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소녀들은 왜 '버닝썬'으로 갔나

조회수 2019. 5. 7. 15: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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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그들에게 '좋은 선택'은 없었다.
출처: ⓒ경남신문

나이에 따라 그에 맞는 장소가 있다. 20~50대 경제활동인구는 일터에 있어야 하고, 10대는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사회가 으레 기대하는 바다. 만약 나이에 따라 부여된 장소를 벗어나면 낙오자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10대들에게 있어서 이 시선은 좀 더 가혹한 것 같다. ‘미성년’이라는 표현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사회적 성원권을 아직 완전히 부여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스스로 한 명의 사람으로서 선택과 결정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학교와 가정에서 보호와 통제받아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들이 가정과 학교 내에 순응적으로 머문다면 ‘우리의 미래’, ‘꿈’, ‘희망’, ‘새싹’이라고 부르지만,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든 ‘정상’ 가족과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하는 순간 이러한 환대는 즉시 철회된다. 이들에게는 고유한 이름도 없다. ‘학교를 나온 사람(자퇴생)’이거나 ‘집을 나온 사람(가출 청소년)’일 뿐이다. 이름 없는 이들을 이 글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통칭하여 부르기로 한다.


학교와 집을 나온 학교 밖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다. 어른들은 이들이 일탈과 비행을 일삼는다는 이유로 마치 오염물을 대하듯 한다. 혹여나 ‘우리 애까지 물들일까’ 두려워 ‘우리 학교’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기에 바쁘다. 이따금 청소년을 위한 쉼터가 있지만 그마저도 자리가 부족하기 일쑤다. 공동체로부터 노골적인 배척을 받은 이들은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야만 한다.

출처: ⓒMBC 스트레이트 갈무리

문제는 여성일수록 청소년의 몸으로 살아남기가 더욱 혹독해진다는 점이다. 그중 일부는 잠잘 곳과 돈을 얻기 위해 온라인에서 조건만남을 구하거나 아르바이트를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나갔다가 유흥업소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청소년 성매매의 길로 빠지는 것이다. 이들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에든 간다. 시골의 비좁은 여관에도 있고, 화려함으로 무장한 서울 강남의 ‘버닝썬’에도 있다.


6개월 동안 강남 클럽 부근에서 위장 잠입해 업소 50여 곳의 80여 명 가출 청소년을 취재했다고 밝힌 주원규 작가(목사)에 의하면 강남 클럽 ‘버닝썬’의 성매매 여성 중에는 초등학생 여자아이까지 있었다고 한다. ‘스카우터’라고 불리는 사람이 학교 밖 청소년이 모이는 곳에 찾아가 연예인이 될 수 있다며 꼬드겨 클럽 MD에게 넘긴다. 클럽에 넘겨진 이들은 술에 몰래 탄 약물에 취해 성폭력에 노출되고, 심지어는 이 때 촬영된 영상으로 협박까지 당한다. 협박이 이어져 VVIP 고객의 요구에 따라 포르노를 찍거나 상식을 벗어난, 이벤트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단강간폭행에 동원되기까지 한다. 제대로 된 피임이 지원될 리가 없다. 끝내는 10대 미혼모가 되거나 불법 수술대에 누워 낙태의 죄인이 된다. 비참한 결말에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런 선택을 한 네 책임이다’라는 비난만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출처: ⓒYTN 보도 화면갈무리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미성년자여도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판단되면 이들을 대상 청소년으로 분류해 보호처분을 내린다. 성매매의 경우에는 법원에서 ‘6호 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사실상 소년법 형사처벌에 준하는 처분이다. 약물과 관련해서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대라도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버닝썬에 간 학교 밖 청소녀들이 클럽을 떠나거나 신고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들이 나이가 어려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좋은 선택’이라는 건 없었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을 한 명의 사람으로 대우하기보다는 학교나 가정에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통제하려 할 뿐 이 자리를 벗어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보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빨간머리 앤 Anne with an E>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앤이 입양된 후 학교에 가서 어린 시절 목격했던 성관계에 대해 묘사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어린 것이 망측하다며) 뭇매를 맞자, 앤을 입양한 마릴라는 이렇게 말한다. “앤이 한 말 때문에 그 애를 탓할 순 있어도, 앤이 어쩔 수 없이 보고 겪은 것까지 그 애를 탓할 순 없어요.” 학교 밖 청소녀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이 책임지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 외부 필진 고함20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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