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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무슨 '페미니즘'이야?"에 대한 나의 대답

조회수 2019. 5. 26. 1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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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어떤 페미니즘을 할 수 있을까.

*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라는 책을 펴낸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에서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질문을 나눕니다.

출처: ⓒ엠마 왓슨 UN 연설 장면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요?”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어감이 그리 호의적이진 않다. 남자가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게 영 못마땅한 듯싶다.


정치적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저 질문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질문하는 이가 들을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굳이 대답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보다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질문들이다.

“여자도 아닌데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나요?”

“당사자도 아닌데 페미니즘을 얘기해도 되나요?”

내가 언제, 어떻게 페미니즘을 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모먼트’로 삼을 만한 특별한 경험도 없다. 그렇지만 저 질문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남성인 내가 페미니즘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어쩌다 보니 페미니스트들에 둘러싸여 자라는 바람에 자연스레 페미니즘에 적합한 사회적 몸을 갖추게 된 ‘특이한’ 경우 말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30년 넘게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뒤늦게 생각과 몸을 전환하는 게 가능할까? 


결국 “여자도 아닌데”, “당사자도 아닌데”, “공감이 어려운데”라는 난감함을 뚫고 조금씩 나아가려면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남자도 페미니즘 할 수 있을까”를 묻기보다는, 기대를 품고 “남자는 어떤 페미니즘을 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출처: ⓒtvN <외계통신> 캡처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를 만들면서 의문은 더 커졌다. 열 명의 기혼여성들과 함께 작업했기 때문이다. 완성된 원고를 받아서 편집하는 게 아니라 글을 처음부터 함께 고민하며 썼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지난 몇 년간 여러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했지만, 저자들과 얘기 나누는 것은 뭔가 조금 달랐다. 그들이 여성으로서 겪은 차별과 아픔을 이야기하며 함께 울고 웃을 때, 나는 그것을 이해했나? 거기에 공감하고 반응했나? 그렇지 않았다면 위선이고 가식인가? 아니, 남성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잘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 페미니즘이 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일단 이해하기 어렵다. 여성 청소년들과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통찰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나로서는 많이 공부하고 오래 생각해야 겨우 도달하는 어떤 지식을, 그들은 삶을 통해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기득권을 행사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위치성’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기혼여성들도 그랬다. 나도 결혼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미처 상상치 못한 것이었다. “모성신화를 비판하면서도 아이가 주는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독립된 나만의 일을 찾겠다는 굳은 다짐은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남기 싫다는 아이의 한마디에 무너지고, 가사 분담 문제를 논하다가도 장시간 노동에 지친 남편을 불쌍하게 여기는”(<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8쪽) 그들 앞에서 책으로 쌓아 올린 나의 페미니즘은 속수무책이었다.


남성으로서 페미니즘을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물론, 내가 페미니즘을 실천한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위협을 당하거나, 실제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여성의 페미니즘 실천과 비교할 수 없다). 페미니즘을 실천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다. 손쉽게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권력들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철학을 바꾸는 것보다 어렵다.

지금 이곳에 더 필요한 질문

출처: ⓒMBC 뉴스데스크 캡처

책을 출간한 곳이자 내 일터인 출판사 사무실로 이런 전화가 걸려 왔다. 한 남성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왜 자신이 구매한 적 없는 책을 보냈는지 물었다. 이래저래 알아본 끝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보낸 것을 확인하고는 그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런 거 읽기 싫은데…”

읽기 전과 후의 세상은 다르리라는 ‘예감’이다. 이 예감처럼 실제 나의 일상에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예를 들어 남성 권력을 행사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하는 반·비언어적 표현들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자신의 목소리 톤, 몸짓, 표정, 말의 속도 등을 이용해 여성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안희정은 법정에서 기침 소리를 이용했다). 조심한다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런 권력을 행사하곤 한다. 할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처럼 내게 페미니즘은 이해도 실천도 까다로운 노동이다. “여자도 아닌데 페미니즘을 이해할 수 있나요?”, “당사자도 아닌데 페미니즘을 얘기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에 마냥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실상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여성의 목소리와 여성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누구와도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불가능하다. 명백하게,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그렇더라도 돌이켜 보건대, 나는 남성 중심 세상에서 ‘인간’이기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그 곁에 머물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아직은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무게를 견딜 수 있었다. 이해의 가능성보다 들으려는 태도와 머물려는 노력이 좀 더 인간적일 것이라는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결국 “여자도 아닌데”, “당사자도 아닌데”, “공감이 어려운데”라는 난감함을 뚫고 조금씩 나아가려면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남자도 페미니즘 할 수 있을까”를 묻기보다는, 기대를 품고 “남자는 어떤 페미니즘을 할 수 있을까”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이곳에 더 적절한 질문이 아닐까?

* 외부 필진 부너미 님의 기고 글입니다. (글 하늘)


**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 

1. 남편에게 선언했다. “나, 페미니스트야” 

2. “당신, 페미니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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