 싶었던 수진의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는 장면이라 해명했지만, 아무래도 코 분장으로 남편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건 현실감이 떨어졌다.


이렇듯 코 분장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지만, <바람이 분다>의 문제는 극본 전체의 개연성 부족이다. 코 분장이 어설펐던 건 작가의 입장에서 도훈이 빨리 눈치를 채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야 도훈이 수진을 역으로 속일 수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래야만 작가가 생각했던 더욱더 큰 비극적 슬픔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좀 더 세밀하고 완벽한 변장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람이 분다>는 목적이 너무 앞섰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배우가 캐릭터를 뛰어넘는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킨다 해도 작가의 역할은 캐릭터를 탄탄하게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작가가 할 일은 그저 캐릭터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캐릭터를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면 이야기가 꼬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분다>도 마찬가지다. 5회부터 시작될 최루성 멜로를 위해 황주하 작가는 최악의 상황들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자신이 구현하고자 한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사전 작업에 몰두한 것이다.


허나 그 사건들은 캐릭터와 정면으로 배치됐다. 도대체 왜 도훈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사실을 수진에게 숨겨야만 했을까?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면 그의 사랑은 한없이 얕다. 평생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의 생각은 짧다. 잔혹한 말로 상처를 줘야 앞으로 자신을 찾지 않으리라 여겼다면 그건 모진 게 아니라 모자란 것이다. 그런데도 피임 없이 수진과 관계를 맺어 아이가 생길 가능성을 남겼다는 점에서 도훈은 너무도 무책임하다. 실제로 아이는 태어나 버렸다. 오로지 작가의 필요에 의해서. 도훈의 삶은 한 달이 남았다. 이 비극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 외부 필진 버락킴너의길을가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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