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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숨진 중학생이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조회수 2019. 5. 2. 21: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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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 시위에 참여했다가..

1960년 4월 19일 한성여중 2학년이던 진영숙 씨는 학교를 마치고 시위에 참가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인사드리려고 집에 왔습니다.


경찰이 전날부터 3·15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에 발포까지 하는 상황이라 시위 참여는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이날 시장에서 장사하시며 홀로 진씨를 키우던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진씨는 편지를 남겼습니다. 

출처: ⓒtvN '어쩌다 어른' 캡처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을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마는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진영숙 씨의 마지막 편지)

어머니에게 편지를 남긴 진영숙 씨는 시위버스를 타고 경무대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구호를 외치던 진씨는 미아리 고개에서 경찰의 발포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4·19혁명 희생자 186명 중 77명이 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은 22명이었고, 고등학생이 36명,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19명이었습니다.

* 외부 필진 아이엠피터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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