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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조회수 2019. 5. 20. 11: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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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심장, 오월 광주를 기억하며
출처: ⓒ한겨레 자료 사진

나는 학창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문화 수도 광주, 맛의 고장 광주, 광주를 꾸미는 말은 많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5·18 광주, 민주화의 심장, 광주가 좋았다. 광주의 어린 학생이었던 나에게 5·18은 내 삶의 한 공간이었다. 5·18 기념공원으로 소풍을 떠났고, 구 전남도청 앞을 지났고, 금남로와 충장로에서 촛불을 들었다.


광주의 5월 18일은 특별했다. 백일장이 펼쳐졌고, 5·18을 주제로 한 수업이 열렸다. 그렇게 매해 뜻깊던 어느 해, 고등학교 한국사 시간에 광주 민주화운동 이야기가 나왔다. 금남로, 망월동 국립묘지… 광주에 사는 우리에게 지극히 평범했으나 또 낯선 공간. 교과서에는 한 페이지 몇 줄에 불과했지만, 우리의 감정은 사뭇 달랐다. 그 몇 줄을 선생님은 영상 몇 개와 긴 이야기로 다뤘다. 


‘임을 위한 행진곡’ 이야기가 나오자 한 친구는 그 곡을 외웠다고 말했다. 선생님의 요청에 시작된 노래. 친구는 떨리지만 뜨거운 목소리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시작했다. 몇몇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났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곧 잦아들었다. 더듬거리며 노래를 함께했다. 나는 이내 북받쳤고 눈물을 글썽였다. 5·18은 광주 시민 모두가 품고 있는 작은 가시 같았다.  


*제창은 합창과 달리 참여자 모두가 따라 부르도록 한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이명박 정부부터 불허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출처: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그 기억을 되짚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보여준 5·18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1980년 5월, 피 묻은 광주의 희생을 함께한 유공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 나왔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울며 아버지에게 화가 난다는 답을 했다. 5·18의 상처를 남긴 아버지가 밉다는 말이었다. 덜컥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로부터 아무런 상처도 없는 내가 그날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고통을 내보여 떠들고 있다는 것이.


그런데 자유한국당 의원 몇 명의 5·18 망언 후, 몇몇 사람들은 유공자임이 자랑스럽지 않냐며 내보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유공자이자 유공자의 가족임을 증명하기를 요구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앞서 말한 다큐멘터리 속 아들처럼 5·18은 나의 삼촌, 혹은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를 잃은 순간이다. 사람들은 쉽게 왈가왈부하지만, 그 죽음과 상처는 너무나 참혹한,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기억이다. 그래서 그것이 차마 민주화운동일지언정 자신의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일 사람은 없다. 더는 그들이 품은 가시를 헤치며 괴롭혀서는 안 된다. 


80년 5월 18일, 광주의 5월은 멈춰버렸다. 그 멈춘 순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그로부터 민주주의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가볍게 이야기하는 이가 없어야 한다. 그날의 상처를 뒤집어 보여주라는 이가 없어야 한다. 우리 모두 1980년의 5월 18일을 기억해야 한다.

5·18이라는 작은 가시. 광주 시민 모두의 가슴에 박힌 그 가시. 나는 가시를 헤치지 않되, 영원히 품고 있을 테다. 때로 우리가 지금의 민주주의가 80년 5월 광주의 핏자국임을 잊을 때마다 따끔하게도 찔릴 것이다. 우리에게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오늘의 5월을 선물한 것은 민주화의 심장, 광주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을 누르며 80년 5월 광주 시민이 자랑스럽다. 5·18 망언에 다시 금남로로 뛰쳐나온 광주 시민이 자랑스럽고, ‘전두환 물러가라!’를 외친 광주 동산초등학교 학생들과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분노하는 수많은 시민이 자랑스럽다. 


5·18은 광주 시민, 아니 어쩌면 온 국민이 지탱해야 할 무게다.

“광주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이다. (…)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완성시키는 일은 광주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지고 나가야 할 몫이다. 호남의 한(恨)일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한이다. 이제 광주는 격리된 고도(孤島)가 아니다. (…)” 

– 뉴욕 타임즈 서울 주재 기자 5.18 당시 광주 취재기자 심재훈의 말.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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